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많은 수의 법륜 스님 저서들이 시중에 나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실제로 읽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법륜 스님의 행복』. 요즘 좀 힘들게 느껴지는 일들도 많고,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아 괴로운 순간들도 많은데, 이런 때에 마침 무척 시기적절하게 읽게 되는 책인 것 같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법구경

 

 책 앞장에 친필로(비록 인쇄본이지만) 쓰신 이 법구경의 구절이 책의 정수를 고스란히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결국 행복도 불행도 모두가 내 마음에 매인 것이고, 행복과 불행을 만들고 느끼게 하는 것도 오로지 나 자신에 의해 비롯한 것.

 

 여러가지 사례를 들고, 일의 인과관계를 따져 조곤조곤 설명해주시는 스님의 말씀이 마음에 잘 와 닿아 좋았습니다. 스님의 어릴적 꿈이 과학자였고, 이치를 따져 앞뒤가 맞게 설명해야 반발도 적고 의미도 잘 전달되기에, 최대한 그리하려고 노력한다 하시더군요. 말씀대로, 조금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이론적인 이야기일지라도 나름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만큼 앞뒤 맞게 잘 따져가며 설명해주고 이야기해주셔서 큰 거부감이나 반발심 없이 고스란히 마음에 잘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상식적인 이야기도 있고, 참된 말씀도 있고, 아프게 느껴지는 나무라는 소리도 있고. 한 번 스윽 읽고 덮어둘 것이 아니라 살면서 곁에 두고 삶이 힘겹게 느껴지고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한 번씩 꺼내어 들추어 보면서 마음도 다잡고 기분도 전환하고 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법륜 스님의 말씀이 담긴 다른 저서들도 한 번씩 찾아 둘러보고, 세상에 찌든 어지럽고 힘겨운 시간을 벗어나 내 삶과 내 마음을 위한 참된 시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참 인상적인 제목입니다. '라플라스의 마녀'. 굳이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란 사실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한 번쯤 돌아보고 집어들고 훑어볼만한 흥미로운 제목. 표지디자인도 손길을 부르는 오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

 한번에 훌훌 읽어넘길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몰입감과 속도감은 여전합니다. 이것저것 가져다 쓴 재료들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고, 이번에는 조금 특이한 소재와 함께, 제법 박력있는 라스트 씬까지 마련해 놓았네요.

​

 그렇지만 허점들도 분명합니다. 작가가 만들어낸 '라플라스의 악마' 혹은 '라플라스의 마녀'의 능력이라는 것이 갈팡질팡 때때로 다르게 느껴지고, 그 능력으로 인류의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다는 설정이 와닿지가 않습니다. 물리법칙과 경험칙에 의한 것일 뿐이고, 그들이 무당도 작가도 아닐진데 웬 인류의 미래?!

​

 뭐, 어차피 그들의 탄생부터가 말 안되는 얘기고, 파고들면 작품 자체가 성립이 안되니 적당히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야겠지만 과학적 소재를 그럴싸하게 녹여내는 재주가 제법 있는 작가양반의 솜씨가 이번에는 어쩐지 어설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작가양반은 이건 이런것이다 라고 주장하며 자기 입맛에 맛게 얼기설기 조리해 내 놓았지만, 분명 이건 먹을 음식이 아닌 음식처럼 보이는 유사한 무엇인가일 뿐이라는 느낌입니다.

​

 그리고 중간에 에둘러 가는 부분이 솔직히 좀 지루합니다. 사실 연결고리와 진상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단서 몇 개면 대번에 얼개가 보이는 구조인데, 그걸 포장하고 부풀리다 보니 중간부분들은 적당히 눈으로 흘려읽고 넘기기에 바쁩니다. 호흡 긴 문장 없고, 크게 부풀리는 잡내용도 없어 속도감 빠르지만 대신에 크게 허투루 쓰이는 내용도 별로 없었던 기존작들에 비하면 중반부의 절반 정도는 덜어내고 압축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

 30주년 기념작이라는 광고문구가 읽는 이의 기대를 부풀린 대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30주년 기념작스러운 오묘한 매력 넘치는 표지 장정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30주년 기념작이라고 했지 대작이라고는 안했다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

 어쨌거나 읽는 맛과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재미난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범인과 그들의 관계, 사건에 얽힌 진실, 진실과 빛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

