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생소하지만 최근 일본에서 누마타 붐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작가 누마타 마호카루의 <유리고코로>. 제목과 함께 꽃을 잎에 문 소녀의 그림이 장식된 표지가 무척 인상적이다.

 

 아버지의 집에서 담담한 어조로 살인을 고백하는 수기를 발견하고 읽어내려가는 주인공. 놀라운 사실들이 담긴 수기를 쓴 사람은 과연 아버지일까, 아니면 돌아가신 어머니일까... 혼란스러운 가운데 기묘하면서도 놀라운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기묘한 분위기로 서술된 작중 수기는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면장면들을 떠오르게 할만큼 가시적이고 몽환적이고 요상하기까지하다. 모든 것이 밝혀지는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과연 이것이 진실일까 아닐까를 의심하게 만들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수기를 쓴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진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나 싶은 순간 그 이후에도 무언가 불안한 흔들림이 있고, 종내에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이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문장들도 좋았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흐름과 미스터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따스하면서도 애처로운, 여운이 감도는 결말이 인상적이다. 솔직히 살인을 고백하는 수기의 내용들은 눈쌀 찌푸려지게 할만큼 자극적이고 짜증나는 부분이고, 흐름과 반전, 결말이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싶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 자체를 토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가 좋아 읽는 맛이 있다. 독특한 이야기 구성도 괜찮았고, 세세한 표현이나 감정묘사들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어쩐지 '미치오 슈스케'스럽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단점으로 꼽을 수 있겠는데, 뭐, 그것도 나름대로 장점아닌 장점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잠들었나 싶었던 '유리고코로(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소설 속에 나온다. 확실히 말해둘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사람 이름은 아니라는것!)'가 마지막까지 발현되어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고, 따스한 결말로 이끌어간다. 무척 모순되고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수기 속의, 무의미한, '유리고코로'만을 위한 '유리고코로'가 아니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유리고코로'가 되었다는 것. 그 결과로 이별을 하고, 영원히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를 떠돌아야만 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 기묘하고 미묘한 것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갈릴 것 같다. 그 기묘하고 미묘한 부분이 누마타 붐을 우리나라로 옮겨 붙일 작고 소중한 불씨가 될 것 같다.

 

 일반 대중들이 조금 멀다고 느끼는 클래식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곡을 선별해 듣고 친숙해 지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곡이나 작곡가에 얽힌 배경이나 에피소드들로 흥미를 가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많은 작곡가, 셀수 없이 많은 곡들 중 무엇을 골라 들을 것인가. 바로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과 같은 클래식 지침서 혹은 클래식 나침반을 통해 은하수 별만큼이나 많고 깊고 넓은 클래식의 세계로 쉬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은 클래식 곡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소개하는 음악서이기 보다는 클래식 곡이나 작곡가, 연주자, 오케스트라 등 클래식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와 에피소드 등을 토대로 클래식을 이야기 하는 에세이에 가깝다. 때문에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친숙하고, 쉽고, 가볍고, 즐겁다. 그것들을 토대로 나름의 결론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도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다.

 

 쇼스타코비치로 시작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타이스의 명상곡, 카라얀, 러시아 연주자들, 뮤지컬 캐츠, 베토벤 교향곡 운명, 브람스와 클라라, 영화 타이타닉, 조수미 등 작곡가, 곡, 오케스트라, 연주자, 지휘자, 뮤지컬, 음악가의 생애와 에피소드, 영화속 클래식 관련이야기 등 클래식과 음악에 관한 소재를 가리지않고 망라해 친근하고 조곤조곤한 어투로 재미있게 이야기 해 주고 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유명한 곡들, 이를테면 베토벤의 '운명',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등과 같은 곡은 그 곡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왜 명곡이고,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가를 깨우쳐주며,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같이 조금 특이한 이름을 가진 오케스트라가 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유래를 알려준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름만은 들어봤을 법한 최고의 지휘자 카라얀은 어떤 사람인가, 대학시절 저자와 같은 수업을 들었던 조수미의 당찬 일화, 슈베르트의 불우한 생애 등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들이 가득하다. 클라라 슈만과 브람스 이야기 같이 클래식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면 누구가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이 역시 저자의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에 대한 최고의 감상은 역시, 저자가 소개해준 작곡가들의 음악을 손수 찾아서 듣고 감상하고 느껴보는 일이 될 것이다. 내친김에, 티켓을 예매해 연주자들이 생생하게 뿌려주는 음표가 가득찬 음악당 한자리에 앉아 그 공간을 느끼고 향유하는 것이야말로 저자를 비롯, 작곡가, 연주자, 아울러 음악을 창조하고 공유하는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와 찬사와 박수가 될 것이다.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 격인 마쓰모토 세이초의 <짐승의 길>. 최근 비슷한 시기에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짐승의 길>이, 모비딕 출판사에서 <D의 복합>이 출간되었는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임에도 서로 디자인이 비슷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알고보니 두 출판사에서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들을 협의하에 시리즈 처럼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남모를 진통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독자입장에서는 제법 반가운 소식이다.

 

 제목부터 뭔가 자극적이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짐승의 길>. 일본의 전후 시대를 배경으로 흑막 뒤의 정계 거물과 그의 첩 여할로 들어가는 여자, 여자를 사적인 감정으로 집요하게 쫓는 형사 이야기다. 짐승들이 다녀 마치 사람이 다닌 길로 오해해 그곳에 잘못된 발걸음을 들여놓는다.... 혹은 사람의 길을 버리고 짐승의 길로 들어선다... 그 어느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이 작품은 일본색 짙은 에로티시즘과 다소 자극적인 표현들이 들어가 있지만 이야기 자체만 놓고보면 굉장히 흡입력있게 읽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딱히 추리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은 분명치 않지만 정계 거물의 정체와 그의 손길, 흑막 뒤에서 벌어지는 술수와 음모, 그것을 파헤치고 쫓아가는 여자와 형사의 추리가 흥미롭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백야행>, <환야>와 같은 스타일인데, 마쓰모토 세이초를 존경한다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무엇을 추구하며 작품을 썼는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무려 50여년전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딱히 낡았다는 느낌이 없었고, 제법 담백하면서도 인물들의 사유와 생각들이 드러난 문장들이 괜찮았다. 다만 단편적인 전개와 평면적인 사건들, 단조롭고 단순한 인물들의 성격 등 조금 답답한 느낌도 든다. 거기에 새로운 인생을 위해 큰 마음먹고 방화로 남편을 살해하는 대담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 다미코가 이후 큰 역할없이 그저 노인의 주변만 겉돌면서 단순하게 자신에게 닥치는 운명만 받아들이고 그저 주어진대로 흘러가는 전개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다미코라는 인물에 대한 매력도 떨어진다. 큰 일 한번 치를 기세였던 히사쓰네 형사의 말로도 마찬가지.

 

 1권 중후반까지는 최근에 읽었던 그 어느 소설보다도 흥미롭게 읽어내려갔던 <짐승의 길>. 아, 이래서 마쓰모토 세이초로구나 절로 감탄했던 전개. 2권부터 힘이 좀 떨어져 흥미가 반감되긴 했지만 사회상과 세태를 드러내는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거장의 솜씨가 여실히 드러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