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중  허전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때가 하루 이틀은 아니겠지만

유난히 가을이면 어디 먼데를 떠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무엇이 그토록 마음을 허하게 하는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이유는

뭔지..... 나자신도 모르는 내 마음속 비밀은 도대체 뭔지....

음악을 듣거나 미술치료와 같은 작업을 하면서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저의 경우는 수많은 이야기들, 특히 요즘은 아이와 함께

읽는 동화책 속에서 숨겨진 저 자신을 만나곤 합니다.

주인공의 안타까운 심정, 어려운 환경, 고난을 헤쳐나가는 씩씩한 모습,

놓쳐버린 행운 등등에 몰입하다보면 때론 지난 날의 '어린 나 자신'이 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순간의 억울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여전히 분노가 끓어

오르기도 하고, 가끔은 다른 사람의 마음이 헤아려져 고마움과 미안함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기도 하죠.

동화책에서, 또 할머니 혹은 언니 오빠로 부턴 전해듣는 이야기들이란 

듣는 즐거움을 넘어 나 자신과 세상을 비추어 보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깊고 넓고

따뜻할지요.

여기 제 마음의 깊이를 더한 이야기책 한 권이 있습니다.

제목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고 또 마음을 굳건히 하기위해 때론 눈물도 필요함을

알려주는 여섯편의 아름다운 이야기 <알사탕 동화> .

장난치기 좋아하는 9살 꼬마이지만 점점 가라 앉고 있는 사탕섬을 살리기 위해

친구도 없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로 혼자 떠나는 용기를 보여준 희망이,

함께 살며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사랑이 얼마나 삶을 가치있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작은집 이야기, 어린 시절의 아픔을 어른이 된 지금 나의 아이를 보며

비로소 치유해가는 인어 이야기, 가만히 앉아서는 아무런 소원도 이룰수 없고

꿈을 꾸는 자들만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나무 의자 이야기 등등,

이 책은 내 어머니 혹은 내 아이의 이야기, 때론 나무나 바람과 같은 은유된 대상을

통해서 누군가의 오래된 상처를 드러내기도 하고, 잠자고 있던 욕망를 자극하며

인생의 진리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마치 내 안의 괜한 심술과 질투와 두려움과

그리움에 대한 대답인듯이.

깔깔거리며 '사탕나무 이야기' 를 읽던 우리 아이는 '감자반지 이야기' 에서는

크게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 호기심에 아이 다음으로 책을 잡은 저는

마음속에서 재미와 슬픔과 공감이 회오리치다 어느 새 고요한 저녁바다가 된 것처럼,

가을이 다 지나가버린 것처럼 잔잔하고 편안해져 버렸습니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무엇일까요? 웃다가 울다가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도

하는 그 힘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마음을 어루만지는 <알사탕 동화> 에 그 답이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사극열풍으로, 그리고 수능이나 논술 등의 학습의 이유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요즘, 그 유행을 따르려는 건 아니지만

저역시 이제 곧 사회라는 과목을 공부하게 될 아이가 있는 관계로

요즘 도서관에서 역사책들을 빌려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시조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의 이야기까지, 두껍거나 얇거나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빌렸다고나 할까요?

좀 무질서한 저의 권유가 아이를 어지럽게 한 것도 같으나 뭐 아직은

역사공부의 규칙을 정한다든지 맥을 이어간다든지 할 수준이 아니라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며 아이와 같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읽은 책 중에서 물론 지루하고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몇 권

기억에 남는 책이 있어요. 긴 역사를 요약하거나 방대하게 설명하는 책들

보다는 한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가상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런 내용의

책들이었는데, 가령 조선시대 장터이야기나 궁궐에 대한 이야기 혹은

임금님들의 생활, 몇몇 위인들의 일화 등등이 그것이에요. 이야기와 함께

역사적 배경이나 중요한 사건들, 생활모습들을 엿볼수 있어서 자연스레

역사공부가 되는것 같더군요.

