직장 생활 15년.. 이정도면 어지간한 일에는 힘들다고 하지 않아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IMF때에도 그 뒤로 외국계 은행들이 한국에서 철수해 나갈 때에도 그래도 요즘 보다는 덜 힘들어 했던 것 같다 . 잦은 회의와 쏟아지는 업무로 퇴근할 즈음이면 머릿속이 말 그대로 마비가 되는 것 같았다. 퇴근하니 오랜만에 음반하나가 나를 반긴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저절로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 졌다. 내가 엄살을 부린 탓인지 답답한 도시민을 위한 꼭 알맞은 음악을 내게 주셨다.
내가 분위기가 이렇듯 넘치는 사람이었던가? 음악을 감상하기위해 눈을 감는다. 집에 오면 난 늘 한결 같은 사람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아내가 타준 커피한잔과 오고가는 하루 이야기...... 아내의 이야기도 늘 한결같다. 아들 녀석이 이렇다 저렇다 듣다보니 요즘은 칭찬 보다 일러대기 바쁘고 지치지도 않는 끊임없는 얘기들..... 아들 녀석에 관한한 참 기운도 좋다 싶다. 아니면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거나 아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한편이 끝나고 나서도 방금 본 줄거리를 읊어댄다. 그것도 늘 한결같다. 새로운 충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피곤해하는 걸 알았는지 음악 곁으로 바짝 다가서 앉는다. 음악이 끝날 즈음엔 오래된 팝 같아서 늘 들어오던 음악 같기도 했지만 전혀 새롭다. 처음 듣는 음악이 분명하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음반을 장식하던 카피 몇 줄이 떠오른다. 음악을 소개하는 작은 종이하나를 읽어 보았다.
Air, Phoenix, Daft Punk, Justice, Royksopp, Beach Boys, 기리고 인상파 음악의 시조 드뷔시가 뒤섞인 환상의 음악....... pacific!은 명곡들뿐만 아니라 1893년 드뷔시에 의해 시작된 인상주의 음악 (음과 선율 그자체가 아름다운 나른하고 모호하게 묘사하고 심플하고 절제된 화음의 조성과 미세한 불협화음을 이용한 음악)의 스타일 까지 가져와 최신유행코드로 재해석 해냈다. 비치보이스의 일렉트로니카적 부흥을 표현하기라도 하려는 듯 자신들의 음악을 “Surf Electro"라고 정의한 pacific은 가볍고 연약하게 흐르는 멜로디와 속삭이는 듯한 보컬 ............
음악을 듣기 전에 읽어보면 이 묘한 음들이 이해가 될 것도 같지만 굳이 해석할 재간이 없다.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은 이 음악을 들으면서 피곤한 하루를 달래줄 기운을 얻을 수 있다. 독특한 음악 이었고 그들의 소리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음악은 사람의 스트레스를 치료하기도 한다고 한다. 도시민들의 스트레스를 날려줄 묘한 전자음과 나른한듯한 소리로 노래 부르는 PACIPIC! 그들의 환상적인 목소리에 숨을 죽인다. 평화로운 휴가지를 꿈꾸는 답답한 도시민들에게 심플하고 몽환의 향이 가득하다는 사운드에 푹 빠져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특히 Disappear, Sunset blvd,는 나를 위해 세상에 온 음악처럼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Number one 은 드럼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종소리 이름을 알 수 없는 악기소리가 멋지다. Love isn’t always on time, Poolside bungalow 는 로맨틱하고 분위기가 감미롭다. sunrise 는 해 뜨는 바다에 서있는 것 같은 환상을 선물한다.
한결같은 일상이 꼭 답답한 것만은 아니다. 매일 듣던 음악이 꼭 지루 한 것도 아니다. 아무리 들어도 아무리 불러도 닳지 않는 음악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과다한 업무량에 꽉 막힌 인생사가 고단하다고 여겨진다면 이런 음악으로 기분을 전환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듣다보면 발상의 전환도 생길 것 같고 혼자 갖기 아까운 감정들이 생긴다. 음악에 젖어 있는 시간은 행복하다. 나에게 주어진 이 행복이 오래도록 내 것 이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