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간향미디어랩 대표이자 광운대 건축가 겸임교수인 전진삼 선생님의 원고의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훨씬 더 풍부하고 자세한 내용이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에 있습니다.


1. 건축가는 무슨 일을 하나요?

건축가는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설계합니다. 소, 돼지 등 사람과 가까이 사는 동물들의 집도 설계합니다. 단독주택, 아파트, 오피스, 공장, 미술관, 박물관, 영화관, 백화점, 교회, 사찰, 철도역사, 공항청사, 동물원, 식물원, 놀이공원 등 흔히 건물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을 짓기 위한 구상과 설계도면 작성, 그리고 실제로 잘 지어지고 있는가를 관리, 감독하는 일까지도 합니다. 건축가는 국토종합개발계획, 도시기본계획, 도시관리계획, 단지계획, 지구단위계획 등을 통해 도시도 설계하고, 나아가 우주 건설에도 참여합니다. 


2. 건축가가 되려면 대학에서 특정 분야를 전공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공과대학 또는 건축대학에 소속된 건축학과에서 5년제 건축학을 전공해야 건축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대학에 가면 크게 건축공학과 건축학으로 전공을 나누어 공부하는데 전자는 4년제 중심이고 후자는 5년제 중심입니다. 대체로 공학자 등 엔지니어를 꿈꾸는 사람들은 건축공학과를 가고, 건축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건축학과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4년제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도 건축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3. 건축회사에 입사하는 과정은 어떤지요?

건축회사를 건축사사무소와 같은 설계회사와 건궃 공사를 도맡아 하는 건설회사를 포괄하는 명칭입니다. 건축사사무소에 한정해 답하면 이렇습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재학 중에 개별 건축사사무소에서 인턴 과정을 거친 후 졸업 시점에 이르러 시험을 보고 입사합니다. 또 재학 중에 국내외의 여러 건축 설계 공모전에 참여하여 입상한 경력을 바탕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교수 추천 등으로 입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는 공채로 신입 사원을 선발하지만, 소규모 아틀리에에서는 서류 심사나 면접만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4. 건축사사무소에 입사한 신입 사원의 초봉과 경력 직원의 보수,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요? 

임직원의 수가 1000명이 넘는 초대형 기업으로부터 500명 이상의 대형 기업, 100명 이상의 중대형 기업, 20∼50명의 중규모 사무소, 10인 안팎의 아틀리에형 사무소, 1∼5인의 소규모 사무소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각에 따라 대졸 신입 사원의 초봉은 물론이고 경력 사원들의 연봉 편차가 무척 큽니다. 

일단 신입 사원의 초봉을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초대형 기업의 경우엔 월 300만 원대이고 아틀리에형 사무소의 경우엔 150만 원대도 있습니다. 이처럼 출발부터 차이가 큽니다. 경력 5년차나 경력 10년차의 연봉 또한 편차가 심합니다. 규모와 무관하게 건축사사무소 소장급의 연봉을 중심으로 개략하여 말하자면 5000만 원∼1억 원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건축가의 노동 강도는 어떤가요?

건축사사무소는 건축 설계도면을 그리는 일 외에 관청 관련 업무를 비롯해 구조, 기계, 전기, 조경 분야 등 협력 업체 관리 등 많은 일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건축사사무소 직원들의 노동 강도는 무척 셉니다. 일요일만 빼고 꼬박 주 6일 근무를 하는 사무소가 많습니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주 5일제로 전환된 요즈음에는 격주 5일제 근무를 하는 사무소도 많아졌습니다만, 평일에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불야성의 사무소는 필시 건축사사무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축사사무소에서는 근무 연차가 높을수록 스스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경력 10년차 이상이 되면 건축가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유연한 근무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분야의 장점입니다.


