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부터 무슨 이야기일지 팍~ 감이 오는 <공항의 품격>. 공항에 근무하는 여행사 파견 직원, 일명 '아포양'의 열혈 공항 근무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이다. 원제 역시 '아포양(APOYAN, あぽやん)'인데, 에어포트의 일본식 발음을 줄인 '아포'에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뜻하는 '양(やん)'이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곧 서른을 앞두고 나리타 공항 발령을 받은 엔도 게이타. 공항 근무라면 언뜻 화려하고 멋있는 일들이 많을 것 같지만 여행사 파견직원의 입장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본사 근무를 하다 공항 발령을 받는다는 것은 곧 좌천이나 다를바 없는 인사, 엔도의 갈길은 창창하기만 한데 비전은 없는 공항 근무.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오랫동안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진 상태. 좌절과 절망속에 공항 근무를 시작한 아포양 엔도는 선배 이마이즈미, 자회사의 계약직 사원들인 모리오, 바바 등과 함께 온갖 우여곡절과 에피소드를 겪으며 점차 열혈 아포양으로 성장해 나간다. 본사에서 좌천된 것도 사실상 직장 상사가 일삼는 불의(?)에 저항하다 당한 것인 만큼 마음만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남자였으니까.

 

 <공항의 품격>은 공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지만 그전에 직장에서 근무하는 회사원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이기도 하다. 성질 부리는 선배에서부터 수군대며 서로 알력을 행사하는 여사원 무리들, 현장을 잘 모르는 본사나 지점 직원들과의 충돌, 무능력해 보이는 소장에 대한 한숨과 외부에서 가해져오는 압박, 사내연애(?)까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요소들이 모조리 산재해 있다.

 

 그러나 역시 이 <공항의 품격>은 공항이라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과 공항에서 근무하는 조금은 특수한 직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 할 것이다. 작가 역시 6년 동안 여행사에서 근무한 바 있어, 현장을 묘사하고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숨가쁜 에피소드를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엔도의 OJT(직장 내 교육훈련)를 담당한 베테랑 아포양 이마이즈미와의 만남, 재입국 비자가 없어 한번 출국하면 다시 일본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철없는 일본계 브라질 소녀에 관한 이야기, 투덜대는 선배 호리노우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예약을 해놓고 결코 출국하지 않는 '하늘하늘' 할머니 노사카 부인, 여권을 두고온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홀연히 두고 여행 떠나버린 가족, 아슬아슬한 사내연애의 조짐, 누군가에 의해 예약이 취소되어 그 진상을 밝혀나가는 추리단편과도 같은 '생쥐와 탐정', 무기력하고 무능력해 보이기만 하던 말년 소장을 다시보게 만든 그의 마지막 패기, 아쉽기 그지없는 좋은 사람들과의 이별 등등.

 

 예상 외로 긴박하고 스릴 넘치기까지 하는 에피소드들, 트러블과 충돌로 시작하지만 종내에는 오해를 풀고 좋은 인연으로 바뀌게 되는 정많은 사람들, 열혈 청년 엔도의 사랑과 성장까지. 간만에 읽은 유쾌하면서도 재미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싶다. 이 분위기 그대로 이어서 다음 작품 '연애의 품격'이 곧 출간된다고 하니 가슴 뜨거운 엔도와 위태롭고도 평화로운 공항을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아 무척 기대된다.

 

 그리고 인물과 에피소드가 확실한 이 작품, 드라마화 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드라마화 된다면 유쾌하면서도 즐거운, 평화롭고도 긴박한,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정말 좋은 작품이 될 것 같다. 엔도의 모습과 공항의 풍경이 실사로 그려질 그 날을 기대해 본다.

 미야베 월드 2막, 즉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물은 시대상과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고, 고즈넉한 분위기와 기구한 사연, 무서운 사람의 마음을 복잡다단한 사건으로 담아낸 재미있는 작품들이다. 그녀의 현대물 못지 않는 재미를 보장하며, 오히려 현대물들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작품들도 있다. 여성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담아낸 문장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류작가가 남자들의 마음이나 남자들만의 사소한 행동들을 어떻게 알고 썼을까 싶어 흠칫흠칫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단편집 <말하는 검>은 미야베 월드 2막 가운데서도 초기작에 해당하는 작품이며,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 이어 두번째로 펴낸 시대물이라 한다. '길 잃은 비둘기', '가마이타치', '섣달의 손님', '말하는 검'까지 총 네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 중 '길 잃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은 <흔들리는 바위>와 <미인>의 주인공 오하쓰가 등장하는 단편들이다.

 

 오하쓰가 처음 등장하여 기이한 능력을 드러내게 되는 '길 잃은 비둘기'는 병에 걸려 죽어가는 상회의 주인과 그 안주인 이야기다. 60여 페이지의 짦은 작품이지만 미야베 월드 전형과도 같은 여러가지 요소들이 모두 들어가 있으며, 좀 더 엮어서 장편으로 개작해도 충분히 좋을 법한 작품이다.

 

 '가마이타치'와 '말하는 검' 사이에 놓인 '섣달의 손님'은 짧은 이야기로, '왠지 그럴것만 같았던(?)' 손님과 여관주인에 관한, 그야말로 옛날이야기 같은 작품.

 

 '가마이타치'는 '쓰지기리(辻斬,つじぎり)-밤길에 무사가 행인을 무차별적으로 베던 일'에 관한 사건이다. 우연히 가마이타치를 목격한 의원의 딸 오요와 그녀를 옥죄어 오는 가마이타치. 독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여러 장치들로 인해 반전에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검마劍魔에 물든 진짜 가마이타치는 누구인가.

 

 검마 '가마이타치'와 대비되는 표제작 '말하는 검'은 말 그대로 말하는 검과 마검魔劍에 대한 이야기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오하쓰에게까지 온 말하는 검. 영험한 오하쓰는 남들에게 우우우- 하고 우는 소리로 들릴 뿐인 이 와키자시(긴 칼과 함께 차던 작은 칼)의 말소리를 제대로 알아듣게 되고. 말하는 검의 등장과 함께 주변에서 칼로 인한 참극이 연달아 벌어진다. 도공의 혼과 기구한 사연이 담긴 말하는 검과 또 하나의 검.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 이 단편 역시 장편으로 개작하면 정말 멋드러진 작품으로 재탄생되지 않을까 싶은 작품이다.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물은 소재에 따라 크게 '현실적인 사건과 해결',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사건과 해결', 이렇게 두가지 부류로 나눠진다. <말하는 검>에 실린 네 편의 단편들 역시 전자에 속하는 '가마이타치'와 '섣달의 손님', 후자에 속하는 '길 잃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어느 것도 고즈넉한 시대상, 무서운 사람의 마음, 기구한 사연들이 스며있는 읽을 재미 쏠쏠한 작품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자에 속하는 작품들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다. 후자에 속하는 것들도 충분히 흥미롭기로는 하지만, 역시나 비교적 현실적이면서도 치밀하게 사건을 파고들며 여러가지 무서운 진실들을 파헤치는 작품들이 좀 더 공감되면서 깊이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후자의 것들도 오하쓰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매력적이기에 결코 버릴 수 없는 작품들이다. 뭐, 굳이 말하자면 '검마와 마검의 차이'라고나 할까.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물들을 읽으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이란 크게 다르지 않구나, 매한가지로구나.', 그리고,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물 너무 재밌다, 계속 읽고 싶다.' 하는 것-.

[말하는 검] 올 해 세번째 리뷰. 미미 여사의 에도시대물 초기작 말하는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