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유난히 부끄러운 것이 많았다.

이 '부끄러움'은 창피함을 느끼거나 타인의 앞에 나서는 재주가 부족함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지금은 그 의미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시골 출신이기에 늘 들일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다.

시골의 일이란 건 장마와 겨울을 빼면 언제가 시작이고, 어느 때가 끝이라는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쁘면 며칠 밤이라도 새야 하고, 한가하면 몇 날이라도 늘어지게 쉴 수 있는 것이 시골 일인 거다.

 

 부모님은 일 벌레였다.

그런 점은 아버지가 환갑을 훌쩍 넘기고, 어머니가 환갑에 가까워진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좀처럼 변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젊어서부터 몸에 밴 습관의 영향이 가장 크다. 부모님께서는 늘 "그렇게 해왔다"는 말로 지금은 '무리'에 가까워진 일들을 매년 해치워야 하는 이유로 삼는다. 지켜보는 자식으로서 마음이 편할 리 없지만, 그 고집을 꺾을 수도 없으니 그저 바라볼 뿐이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황에서 돕지 않으면 그것이 참 부끄러웠다.

조금 자라서는 새벽같이 일어나시는 부모님을 두고 늦잠 자는 게 부끄러워 늦잠을 자지 않게 됐다.

컨닝하려는 마음을 먹는 것조차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할 것이 늘 부끄러웠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부끄러워 늘 "별난 놈", "까다로운 놈" 소리를 기꺼이 들었다.

 

 착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좋은 사람은 못 된다는 사실을 언제부턴가 깨달았다. 그래서 착하기만 한 사람인 것조차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부끄러운 이야기를 주루룩 늘어놓게 됐을까.

물론 이 책《오직 독서뿐》을 읽은 탓이다. 아니, 말을 바로 잡자면 읽은 '덕'이다.

 

 2년 여 전, 느닷없이 닥친 구제역의 파동 속에서 세상의 '인식'에 혐오에 가까운 실망을 느꼈었다. 그래서 그 실망의 근원을 캐내려는 생각에 책을 파고들었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책에 답이 있다"는 말을 본 기억이 있어 그 안에 들어있을 답을 찾으려는 시도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 된건지 독서는 지지부진했고, 몇 번이나 '실패'를 실감했다.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이 늘 상한 음식을 삼키는 순간의 어렴풋한 불쾌함처럼 책을 덮는 순간에 들이닥쳤다.

 

 "낫지는 않아도 나아지기는 한다"(그냥 내가 만든 말이다)고 한 권의 책에서 '단 하나라도 발견하기'를 구하고, 조금씩이라도 '실천하기'를 2년 정도 했더니 이제 제법 폼이 잡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럴즈음 찾아온 책이 바로 《오직 독서뿐》이다.

그리고 여지없이 정신이 번쩍나게 하는 찬 소리를 내쏟아 부었다.

 

 더운 날에 더 차게 느껴지는 찬물처럼, 뇌리를 후려치듯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 생각했던 것, 지금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사유로 책 한 권이 뿌듯이 채워져있었다.

배움과 독서, 실천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엄했던 분들의 이야기 앞에 어떻게 자만하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

 

그저 책 몇 권 읽으면서 우쭐해했던 내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일을 미루고, "일을 한다"는 이유로 책 읽기를 미뤄왔던 날들의 기억이 적나라하게 떠올랐다.

왜 잊히지도 않고 떠올랐을까.

김영사, 정민, 오직독서뿐

한 줄 감상 : 지금까지 나라와 세계에, 속고 기만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

 

 

논쟁(論爭) : [명사]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주장을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툼.  

제목부터 '물의를 일으키고자 하는 의도'가 물씬 풍기는 책이다. 그리고 내용은 그 '불순한 의도'를 가득 담고 있다.

 기대. 혹은 그 이상이다.

 

 어쩌면 대다수의 국민들을 평가절하하는 발언이 될 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논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정치 공방', '진실 캐기', '거짓말 밝히기'와 같은 허접하기 짝이 없는 촌스런 '난장판'을 떠올린다.

 그 결과는 다들 익숙히 느끼는 것처럼 '무관심' 혹은 '싸잡기'라는 현상으로 돌아온다. 논리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고함과 폭력이 오가는 세계가 우리 나라의 중심이었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우리 나라에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재밌는 책을 내줬을까?"하는 생각에 읽으면서 내내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뚝딱!!"하고 튀어나와줬으면 좋겠다. 어디 없나?

 

외국이라고 해서 정치를 움직이는 패러다임이 특별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계는 보편화 추세에 있다고 하는데, 그 보편화가 항상 하향 평준화를 지향한다는 게 아이러니라나?

 

이 책은 다방면을 넘어 거의 전 영역의 '논란' 혹은 '논쟁' 거리를 들고서는 세계를 경유한다. 문학의 세계에서 논픽션, 미국에서 중동에 이르는 세계를 두루 돌며 곳곳에 산적해 있는 '논쟁'의 가스에 서슴없이 불을 댕기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해 많은 말을 쏟아내면 낼 수록 이 책의 가치를 편중되게 만들어 버릴것 같다. 논쟁을 하기는 좋아하지만 논쟁 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은 게 내 심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책 속에 이 '논쟁'이라는 책을 쓰게 된 이유로 밖에 보이지 않는 글을 숨겨뒀다. 바로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244쪽 4~ : 여기서 책을 덮으면 안 된다. 나는 지금 여러분 대신 힘든 생각을 해주고 있다.

