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천원권 지폐에 새겨진 인물로, 성리학의 거두 중 한 사람으로, 청렴한 관리의 한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대체로 그런 유명세나 업적 이외의 생활이나 삶을 알기란 쉽지 않았다. 이는 이퇴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유명한 선비나 관리들에 해당되는 일이기도 하다.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는 이황이 장남 이준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책으로 이황과 주변의 생활상, 아들을 걱정하고 다그치는 애틋한 부정父情, 집안일을 다스리고 걱정하는 마음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 매우 훌륭한 기록이자 사료史料였다.

 

 천원권 지폐나 교과서 등에서 보여지는 이황 선생의 영정影幀의 영향과 더불어 명망 높은 이황 선생 이름 자체에서 오는 영향 덕분에 매우 고상하고 고매한 성품으로 사소한 것에는 신경쓰지 않는 전형적인 사대부 바깥양반일 것이라 예상했던 선입견을 철저하게 깨준 편지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흰 접는 부채 2자루와 둥근 부채 2자루, 참빗 5개, 먹 한개, 붓 한 자루를 보낸다. 접는 부채와 참빗은 너의 처에게 전해주면 좋겠구나.’, ’또한 (토지, 재산) 문서는 상자에만 담아 보낸다면 너무 허술하지 않겠느냐? 마땅히 봉한 것이 완전한지 완전하지 않은지 살펴보아 너희들이 더욱 잘 봉하여 가볍지 않더라도 잘 간수하여 직접 가지고 오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등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 도처에서 드러난다. 집안의 종들의 성향과 성격을 파악하고 이 종은 이러하니 다그치고 저 종은 저러하니 중히 쓰라는 등의 모습들도 나타나 있다.

 

 이황 선생이 생전에 쓴 편지들 가운데 지금 남아있는 것만 무려 3천통 이상인데 이중 아들에게 보낸 516통 중 162통을 실어놓았다고 한다. 그 당시야 서간이 전화나 문자, 이메일을 대신하던 시대였으니 쓴 편지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편지들이 고스란히 지금껏 전해오는 것이 무척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장남, 아들에게 쓴 편지들이다 보니 아들의 건강과 공부에 관해 묻고 다그치는 내용들이 무척 많다. 예나 지금이나, 신분이 높으나 낮으나,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아들을 걱정하고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은 매한가지. 장가를 들고 나이가 들어감에도 급제하지 못해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아들에게 허송세월말고 산사에 들어가 독서하고 공부하라는 다그침이 제법 직설적이고 따끔했다. ’너희들은 날로 나아갈 줄을 모르니 아마도 날로 퇴보하여 마침내는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말까 두렵다.’라거나 ’끝내는 농부나 군대의 졸병으로 일생을 보내고자 하느냐?’ 등 매서운 표현들도 많았다. 때로는 마치 나를 향한 이황 선생의 눈초리가 느껴져 이황의 장남에 일시 빙의(?)되기도 했다. ^^; 그러나 역시 아들이 먼길을 오가고 상을 치르거나 대소사를 처리함에 있어서 고생되지는 않았는지, 병에 걸렸을 때 차도가 있는지를 걱정하는 마음이 곳곳에 깊이 배어있어 아버지의 따스한 부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상喪 중에 학질에 걸린 아들에게 고깃국을 먹도록 한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때로 그런 경우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밖에 외종조부에게 수양손으로 가 있다 일찍 죽은 차남 이채에 대한 안타까움, 집안의 형제들과 조카들의 좋고 나쁜일들을 기뻐하고 슬퍼하는마음들도 적어놓았다.

