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의 침묵]을 만난 후로 손꼽아 기다려 온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의 최고 걸작이라 일컫는 세번째 시리즈 [제너럴 루주의 개선]. 그들의 입담과 더불어 이번에는 예상치 못했던 여러 인물들의 입담도 함께 만날 수 있는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이번에는 간호사가 아닌 도조대학병원 구명구급센터 부장인 하야미 고이치가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는 주인공이다. 추파츕스를 물고 다니는 피투성이 장군.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표지에 그려진 인물과 제너럴 루주가 무엇을 뜻하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평범한 의사라고 하기엔 뭔가 삐딱선을 탄 듯한 얼굴. 하지만 이 궁금증은 책을 펼쳐든지 채 되지 않아 풀린다. 물론 제너럴 루주의 의미는 좀 더 읽어야 알게 되지만...
이 책의 재미나는 특징은 바로 전편 [나이팅게일의 침묵]과 같은 시간,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점이라는 것이다. 이런 구성은 처음 접해보는데 읽는 내내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했을 정도다.
이야기는 하야미가 특정 업체와 유착되어 있다는 익명의 고발 문서로 시작되는데 이 사건을 둘러싼 리스크 매니지먼트 위원회와 에식스 커미티, 즉 다구치와 누마타의 불꽃튀는 대결이랄까. 이 책의 절정이라고 꼽을 정도로 이 둘과 둘의 측근들의 팽팽한 신경전은 보는 내내 보는 긴장감과 재미를 증폭시킨다. 마치 존 그리샴의 소설을 보는 듯 말이지. 또한 한 때 유행했던 다마고치를 하는 등 예상치 못한 행동을 일삼지만 목표물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시라토리와 [나전미궁]에서 본격적으로 만나 볼 등장부터 심상치 않은 그녀 ’미스 도미노’ 히메미야 까지!
사실 [나이팅게일의 침묵]과 달리 범인(?)이 누구인지 명백하게 중반부에 닿기도 전에 밝혀지기 때문에 나름 추리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아쉬운 맘이 들어서 책을 덮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망설이기까지 했었다. 아.뿔.사! 큰일날 뻔 했다. 후반부로 치닫을 수록 증폭되어 가는 두근거림과 재미! 오히려 범인이 누구인지를 떠나서 하야미를 구출하기 위한 다구치와 시라토리의 입담과 하야미의 드라마 저리 가라는 멋진 발언과 활약들! 이와 더불어 통제 불가능 간호사 쇼코와 간호사장 하나부사와의 삼각관계! 이번 편은 뭔가 달라도 다르고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하야미를 통해 들여다 본 처참한 의료계의 현실. 재미와 더불어 씁쓸함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바라던 ’닥터헬리’의 도입은? 그리고 그의 마지막은?
의료와 윤리, 어느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이 같은 의료 체계에서 윤리만 밀고 나간다면 결국 의료 체계는 무너질 것이 자명하다. 어느 정도 발란스를 맞춰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단 권으로 읽어도 이해하는데 지장없지만 그래도 전편 [나이팅게일의 침묵]을 읽으면 더욱더 재미있을 것이다.
[하야미] 설득이 효과가 있어서 부검을 했다. 그 결과 문제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럴 땐 어떡하지? [사토] ‥‥‥뗍니다. [하야미] 뭐? [사토] 시치미를 뗍니다. 사인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 다행이라고 환자 부모님에게 말하면서 얼버무리며 넘어갑니다. [하야미] 합격이야, 사토. 한두 번 진단이 어긋난 정도로 사표를 낸다면 구급의는 이 세상에 한 명도 남아 나지 못할 거야. / 사표를 낸다고 책임감이 강한 게 아니야. 그런 놈은 ’풋내기’라고 불러야 하지.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건 신이지. 난 지금부터 신이 될 거야.
현재 경제 시스템에서는 의료의 근간을 이루는 분야가 푸대접받고 있어. 우리가 하는 일은 경찰관이나 소방관과 마찬가지야. 사고가 없으면 무위도식하는 거지. 그렇다고 국가가 경찰관이나 소방관에게 이익을 내라고 요구하던가? 경찰과 소방서에 세금이라는 경제 자원을 분배하는 걸 국민이 거부하나?
이래도 윤리, 저래도 윤리. 윤리라는 소리 좀 그만 했으면 좋겠군. 누구도 나를 재판할 수 없어.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 그게 누굽니까? / 나를 재판할 수 있는 사람은 내 눈앞에 누워 있는 환자뿐이야.
당신은 무엇 하나 부담을 짊어질 생각 없이, 안전지대에 숨어 있기 때문이지. 그런 인간이 남을 심사하거나 하물며 처단할 자격이 있다고 보나? / 내 영역을 건드리고 싶다면 이리 내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