 

이 구절은 '섹스'라는 주제의 뒤틀린 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인데, 사실 상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논쟁거리들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금기'나 다름 없는 '성'에 대한 담론이 지닌 힘과 동등하거나 뛰어넘는다. 아마 20년 전만 됐어도 이 책은 출간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출간이 불가능 했을 것이란 이야기는 국내, '한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민감한 이야기들을 맘껏, 망설임 없이 다루고 있는 책이란 이야기다.

 

 그가 한 말처럼, 우리는 우리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피하려고 하는 주제들에 대해 '대신 힘든 생각'을 해준 것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논쟁'하는 것에 있어 무엇을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일까?

지도자의 미움을 사는 일? 극우 혹은 극좌 세력의 위협에 시달리는 일? 평지풍파를 일으킨다는 여론의 비난을 사는 일? 오랫동안 무마되어 왔던 것을 굳이 들춰 혼란을 조장한다는 우려 속에 사는 일?

 

 정말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진실일'지도' 모르는 일에 눈을 돌리고, 거짓'임이' 분명한 사실을 지지하는 자기기만의 독이 아닐까?

 

 이 책은 한 번에 읽기 쉽지 않고, 내용 가운데 '우리와 무관'한 이야기도 많지만, 어떤 진리가 말하는 것처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던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 이 책에서 다루는 '논쟁'거리들이 우리나라의 어딘가에서 등장 인물의 이름과 배경만을 바꾼 채 재연되고 있을지 모를 일이잖은가?

 

 <불편한 진실>보다 불편하지만, <런닝맨> 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논쟁'의 재미에 빠져보길 바란다.

 

덧붙임 : 10계명에 대한 글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재밌다. 쿠쿠쿡.

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보통은 타인에게서 “뜨악!”하는 눈초리를 받는 걸 느낀다. 그 순간 나를 보는 그 상대에 의해 즉자존재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관찰당하는 ‘대상’이며 일순 ‘사물’과 동일 선상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그런 나를 바라보는 상대를 나 역시 바라본다. 그렇기에 그 사람 역시 내게는 즉자존재가 된다.

반면에 상대가 바라보는 나를 나 스스로 의식하는 순간 나는 대자존재가 된다. 상대는 여전히 나에게 즉자존재에 불과하지만 나는 나에게 좀 더 상향된 지위를 부여한다. 하지만 타자를 즉자존재에 머물게 한다면 나 역시 즉자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상대를 타자존재로 격상시키기로 한다.

우리는 ‘실존’의 가치를 추구한다. 인정받기 원하고, 고유한 존재로 존재하길 바라는 것 그 모든 것이 넓은 의미의 실존의 추구다.

 

이렇게 앞에 적어놓으면 이게 무슨 소리냐? 며 비난 섞인 말이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나 역시 내가 적어놓은 말을 온전히 이해하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제대로 해석하면 내가 의도한 표현을 벗어나 전혀 엉뚱한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내게 중요한 건 지식의 깊고 얕음이나,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문제 이전에 나 스스로가 나에 대해 얼마나 신뢰하고 또 인정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한 사상가의 저서를 읽기에 앞서 그 사상가에 대해 알아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 사상가의 삶을 안다는 것은 약일까 독일까? 그 사상가의 저서를 한 편의 문학처럼 읽는 데 사전 지식은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한 편의 작품은 그 저자의 사상과 시대 상황까지를 모두 포함하기에 어쩌면 저자를 알고 읽어야 하는 것이 옳은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법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본래의 <존재와 무>는 250쪽 정도 분량인 이 책의 4배에 달하는 부피를 지닐 테니 자칫 읽다 지쳐 떨어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험 정도의 역할은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철학자라는 이름보다는 작가라는 이름을 더 원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의 소설 <구토>가 그의 사상과 얼마나 깊은 연관을 갖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읽었을 정도니 무슨 말을 보태겠는가?

 

이 책은 사르트르의 사상과 그의 사람들, 반대자들을 언급하며 <존재와 무>의 큰 줄기를 훑어준다. 자칫 원전을 읽기 전에 편견이나 선입관을 갖게 될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중립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기에 큰 위험은 없을 것 같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존재를 무척 소중히 여겼다. 침해당하거나 위협받는 것을 거부해서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여기서 사르트르의 사상이 이렇다 저렇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무슨 말을 하기엔 아는 것이 너무 적다. 후에 원전을 읽고 좀 더 알게 된다면 그 때 또 감상을 남기기로 하겠다.

 

이 책의 거의 다 읽었을 때 문득 ‘어린왕자와 여우, 장미’가 떠올랐다.

그토록 자신의 존재를 위협할 외부적 요소인 타인을 경계했던 사르트르도 “타자는 적이자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덧붙여 260쪽에서는 “소유가 온전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주어지는 경우에 소유하는 자는 소유되는 대상의 존재이유이다.”라고 적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지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온전하게 공유된 상호간의 관계는 ‘나’의 존재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가치 있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용어의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읽는 철학자들의 말은 깊이 이해하려고 골몰하며 골몰할수록 늪에 빠지는 것처럼 알 수 없어진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언제나 ‘단순하게, 한 가지만’이다.

 

엉뚱하지만 사르트르에서 ‘어린왕자’를 발견 한 것만으로도 난 만족하는 거다.

 

이건 재밌는 구절.

93쪽 이 저서의 무게가 정확히 1Kg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과일이나 채소 등의 무게를 잴.때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건 마음에 드는 구절.

197쪽 인간존재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항상 '거기에 있다'는 것. 다시 말해 하나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것과 동의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