 

 또한 이황의 학문적 성과와 명망에 비해 벼슬이 그리 높지 않았던 데에 품었던 의문도 해소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이황의 체질이 병약하여 병치레를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권문세도가가 아니었고, 학문에만 매진하고자 한 뜻, 조정의 치열한 다툼에 회의를 느낀 바도 크겠으나 한창의 나이에 주어진 벼슬을 오래 지내지 못하고 일하는데 힘에 부쳐하는 모습들이 자주 나온다. 말년에는 재산이 꽤나 모였다고는 하나 당시에는 장남을 처가살이 시킬 정도로 집안이 가난하여 녹봉을 받아야 함에도 자꾸만 제수된 벼슬을 사양하고 깊은 고민만 거듭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내내 이황 선생의 가슴을 그토록 졸이게 만들고 애타게 했던, 줄곧 편지를 받아 읽어야 했던 당사자 이준의 출사出仕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황이 55세 되던 1555년에 이준은 음직으로 제용감의 봉사로 나아갔다고 한다. 이황은 고향에 돌아와 손자, 며느리와 함께 지냈는데 이때부터는 외지에 부임한 아들에게 또 걱정과 근심어린 편지들을 보낸다. 관직생활에 관한 조언들과 관직을 옮기는 일, 남명 조식의 일과 같은 중요한 소식은 꼬박꼬박 알리라는 등...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형편이 좋으나 나쁘나 아버지에게 아들은 아들일 뿐.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처음부터 끝까지 애타는 부정과 애틋한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그 어떤 글보다도 진솔한 마음이 가득 담긴 퇴계 이황의 향기롭고 따스한 글들, 무엇보다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한, ’이황의 보낸메일함’이었다.

 노자老子의 이름이 처음으로 머리속에 각인되었던 것은 조금 뜬금없게도 중국의 김용이 쓴 그 유명한 '영웅문'의 한 구절에서였다. 주백통이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읽고 깊게 감명받아 72로의 공명권을 창시했다는 구절이었다. 십수년전에 읽은 그 긴 장편소설 가운데에서도 아직까지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 구절, 노자의 도덕경. 중고등학교 사회, 윤리책에서나 보던 노자를 알기 쉽게 풀어 쓴 <유쾌한 노자 현대인과 소통하다>.

 

 이 책은 노자도덕경을 요약하고 추려서 바쁜 현대인들이 손쉽게 섭취할 수 있는 이른바 '경전 패스트푸드'를 표방하고 있다. 원문을 가져다놓으면 읽고 해석하는 것 만으로도 진이 빠져버릴 것이기에 적절히 가공하여 먹기 좋게 만들어놓았다는 얘기다. 5장 44강에 걸쳐 노자의 주요 사상과 가르침을 재해석하고 여러가지 에피소드와 이야기들로 풀어놓았다. 그 뒤에 원문과 원문해석을 실어놓아 비교해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한 꼭지씩 꼭꼭 씹어 읽으며 가르침을 되새기기에 적절한 구성인 듯 싶다.

 

 노자 역시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한 사람이기에 시대적 부응과 고민의 탓인지 전체적으로 위정자爲政者를 위한 가르침의 성격이 큰 느낌이다. 물론 개개인의 마음가짐과 자세에 빗대어도 크게 벗어나는 말씀들은 아니다. 끊이지 않는 왕조의 부흥과 멸망, 계속되는 전쟁과 싸움 속에 피폐해진 백성과 피통치자들을 쓰다듬고 보듬기 위해 통치자와 제왕들을 훈계하고 백성, 백성 이전에 사람들을 위한 정치와 통치를 하도록 이끌고 있다.

 