 역자 후기에 보면 일본 출판사 관계자들이 처음에 원고를 받고 '이런 깜짝 놀랄 반전이'라고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그럴만큼 깜짝 놀랄 반전은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냥 한 편의 노멀한 드라마 같다는 생각. 요즘 드라마들도 미스터리 요소나 반전을 이용해 딱히 추리 미스터리 장르가 아니더라도 제법 뒷통수 치고 헉 소리나는 충격을 주는 작품들이 꽤 됩니다. 물론 그러한 작품들도 사실은 추리 미스터리 장르에서 많은 걸을 보고 배워가고 차용해 갔겠지만 말이지요.

​

 이것저것 단점들을 나열했지만 사실 읽는 내내 별로 실망스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재료를 조미료로 버무린 음식이라, 깊은 맛이나 놀라운 맛은 없어도 맛이 그리 없지는 않거든요. 최근 몇 년 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평균치 수준입니다. 딱, 그 정도에 이르는 맛.

​

 언젠가는, 기존에 명작으로 분류된 수준 정도의 작품을 하나 더 내놓겠지 하는 심정으로 계속 찾아 읽어 나아가겠지요. 아마도, 돈벌이가 쏠쏠하니 일본 출판사들이 작가를 물고 놓지 않아서 계속해서 작품을 양산해 내야만 하는 입장이겠지만(아니면 그 반대의 입장일지도), 몇 년이 걸려도 좋으니 심혈을 기울여 대작다운 대작 하나 내주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써내는 족족 팔리기는 많이 팔리니 작품의 질은 상관없다, 뭐든 써서 일단 출판하고 보자 하는 최악의 상황만은 아니길 바랍니다. 작가도, 출판사도.

​

 작가도 나름 고심하고 쥐어짜내서 힘겹게 써낸 것인데 너무 가혹한 얘기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보는데, 어쨌거나 히가시노 게이고니까 하는 넋두리죠. 다시 말하지만, 이번 작품, 그리 재미없지도 않았고 별로 실망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작가 이름란에 '니시노 게이고' 라거나 '히가시노 게이키' 정도의 이름이 걸려 있었다면, 분명 오~ 제법 그럴싸한데~ 라는 반응도 나왔을 법 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니시노도 아니고 게이키도 아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었다는 것. 뭐, 사실 문제라고 할 것 까지도 없습니다. 그저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일지, 나름 고심한 트릭과 소재와 반전이 등장할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뭐가 됐든, 분명히 나오기는 나올 것이니까요.

​

 

 길고 긴 『전국지』의 강을 드디어 다 건넜습니다. 지난 해 겨울 초입에 시작해 어느 덧 초봄의 바람이 슬슬 불어올 무렵이니, 올 겨울은 오롯이 전국지와 함께 났다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합니다. 완간된 채로 발간되었기에, 사실 한달음에 독파할 수도 있었지만 사정도 있고, 중간중간 다른 책도 여러 권 읽어가며 도하했기에 기간이 좀 길어졌습니다.

​

 5, 6권은 아즈치 시대를 저물게 한 일대의 대사건인 '혼노지의 변'을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 읽기 전엔 미처 예상치 못한 분량이었는데, 마치 소설 '아케치 미쓰히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혼노지의 변 전후 미쓰히데의 소상한 생각과 행동과 전과 등을 서술하고 있으며, 노부나가 쪽 역시 그 즈음의 사소한 사건이나 행동들도 제법 소상히 쓰고 있습니다. 당시의 많은 기록들과 야사, 전해오는 이야기 등을 규합해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해 쓴 것 같은데, 여타 다른 전국시대물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 새로우면서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혼노지의 변 이전 부분에서는 히데요시의 빗추 다카마쓰 성 수공水攻장면 이외에는 히데요시 분량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미쓰히데에게만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

 작가의 상상력을 토대로 작가의 미쓰히데를 위한 변명, 이후 시대의 부름과 흐름 등 작가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드러난 부분이 많습니다. 육천마왕 노부나가도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미쓰히데 하면 흔히 배반자라는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낙인찍혀 오랜 세월을 지내왔을텐데, 그 전후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작가의 목소리를 더해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여지를 남겨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