6. 건축가의 직업적 전망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은 아닙니다. 건축사사무소의 임직원으로서 각각이 처한 처지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건축사 면허증을 따면 으레 자신의 이름으로 건축사사무소를 열고 건축가로 행세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나이 70세가 넘어도 전문가로서 자기 일을 하며 노후대책까지 세울 수 있는 완벽한 직업이 건축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사람의 건축가로 명성을 얻기 위해선 대학을 졸업하고 최소 20년이라는 고단한 시기를 거쳐야 합니다. 그만큼의 시간을 견뎌 낼 수 있는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에는 건축사 면허증은 있으나 한 건의 건축 설계도 수주하지 못하는 기천 명의 건축가들이 있습니다. 다만 특별한 자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늘 외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닐 겁니다. 도전하는 정신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면 언제나 건축가의 직업적 전망은 밝습니다. 


7. 건축가로 일할 때 여성이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나요?

당장은 불리합니다. 여성으로서 건축가의 지위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남성에 비하여 대단히 낮습니다. 여성 건축가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일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여성성을 강조하지 않고 건축가로서 자기 길을 개척하는 강인한 정신력과 실천력입니다. 오늘날에는 대학 안에서 건축교육을 받는 여학생들의 면학률이 남학생들을 능가할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 건축사사무소의 신입 사원 채용 시에도 여성 합격률이 남성 합격률을 추월하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수적 우위 점유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여성 건축가의 직업적 전망은 특히 밝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육아 문제 등으로 전문 직업인의 대오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많은데 건축가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8. 건물을 짓는 일 이외에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직접 건물을 짓는 일은 건축가의 일이기보다 건설사 시공자들의 몫입니다. 이따금 건축가들이 직접 집을 짓는 경우도 있지만 통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선 질문에서 건축가는 집을 짓기 위해 구상을 하고 설계도면을 그린다고 했는데 그것이 건축가가 하는 일의 전부는 아닙니다. 건축가들 가운데 몇몇은 대학에서 교원으로서 후학들을 가르칩니다. 건축 전시 및 국내외 건축 관련 행사 등을 기획하는 이들도 있고 건축 관련 책이나 전문 잡지 발간에 기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반 언론사와 대중 잡지의 기자 또는 편집장으로도 활약합니다. 세계의 도시와 건축을 답사하는 전문 여행사도 운영합니다. 복합문화 커뮤니티 센터를 설립하여 일반 대중들에게 문화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일부는 건축계를 떠나 영화 제작에 뛰어들기도 하고, 또 일부는 광고회사에 취업하여 건축을 공부하면서 익힌 기획 능력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가구 디자인을 비롯해 가방, 구두 등 명품 디자인에까지 손을 뻗고 있습니다. 

건축가가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건축가를 키우는 교육 과정의 스펙트럼이 넓은 까닭입니다.


9. 주변에서 건축 전공자들이 해외 유학을 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유학을 가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일단은 국내외 인적 네트워크 운용 면에서 도움이 됩니다. 1990년대 이후 해외로 나간 학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현재 해외 유학파들에 대한 국내 건축사사무소의 선호도도 높은 편입니다. 유학 후 귀국하여 배포 있게 건축사사무소를 연 건축가도 있지만 그리 많은 편은 아닙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까닭이지요. 반면에 귀국하자마자 대형 설계 기업에 들어가 뛰어난 디자인 능력을 보여 주고 있는 건축가들도 많습니다. 그들 중에는 일정 기간 기업에 속해 있다가 대학교 전임 교원으로 발 빠르게 수평 이동한 사람도 많습니다. 건축사사무소의 분위기 또는 비전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비교적 안정적인 급여와 사회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대학 교수직을 선택한 경우입니다.


10. 건축대학에 입학해서 건축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건축대학 또는 5년제로 건축학을 가르치는 공과대학에 입학했다면 졸업은 해야겠지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학업을 계속하는 학생들도 무척 많습니다. 현행 제도상 졸업 후에는 건축사사무소에서 2년 이상의 경력을 쌓으면 건축사 면허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이때부터는 건축사등록원이 주관하는(현재는 대한건축사협회가 주관) 건축사 시험에 응시하여 일정 이상의 점수를 획득해야 합니다. 통상적으로 대학 졸업 후 건축사사무소 경력 10년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축사 면허를 취득하지만, 여기서도 개인차는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