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Cast Away’ 를 혹 보셨는지요?
유명한 택배회사 직원인 척이 각종 배달물을 싣고 비행중, 조난을 당해 무인도를 표류하게 됩니다.
곧 구조되리라 기대하면서 힘이 있는 한 온갖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하지만 노력은 번번이 무산되고 마침내는 무인도의 주인으로 나름 적응하며 살아 가죠. 한참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는 무인도를 탈출하여 큰 여객선에 구조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이 변해있다는 내용의 영화였어요.
아벨의 섬을 읽으면서 저는 Cast Away 를 떠올렸습니다. 부유하고 별 걱정거리 없는 상류층의 귀한 자제같은 생쥐 아벨이 사랑하는 부인 아만다와 소풍을 나갔다가 갑작스런 비바람때문에 가까운 동굴로 피신했는데, 아만다의 스카프가 바람에 날아가는 걸 보고는 그걸 찾아오려다가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그만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내려 가고 맙니다. 강 하류로 흘러가다 폭포아래로 떨어지고,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결국 뭍에 다다랐지만 안타깝게도 무인도였어요.
아벨은 탈출을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하지만 곧 자기 힘으론 역부족이란 걸 때달으며 서서히 섬으로 눈을 돌립니다.
아름다운 분홍 자작나무가 있고 숲속은 해가 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나무들이 뺵빽하고, 각종 열매들과 꽃도 있는 아름다운 섬.
아벨은 섬의 건너편 기슭으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 합니다. 처음 몇 차례는 배를 만들다가 또 강에 다리를 놓아보기도 하고, 나무를 휘게 한 후 그 반동으로 날아갈 요량으로 실험도 해봅니다만 어림없습니다.
사실, 아벨은 섬을 탈출하기엔 너무 연약하고 경험도 부족해 보입니다. 언제나 비단 레이스의 셔츠와 깃이 달린 벨벳 재킷을 입고 공단 슬리퍼를 신고 지내온 아벨은 특별히 생계를 위해 애써 본적도 없이 어머님의 유산으로 잘 먹고 잘 살아왔으며 그런 생활에 단 한 번도 회의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아만다와 아름다운 곳으로 나들이나 다니고 우아하게 집안을 거닐며 책을 읽는 것이 아벨이 하는 일의 전부였죠.
하지만 정말 위기는 사람도, 동물도 강하게 만드나 봅니다. 여리디 여린 아벨은 곧 현실을 직시하고 무인도를 탈출하겠지, 가족들이 구조대를 보내오겠지 라는 희망을 간직한 채, 섬에서 겨울을 날 채비를 합니다. 속이 빈 통나무 기둥을 발견하여 그 안에 겨울동안 먹을 양식으로 열매나 씨앗을 저장하고, 식물의 잎과 줄기에서 실과 솜을 얻어 망토와 신발을 만듭니다.
숲속에서 만난 부엉이와의 결투는 정말 아벨을 다시 보게 합니다. 처음 부엉이를 발견하고는 바위틈에 숨어 부엉이가 멀리 날아가기를 기다렸다가 부리나케 집으로 숨어드는, 그리고 몇 날을 두려워 밖에도 나가지도 못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아벨이었는데, 결코 자기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져주지 않는 부엉이의 존재에 대해 운명처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다음 순간부터는 용감하게 맞섭니다. 주머니 칼을 긴 나무 막대기 끝에 매달아 부엉이를 위협하기에 이르죠. 그리고 한 차례 위험한 결투 끝에 부엉이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1년이 넘는 긴 시간을 무인도에서 홀로 지낸다면, 환경적인 열악함도 힘겹겠지만 그보다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잘 견뎌낼수 있을지가 저에겐 더 큰 관심사였습니다. 외로움과 두려움, 날 찾으러 오지 않는 가족들에 대한 분노, 상황을 이렇게 만든 원인과 나 자신에 대한 후회... 아벨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에게는 특별한 무엇이 있었습니다. 어떤것과도 견줄 수 없는 가족애, 특히 아내 아만다에 대한 사랑과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이 바로 그것이죠. 외로운 생활 속에서도 아내를 생각하며 용기를 얻고, 진흙으로 가족들의 조각상을 만들어 통나무 집앞에 세워 두고는 시시때때로 대화를 나누며, 섬을 탈출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때도 아내의 스카프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돌아가 그들과 함께 하리라는 의지를 굳건히 할 수 있었죠. 아름다운 추억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렇게 위기를 극복하고 인생을 지속시키는 큰 원동력이 되나 봅니다.
아벨은 사실, 살아오면서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어떤 목표를 가져야할지 잘 몰랐습니다. 가끔 고민도 했지만 해답을 얻지 못해도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벨에게는 모든게 풍족했으니까요. 그런데 무인도에 사는 동안 진흙으로 그릇도 빚고 가족들의 조각상도 만들고, 강기슭에서 발견한 책장에 숯으로 그림을 그려 식물의 빛깔로 채색도 하고..... 어느덧 뭔가를 만들고 그리는 일에 자연스럽게 빠져듭니다. 아벨에게 숨겨진 재능, 아마, 편안하고 안정된 이전의 생활속에서는 결코 찾아 낼 수 없을 그것. 삶에서 고통과 위기는 나를 돌아보고,내가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또 힘을 싣게 됩니다.
아벨이 섬에 온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 한 날이 계속되면서 강물의 수위가 얕아지자 아벨은 기회를 노치지 않고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넙니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자기가 살던 도시의 불빛을 확인하게 되죠. 기쁨도 잠시, 고양이와 맞닥뜨립니다. 그러나 왠일인지 고양이 앞에서 그리 당황하거나 불안에 떨지 않습니다. 물론 고양이를 피해 뛰고 나뭇가지에 기어오르지만 위기를 맞아 허둥대지 않고 노련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사랑하는 아만다가 사는, 아니 예전의 자신이 살던 집에 도착하죠. 아늑하고 따뜻한... 모든것이 예전 그대로 였습니다. 아벨은 샤워를 하고 레이스가 있는 블라우스와 깃이 달린 벨벳 재킷을 입고는 외출에서 돌아오는 아만다와 재회합니다.
자연과 하나가 되었던 지난 1년의 생활도 소중하지만 그래도 아벨에게서 문명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옛날처럼 안이하게 생활하지는 않겠지요. 자기의 재능을 발견했으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가능성도 보았으니까요.
영화 Cast Away 가 나오기도 훨씬 전에 출간된 이 책은 아벨의 조난과 표류를 영화에서의 그것과 비슷하게 그러나 더 실감나고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못이 박힌 작은 뗏목하나에 의지하고 있는 아벨의 불안함과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가는 심리상태를 생생하고도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읽는 동안 마치 내가 아벨이 된 듯한 착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는 결말이 궁금해 읽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도 했어요.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 에서 이미 만나 본 캐릭터인지라 반갑기도 했지만,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망이라는 메세지가 아직까지도 마음속에서 잔잔하게 물결치는 것 같습니다.
단조롭고 변화없는 생활에 살짝 싫증이 나셨다면, 그리고 새학기를 준비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특별한 메세지를 전하고 싶다면 아벨의 섬을 선물해보면 어떨까요? 탁월한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