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다정한 눈빛, 따듯한 온기, 정성 들인 선물 그리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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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편의 시를 쓴다는 나태주 시인은,

시로 우리의 마음을 녹여주고 달래주고 때로는 깨달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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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계신 엄마를 간호하면서 읽기 시작한, 시인의 52번째 신작 시집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

엄마와 연배가 비슷한 분의 글을 읽으면서

지나온 시간에 대한 감사와 떠나보낸 이에 대한 그리움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애틋함이 애잔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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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에서 나태주 시인은 날마다 한 편의 시를 쓴다고 전했다.

하루에 한 편의 시를 모아 일 년에 한 번씩 시집을 내는,

부지런하고 자신만의 루틴을 무척 잘 지키는 시인이다.

그런 시인에게 작년 한 해는 번아웃이 왔다고 한다.

번아웃 속에서도 책을 읽고 시를 썼다는 글을 읽으면서

나태주 시인에게 시는,

번아웃을 가져다주는 고통이면서도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숙명과도 같은 그 무엇이 아닐까 짐작을 해 본다.

나는 초등학교 무렵까지도 선생님은 화장실을 가지 않고 우리처럼 된장찌개 또는 찬밥은 안 먹는, 우리와는 뭔가 다른 그냥 신비로운 존재로 생각했다. 나의 그 유아적인 사고는 자라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나 보다. 이어령 교수의 비보 소식을 접할 때도 왜? 편찮으신 건 알고 있었지. 그런데 왜? 교수님이 왜?라는 매우 어린 사고적 반응을 보였다. 연세 드시면, 병환으로 오래 고생하셨으면 당연한 걸 질문하는 내가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이없는데, 듣고 있는 지인들은 답을 찾을 수 없어서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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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그런 이어령 교수의 어린 시절과 연애 그리고 결혼 생활을 『만남』이란 책을 통해 글로 들으면서 조금 놀랐다. 우리와 다르지 않았고, 여느 사람들과 별반 다른 삶을 살으신 건 아니셨음에. 다만 열심히 쓰셨고, 열심히 궁금한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셨고, 열심히 지식을 나누셨을 뿐.

이어령 교수가 세상을 떠나신 지 2년이 지났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실감하지 못했던 탓에 『만남』 을 읽지 않았다면 몇 년이 지난 후에 정말? 하며 부재에 새삼 놀라워했을 것 같다. 이어령 교수의 수많은 책들과 그가 일구어 낸 문화적 변화를 충분히 느끼며 살아왔기에 그것들이 추억으로 남아있기에 그의 부재는 여전히 좀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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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진 독자의 삶이 이러하고 생각이 이러한데, 50년을 부부로 함께 살아온 강인숙 교수는 어떨까 그 마음조차 헤아릴 수가 없지만, 담담하게 이어령 교수와의 추억을 꺼내어 글로 담아낸 『만남』 을 읽으면서 부부의 삶, 학자로서 마주한 삶, 배움과 나눔으로 서로를 향한 삶, 상처를 그대로 안아줄 수 있는 삶, 남편·부인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사람으로 받아들인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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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강인숙 부부의 50년 일기 『만남』 은, 부부의 이야기이자 사람을 대하는 방법, 삶을 이끌어가는 힘, 내면의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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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킨 강인숙, 부부로 70년의 긴 세월을 함께 살아간 이야기가 담긴 『만남』을 읽으면서 이렇게 꼼꼼하고도 잘 만들어진 작품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줄 한 줄, 책장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고, 독자에 대한 예의와 부부에 대한 존중감을 담은 글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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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절대 알 수 없는, 이어령 교수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상처, 가정으로서의 책임감, 새로운 것이라면 당장 사고 알아야 하는 호기심, 지인들과의 길고도 긴 토론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달변가의 모습까지 부인의 손을 거쳐 나온 『만남』은 읽는 동안 가슴이 아팠고, 새로웠고, 놀라웠고, 존경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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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숙 교수는, 이어령 교수이기 전에 남편인 그를 곁에 두고 외로웠던 시간도 있었을 테고, 혼자 집안을 건사하느라 힘에 부쳤을 텐데도 묵묵하게, 잘 하는 사람이 하면 되는 일이라고, 꿋꿋하게 아내의 자리를 지켜내면서도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은, 감성이 살아있는 참 따듯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강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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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국문학자. 1933년 10월 15일(음력 윤 5월 16일) 사업가의 1남 5녀 중 3녀로 함경북도 갑산에서 태어나 이원군에서 살다가 1945년 11월에 월남했다. 경기여자 중·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숙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데뷔했으며, 1958년 대학 동기 동창인 이어령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건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퇴임 후 영인문학관을 설립했다.