 물론, 작가의 존왕사상이나 배신자의 말로와 서민들의 행보와 믿음 등 중간중간 직·간접적인 술을 보면 주군을 배신한 미쓰히데를 옳게 보고 있지 않은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만, 미쓰히데의 고뇌와 어려운 걸음걸음을 잘 묘사해 놓아, 보고 생각해보고 느껴볼 재료가 풍부한 점이 특징이자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

 어쨌거나 다이코太閤가 주인공인 '신서태합기' 중의 제법 큰 분량을 '휴가노카미 미쓰히데'가 차지해 가져가버렸는데,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의 마지막이 고마키·나가쿠테 전투 이후 이시카와 가즈마사의 배반 사건 즈음해서 뚝 끊어져 버린다는 점이 조금 아쉽고 어리둥절하기까지 합니다. 

​

 신문연재 후에 책으로 발간된 작품인데, 중간에 일본의 패전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던 바 있고, 이후 '속태합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이어 나갔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히데요시의 생애 끝까지를 다 쓰지 않고 애매한 곳에서 뚝- 끝내버렸는가는 상당히 의아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후 작품활동을 중단한 것도 아닐진데, 쓰다 지쳤다거나, 새작품에 매진하기 위해서였다거나, 어쨌거나 알쏭달쏭 알 수 없는 일입니다.

​

 아무튼 혼노지의 변 이후 기요스 회의를 거쳐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고, 시즈가타케 전투를 거쳐 시바타 가쓰이에를 무너뜨리는 장면들도 무척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이에야스를 굴복시키고 일본을 통일하고 이후 말년까지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데,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번뜩, 한국인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짜증나는 임진왜란에 대한 묘사와 감정들을 보고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무척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되기전 '하시바 히데요시'까지는 조선이나 한국과는 큰 상관 없는, 그저 타국의 영웅 중 한 명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

 전체적으로 정취와 정경에 대한 단정하면서도 세세한 묘사와 작가만의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당시 시대상을 둘러보기도 좋고, 각종 기록에서 찾아낸 무장들의 소소한 일화를 알게 되는 재미도 충만했습니다. 다만, 서술이나 묘사는 나름 훌륭한 것이 많은데, 대사처리는 살짝 유치하고 아쉽게 느껴지는 것들이 간간이 있어 옥의 티로 남는 것 같습니다.
 
 초반부 유소년기의 히데요시에 대한 미화도 그닥 공감안되고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만, 작품이 뒤로 갈수록 그런 종류의 아쉬운 부분은 사라지고, 무장들의 이야기와 정세의 흐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알게 모르게 작풍이 조금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조금은 다행스러운 부분입니다. 사실 5권 이후 부분부터는(앞쪽 권들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이 히데요시인지도 살짝 아리송할만큼 히데요시에 집중되지는 않고, 노부나가, 미쓰히데, 가쓰이에, 이에야스 등 여러 무장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

 한동안 찾지 않았던 전국시대물이 지니는 고유의 풍류와 재미를 간만에 느낄 수 있게 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전국시대물은 다양한 종류를 함께 하게 되면 재미가 배가 되어 몰입도가 제곱으로 상승하므로, 여타 다른 작품이나 다른 플랫폼 형태의 작품과 함께 하면 밤새는 줄 모르는,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는 재미와 중독성을 발휘하게 마련입니다. 간만에 기존의 책과 다른 플래폼 형태의 작품(이를테면 게임이라거나, 혹은 게임이라거나....)을 다시 찾아 무섭고도 매섭게 몰입하고픈 충동을 들끓게 만든 소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실제 시기를 놓고 보면 짧지만 그 어느 때보다 굵고 굴곡있는, 야망 넘치고 각각의 정념과 정력이 힘차게 요동치는 난세를 살았던 전국시대의 무장들. 그들이 자아낸 역사와 인생의 드라마는 그 어느 시대의 것과 견줘도 이보다 더 다이나믹하고 드라마틱한 것을 찾기 쉽지 않을 정도로 뜨겁고도 흥미진진합니다. 전국시대 이야기들 가운데 큰 줄기 하나가 될 『전국지』를 잘 만들어 내주어 그 진한 감동을 맛볼 수 있게 해준 출판사에 거듭 감사드리며, 앞으로 재미있는 다양한 작품들도 번역·출간해 주시길 기대하고 고대합니다. 

​

 

전국지, 요시카와에이지, 문예춘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