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면 누구나 ‘그날’을 기억합니다. 초경, 첫 생리하던 날 말이지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선뜻 ‘그날’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초경’에 대해 놀랍도록 솔직하고 유쾌하게 이야기한 에세이 <마이 리틀 레드북>이 출간되었습니다.

10대 소녀에서 100세 할머니까지, 미국 뉴욕에서 아프리카 케냐의 작은 마을까지, 100여 명의 여성이 자신의 초경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사고’처럼 들이닥친 초경을 둘러싼 해프닝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보여 주어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습니다.

『가십걸』의 세실리 본 지게사,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멕 캐봇, 영화 <사랑이 지나간 자리>의 원작자 재클린 미차드, 『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의 조이스 메이너드 등 유명 작가들의 솔직하고 유쾌
한 고백도 눈길을 끕니다.

지난 몇달 간 <마이 리틀 레드북> 동고동락을 같이 했던 부키 편집부 편집자  또 다른 ’월경 소녀’가 편집자 노트를 보내왔습니다. 연령대상 ’소녀’라는 말은 좀 과한 욕심이고, ’월경 처녀’ 혹은 ’월경 미스’ 혹은 ’월경 아가씨’ 혹은 ’월경 비혼’이 여러가지로 맞다 싶습니다만, 닉네임을 제외한 편집자 노트는 아주 멋지네요. 소개해드립니다.

지난 주 월요일(5월 16일) 필름을 넘기고 금요일(5월 20일)에 <마이 리틀 레드북>을 만나기까지 일주일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책이 만들어지는 동안 저도 ‘그날’을 보냈고요. ^^

책에는 ‘우리는 누구나 첫 경험을 기억한다’는 말이 나옵니다만, 사실 저는 초경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는 것과 할머니가 도와주셨다는 것 정도만 기억날 뿐입니다. 기분도 그냥 무덤덤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셀 수 없이 그날을 보낸 지금도 여전히 쉽게 익숙해지지 않네요. 늘 새로워요, 월경이란 건. ㅎㅎ 

책을 만드는 동안 제 머릿속에는 생뚱맞게도 영화 <말아톤>이 떠올랐습니다. 영화 속에서 의사가 초원이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이 있거든요. 
“(엄마가 아프면 초원이는 기분이 어떨까?) 기쁠까? 슬플까? 화가 날까? 겁이 날까?”
아마도 초경을 맞는 느낌이 정확히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이 리틀 레드북>을 보면 초경이 시작돼 정말 기쁘고 좋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많은 여성이 매우 두렵고 겁이 났었노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좀 놀라웠습니다. 미국은 우리보다 더 개방적이고, 성차별도 적어서 초경을 부끄러워하거나 쑥스러워하는 사람은 드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우리와 다를 바가 없더군요.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단 말도 못 하고, 옷에 묻은 얼룩 때문에 놀림받고, 생리대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게다가 성인이 되어서도 생리만 시작되면 만사 제치고 화장실로 뛰어들고, 옷과 침대는 물론 비행기며 호텔 소파에 생리혈을 묻히고 다니다니 이건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돌이켜 보니 저도 참 많이 묻히고 다녔습니다. ㅎㅎ

특히 조이스 메이너드의 ‘옷장 밖으로’를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메이너드는 열여덟 살 때 예일대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뻘인 작가 J. D. 샐린저와 1년간 동거해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아시지요? 그 저자 말입니다. 그때 얘기가 『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At home in the world』라는 회고록에 담겼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엄마에게 브라를 사 달라는 말도, 초경을 시작했다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끄러웠던 작고 수줍은 열네 살 여자아이. 그 사실을 숨기는 것 외에 과연 그 아이가 뭘 할 수 있었을까요? 초경을 맞은 아이 앞에서 부모가 한숨을 쉬거나, 모른 척한다면 딸에게 월경은 영원히 부끄러운 것이 되고 맙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이런 슬픈 대물림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고요. 

아, 심각한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정말 유쾌하고 재밌는 책입니다. 게다가 꼭지가 짧아서 언제 어디서든 읽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특히 ‘실이 매달린 핫도그’는 강추합니다. 욕실에서 벌어지는 엄마의 미스터리한 행동. 우연히 그걸 본 네 살짜리 딸은 의심과 혼란에 휩싸이고…. 아마 웃다가 뒤로 넘어가실 겁니다. ㅋㅋ 

‘변기 속의 패드’, ‘또 해?’ 같은 꼭지는 짧고 강력한 한 방을 선사합니다. 제목만 들어도 대충 짐작이 되시지요? ^^
‘조스’나 ‘꿈’처럼 신비로운 이야기도 있고요. 감성적인 분들이라면 ‘혈월’과 여러 편의 시도 마음에 드실 겁니다.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명불허전이지요. 
『가십걸』 작가 세실리 본 지게사, 『프린세스 다이어리』 작가 멕 캐봇 등 유명 작가들의 솔직한 고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밖에도 유명 작가들의 글이 꽤 있습니다. 
참, 마지막 꼭지인 ‘고마워, 제인!’은 유일하게 남성이 쓴 글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으실지 궁금하네요. ^^ 

음, <마이 리틀 레드북>이 여자만 보는 책이라고 ‘오해’할 분도 있을 듯합니다.
혹시 엄마나 누나, 여동생, 딸, 여자 친구나 아내 없는 남자분 계신가요? 평소 그날만 되면 사랑하는 여자가 왜 그렇게 예민해지는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마이 리틀 레드북>이 그 해답을 알려 드립니다. 이 책을 보고 아내에게, 딸에게, 여친에게 선물한다면 분명 더 사랑받으실 겁니다. ㅎㅎ

작지만 힘 있는 책, 웃음과 위안을 주는 책, 
<마이 리틀 레드북>을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소문 많이 내 주세요! 
월경을 부담 없이 이야기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저희는 열심히 『레드북』과 함께 달리겠습니다! ^^v

2011. 5. 23. 편집부 ‘월경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