저서로는 논문집 『일본 모더니즘 소설 연구』『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도시와 모성』『김동인』『자연주의 문학론 1 · 2』, 수필집 『언어로 그린 연륜』『생과 만나는 저녁과 아침』『겨울의 해시계』『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아버지와의 만남』『어느 고양이의 꿈』『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문명기행 내 안의 이집트』 『셋째 딸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콘스탄틴 버질 게오르규의 『25시』『키랄레사의 학살』과 에밀 아자르의『가면의 생』 등이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영인문학관 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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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전하는, 이어령 교수의 창조 그리고 네오필리아

​그는 존재론이나 생성론에 관심이 많으며, 우주의 원질에 대한 관심, 언어의 음률과 어원에 대한 관심, 예술품의 미적 구조에 대한 관심, 지정학에 대한 관심, 생명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 같은 것들이 내면에서 항상 소용돌이치고 있어서 지적 탐색의 자장이 넓었다. 그는 다각적인 관심의 더듬이로 찾아낸 새것으로 자신의 오늘을 채우며 살아왔다.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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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씨는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 원하던 것이었기 때문에 물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글쓰기가 일이면서 동시에 놀이였다. 창조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글 쓰는 시간이 아무리 힘들어도 지겨워하지 않았다.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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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목수나 컴퓨터 수리공과도 긴 대화를 나누기를 잘한다. 이어령 씨는 전문가를 좋아했기 때문에 어느 분야든 일인자를 만나면 대화가 길어졌다. 네오필리아인 그는 새로운 세계를 아는 것을 좋아해서, 새로운 말을 해주는 사람이나 생각과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다른 예술가들과 만나면 행복해했다. 자신이 혼자 터득한 견해가 전문가의 견해와 부합하는 부분이 있으면 희열을 느끼는 이어령씨는, 새로운 토픽을 탐색하는 일을 즐겼기 때문에, 먼 분야의 전문가를 좋아한 것이다.… '새말 하고 새말 듣는' 대상을 만나는 시간은, 날마다 조금씩 자신을 키워가는,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자양분을 얻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 대화는 살아 있는 대상과 함께 진리를 탐색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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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전하는, 이어령 교수 그리고 어머니

그날 밤 나는 그에게 왜 생인손을 그렇게 점잖게 앓았느냐고 농담처럼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이 처절했다. 엄마가 없는 세월을 사는 동안에, 그는 자기가 아무리 아파도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그때부터 그 낯선 타인들에게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싫어서, 아무리 아파도 이를 악물고 비명을 삼키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이다.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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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 유교적 규범과 예절이 지배하고, 질서정연한 전통적 윤리가 다스리던 안정된 가정은 어머니와 동질성을 지니다. 가족 사이에 신뢰가 있었고, 계산을 초월한 사랑이 있고, 풍성한 생활 문화가 자리 잡았던 평화로운 세계가 어머니의 세계였다.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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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그는 조용했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형님이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갈 때까지 그는 한 번도 아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긴 겨울밤을 어린 것이 신음도 못 내며 꼬박 새웠을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가슴이 멘다. 그 때 그는 이미 엄마가 없는 아이여서 아픔은 혼자 견딜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던 같아서다. … 나는 그가 평생 집필하며 산 그 고통의 세월을 생각하면 자랑스러우면서도 가슴이 아프다. 그의 저서들은 모두 그의 생인손이었던 것이다. 「어린 날의 기억들」 이서영(이어령 선생의 넷째 형)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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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전하는, 이어령 교수의 진심