지금 소개 할 이 책 <고려의 시장에서 만난 아라비아 상인> 역시 흥미로운

이야기속에 고려사회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려' 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숭불정책' 이나 '호족' , '벽란도' 와 같은

단어들인데 이 책은 '벽란도' 를 중심으로 행해졌던 상행위와 시장의 모습,

외국인들과의 무역 등을 담고 있어요.

색색의 고운 비단옷을 즐겨입었고, 장에 오면 다점에서 차도 한 잔 마시면서

아라비아 상인들이 가져온 향신료와 화려한 장신구를 즐겼다는 고려인들은

삶을 향유할줄 아는 문화인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듣기에 생소한 '가구소' 와 '경시서' 는 온정에 이끌리는 고려인들도 일정한

법과 규율에 따라 사회질서를 유지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인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영어국명인 '코리아' 가 '고려' 에서 비롯된 것임을 읽고는

우리 아이가 참 신기해 한 것처럼 책 구석구석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가득하네요.

마법의 두루마리를 통해 역사여행을 하고 있는 두 주인공이 다음엔 또 어떤

역사의 순간과 만나게 될지 살며시 기대가 됩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순환한다고 했던가요, 우리의 아이들은 선조들의 삶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투영하게 될지 자못 궁금해 집니다.

<자석 총각 끌리스> ... 제목처럼 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끌리는 책 !

'자신의 장점을 사랑할 줄 아는 지혜를 축복하는 이야기' 라는 두줄짜리

프롤로그를 무심히 읽어 넘긴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위트가득하고

유쾌한 이야기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학교를 다녀 온 우리 딸이 " 엄마, 나는 왜 OOO해? ...  왜 나만 .OOOOOOOO야? "

라는 말을 할 때, 저의 반응은 왜 그리 현명하지 못하고, 아이의 불안을

잠재워주기는 커녕 중심없이 아이와 함께 같이 흔들렸던 것일까요?

책 속 끌리스의 부모님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혼자만 독특한 갈비뼈를 가진 끌리스에게 " 너는, 참 특별하구나, 좋은 사람이

되려는가보다..." 하며 끌리스를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십니다.

그리고 끌리스가 성장함에따라 발생하게 되는 더 큰 어려움들도 당연히 받아들이며,

때론 끌리스가 제안하는 해결책에 감격하며 그렇게 그렇게 기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인지 남들과 조금 다른 신체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끌리스는 언제나

긍정적이며 당당한 어른이 되죠.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삶에 도전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끌리스인 끌라라는 비슷한 신체적 악조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저 운명에 순응하듯 '다름' 이라는 장벽아래에서만 생활하네요.

그녀의 부모는 의사선생님의 이런 저런 격려의 말에도 불구하고

" 우리 아이는 이럴까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 하며 슬픔에 잠겨있죠.

또 끌라라가 처하게 될 위험을 두려워하여 집안에서만 생활하도록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두 아이가 자랐을 때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자신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 능력을 발휘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끌리스와

친구도 없이 집안에서만 쓸쓸히 생활하는 끌라라 !

제가 무심히 지나쳤던 프롤로그가 하려는 말처럼 자신의 장점을 찾고 인정하고

발전시켜나가는 자세는 이렇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군요. 하지만 그런 태도를

가질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부모님들이 해주어야 함을 저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런 모습의 부모가 아니라서 더 가슴에 와 닿는지도

모르지만요.

또 하나, 자신의 장점을 키워가는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단점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끌리스는 자석 갈비뼈로 인한 불편함을 사람들을 구하고

도움을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킵니다. 자신의 단점때문에 존경받는

인물이 된 것이죠.

우리는 주변에서 혹은 유명 인사들의 삶을 통해 열등감을 극복하고 성공한 삶을

사는 사례를 접하게 됩니다. 그 열등감이란 것이 곧 나의 삶을 의미있게 해주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는 뜻일까요?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재미있고도 간결한 문체로 풀어낸 이 책을 우리 아이도

저도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러나 여느때처럼 아이와 제가 이러쿵 저러쿵, 의미와

교훈에 대해 이야기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보다 제가 더 많이 느끼고 반성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마음에 스며든 끌리스와 끌라라에 대한

이야기가 힘을 발휘할 날이 꼭 올테니까요, 언제가 되었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