 현대 학자들은 노자도덕경이 노자 홀로 쓴 경전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한다. 태상노군으로 신격화 되기까지 하는 노자 한 사람의 사상과 가르침이라기 보다는 여러 사람의 손과 생각이 모여 바르고 참된 진리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노자의 가르침 그 자체로서 더욱 걸맞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몰년도 알 수 없고 자세한 행적에 대한 기록도 사마천의 사기에 짧막하게 언급되는데 그치고 있는 노자의 흥미로운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는 바로 공자孔子와의 만남이었다. 노자는 지나치게 야심만만하고 오만한 공자를 꾸짖었고 공자는 크게 감명받아 노자를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으로 비유했다고 한다. 노자의 구체적 행적을 알 수 없는 현실에서 이 만남조차 진실인지 허위인지 가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까지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공자와 노자의 사상과 생각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좋은 이야기거리인 듯 싶다. 공자가 당시의 통치체제나 왕권하에서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통치하는 현실담론을 추구했다면 노자는 다른 측면에서 이상담론을 추구했다고 생각된다. 물론 공자와 노자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고 공부해 보지않은, 그야말로 미천한 생각일 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유쾌한 노자 현대인과 소통하다>는 이 책을 저술한 왕융하오의 주관이 개입된 해석이기에 도덕경을 직접 공부해보고 비교해보는 것이 더 바른 길이겠으나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길이므로 이와 같은 해설서를 읽고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듯 하다. 마지막으로 조금 아쉬웠던 것은 원문의 독음을 조그맣게나마 달아주었더라면 더 읽기 쉽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래도 평소에 한자를 좀 읽었던 터라 제법 읽어낼 수는 있었지만 조금 어려운 한자, 긴가민가 하는 한자들이 많았다. 물론 한 자 한 자 찾아보며 해석하고 읽어보는 것 자체가 더 공부가 되긴 할 것이다. 편집의 문제였겠지만 원작에서 표방한대로 이왕 읽기 쉽고 먹기 쉬운 경전 패스트푸드일 바에야 조금만 더 친절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못다꾼 꿈을 이루기 위해 57세에 등단해 짧은 기간 왕성한 활동을 한 독특한 이력의 수필가 목성균. 이름은 낯설었지만 그의 수필전집 <누비처네>를 펼쳐든 순간 낯설지만은 않은 문체와 서정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글들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흘러들어왔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한없는 그리움을 담아, 때로는 희화적으로 삶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이야기하고 목놓아 추억을 노래한다. 

 옛스러우면서도 우아하게 잘 쓴 글 몇 편을 읽어가다 보니 점점 이 책이 목성균의 ’전집’인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수필의 참맛, 잘쓴 글을 써낸 작가의 글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점점 자라났기 때문이다. 그만큼 괜찮은 작품들이고, 소장하며 삶의 켜켜이 꺼내어 들추어보고 재삼 음미하고픈 수필집이다. 소설과는 달리 재탕삼탕해도 향기가 진하게 우러나고 오히려 향이 더해가는 것이 역시나 수필의 참맛.

 세어보니 모두 101편. 95년 등단했으나 왕성하게 활동하기로는 4년여쯤이 전부인 노작가의 작품 치고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 늦은 나이에 뒤늦게 등단한 것이 못내 아쉬워지는 대목이기도 하나, 그것이 오히려 목성균의 수필을 빛나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청운의 시절에 멋모르는 패기 하나로 문학을 위한 문학, 글을 위한 글을 썼다면 결코 나오지 않았을 내공이 오랜 세월 햇살에 바래지고 풍파에 깎이며 다듬어지고 정돈되어, 진하게 우러나온 뚝배기 국물맛의 참다운 글로 승화된 것이다. 한낱 젊은날 명망을 위해 쓴 글이 아니다 보니 얕은 수, 허튼 수가 적고 자극적이거나 위태롭지 않아 편안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가슴속에 흘러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노작가의 글이다보니 고어투가 많고 사전을 뒤적이지 않으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단어들도 종종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 역시 나름의 공부이고, 굳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거나 사전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그러거니 하며 어림짐작으로 읽어내는 것도 목성균 수필을 읽는 맛이라 하겠다. 표제작인 ’누비처네’ 역시 처음 봤을땐 무슨 뜻인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누비처네’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아기엄마나 유부有婦님들은 진즉 알았을까? ^^; 

 
 세대도 다르고 타인의 추억이지만 기꺼이 감화되어 그 어느 소설보다도 재미있게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고인을 추모하며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종완님의 말처럼 ’목성균은 후대 수필가들의 기형도가 될 것’이라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