그가 제일 섭섭해하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정정하다고 하는 말이었다. 사실 손님들은 그와는 너무 먼 곳에 서 있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내일이 있는 사람들이다. 삶을 보는 눈에 격차가 있다. 내일이 확보된 사람들을 보내고 나면, 내일이 있을 것을 믿기 어려워진 환자는 더 깊은 외로움에 자지러진다.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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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전하는, 이어령 선생의 말

그는 언제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듣는 이가 하나밖에 없을 때도 '큰 소리로, 온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열어 보인다. 그런 때가 그의 모습이 가장 빛나는 시간이다. 그가 선호하는 화두는 지적이고 추상적인 것이다. 다행히도 그것은 항상 참신하다.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어서, 조심하려고 하는데 잘 컨트롤이 안 되는 것 같다. 달변과 독과외는 서로 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이 되면 자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제자는 "그 달변의 선생님은 늦은 밤 불빛 아래서 홀로 얼마나 많은 침묵과 마음의 흔들림의 시간을 보내겠는가"라고 스승의 심중을 헤아려드린다. 그리고 그 "고독과 침묵과 마음의 흔들림을 우리 앞에서의 달변으로 가리는 것이 선생님 특유의 '수줍음'의 표시인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175~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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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전하는, 부부 이야기

인간은 누구나 자기 말을 귀담아들어주는 사람이 적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니, 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공감하면서, 경탄하면서 자기 이야기만 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소원인데, 상대방도 똑같은 걸 원하니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 5인 가족이 되니 가정은 대가족에 얽혀 도는 현실의 소용돌이가 되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비본질적인 문제들이 그와 나를 갈라놓고, 둘 다 외롭게 만들어갔다. 부부는 찻값을 치르고 나면 끝나는 단출한 양성 관계가 아닌 것이다. 에밀 아자르의 말을 빌리자면 "습관화된 일상 quotidien familier"이 삶의 "진정성 auhnticite"을 덮어버리는 세계다. 140~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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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억력이 비상한 인물이다. 그래서 내게는 살아 있는 사전이다. 지금도 관성이 남아 있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를 찾다가 그의 부재에 넋이 나가는 일이 많다.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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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큰 도움은 내가 모르는 세계를 그에게서 계발받는 것이다. 그는 문학이나 예술뿐 아니라 경제에도 정치에도 박학하니, 그에게 물으면 모든 문제의 답이 저절로 나온다. 그런 다양성이 외곬으로 파고들어 편협해지기 쉬운 나의 세계에 융통성을 보태주어, 침체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건성으로 얻어듣는 지식이 내 문학의 보폭을 넓혀주는 것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나의 고지식함이 그에게 안정을 준다면, 그의 역동적인 삶은 나의 침체를 막아준다. 그런 이색 조화가 우리를 회혼 回婚이 넘도록 같이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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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이 전하는, 부부란

70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생과 사를 달리하여 혼자 남았다. 순간순간 부재를 확인하게 되며, 그가 남긴 많은 책과 흔적들을 담아 문학관을 건립하고 그가 남긴 수많은 영상들을 통해 그를 만나는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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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인이 유명인사가 아닌, 남편 이어령, 글쓰는 일을 좋아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이어령, 단단해보이지만 가슴 한 켠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묻고 사는 막내 아들 이어령, 이혼을 결정하면서 모든 재산을 주겠노라 말한 가장의 책임감을 다하고자 한 이어령에 존경과 사랑을 담아 쓴 『만남』 은, 읽는 동안 참 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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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는 나에게 작가였고, 학자였고, 달변가였으며, 강연가였다. 부인이 쓴 『만남』 을 통해 유독 글쓰기를 좋아하고 배움을 쉬지 않았으며, 배우고자 나누고자 말을 참 많았던 한 사람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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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을 통해 서로에 대한 애정을 넘어 존경한 부부의 살아가는 또다른 세상을 만나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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