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도 아라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애도하는 사람'을 통해서다. 2010년 연말 대형서점 한가운데 가득 쌓인 '애도하는 사람' 책탑. 집었다 놨다 집었다 놨다를 대략 열두어번쯤 반복했다가 끝내 놓아두고 돌아섰던 그때. 덴도 아라타라는 이름에, 무언가 애매할 것 같은 주제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었다.
이후 덴도 아라타의 (내게 있어) 첫작품을 읽었다. '가족사냥'. 장대하고 두껍기 이를데 없는 묵직한 양장본을 손에 쥐고 스르륵 읽어 내렸다. 인물들의 입을 빌어 장황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줄은 알겠는데, 장황해도 너무 장황했다고 느꼈다. 공을 들여 쓴 흔적이 역력히 배어나는 그 장대한 양장본 무게만큼의 큰 공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먹먹하기 이를데 없는 마음으로, 너무나 애처롭고 가슴아픈 심정으로 책장을 덮은 이 순간, '영원의 아이'는 다르다고 느끼고 있다. <영원의 아이> 역시 도합 천오백여페이지가 넘는 거대한 작품이고, 시작부터,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결말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이것 역시 너무 장황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의문을 품었던 적이 많았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결말 부분에 이르면, 그 의문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어처구니 없었던 것인가를 새삼 확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길고 긴 서술과 대화의 터널을 지나온 깊이만큼, 눈으로 밟아온 활자의 수만큼, 거대하고 두꺼운 양장본의 무게만큼 가슴을 죄고, 마음을 무겁게 누르내리는 작품. '영원의아이'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영원의 아이'는 달랐다. '영원의 아이'는 정말... 대작이다.
인물, 지명 등 세세한 설정 하나하나에도 공을 들이기에 작품 쓰는 기간이 길고, 그렇기에 과작일 수 밖에 없다는 작가. 그 아이들의 심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불면과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정신없이 작업했다는 작가. 5년 8개월이라는 기나긴 산고 끝에 탄생한 기나긴 작품.
'그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무슨 잘못이 있을까...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그렇게 했던 그 어른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고, 괴로움이 있고, 고충이 있고... 그렇지만 그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그 아이들을 감싸안아주고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보살펴줬어야 하는 거였는데...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 설정 하나하나 빈틈 없이 잘 짜여져 있고, '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노인 복지와 의료, 생존과 인간 존엄에 관한 작가의 철학 등 여러가지 메시지들이 힘있게 들어가 있다.
아무리 좋은 평을 받고 극찬 받은 작품일지라도 직접 읽고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혹시나 이 작품을 읽어보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중도포기하지말고 꼭 끝까지 읽어보시길 바란다. 반드시. 시작부터 수많은 활자의 터널을 지나면서 고개가 갸웃거려질때도 있었지만 그 터널의 끝에는 충분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먹먹한 감동, 가슴아픈 결말, 내 삶과 아이의 삶에 대한 생각과 확신, 그리고, 덴도 아라타에 대한 확신.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덴도 아라타라는 이름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있다. 2년전 추운 겨울날, 수많은 고민과 혼란 끝에 그렇게 서점 매대에 내려놓고 왔던 덴도 아라타를 이제는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손끝에 힘을 줘 움켜쥘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하고 권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원의 아이, 읽어보셨나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