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영국 최고의 문학상이라고 불리는 맨부커상 수상작인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었습니다.
유럽 갔다 와서 좀 가볍게 읽자라는 마음으로 잡은 책인데
250페이지 정도 밖에 안 되는 분량도 있지만 가독성이 너무 좋아서
피곤함을 뚫고 책을 놓지 못해서 2일만에 휘리릭 읽었습니다.
굉장히 좋은 표현들이 눈에 많이 들어와서 그 부분 정리하고 책에 대한 느낌을 전달해보겠습니다.
주관적 의문 대 객관적 해석의 대치,
우리 앞에 제시된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가 해석한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 27 -
인생에 문학 같은 결말은 없다는 것,
우리는 그것 또한 두려워했다.
- 31 -
"우리의 관계가 어딜 향하고 잇는 건지 생각을 하긴 해?
(......)
"꼭 어딜 향해야 되나?"
"관계라는 게 그런 것 아니야?"
"모르겠어, 그럴 만큼 깊이 들어가본 적이 없어서."
"토니, 날 봐"
베로니카 말했다.
"나는 고인 물이 아니야.."
- 63 -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 88 -
검사관의 검시배심엔 에이드리언 핀(22세)이
'심리적 평행상태를 상실한 것이 계기가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씌어 있었다.
- 89 -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 101 -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산이다.
- 106 -
바로 우리 코 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
우리는 시간 소겡 사록,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돼 있다.
안 그런가? 그러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속도와 진전에 깃든 수수께끼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역사를 어찌 파악한단 말인가.
심지어 우리 자신의 소소하고 사적이고 기록되지 않은 것이 태반인 그 단편들을.
- 106 ~ 107 -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대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 141 -
젊음은 미래를 그리고 늙음은 과거를 덧칠한다
리뷰 제목을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글귀를 변형해서 지어보았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상을 받아도 번역문제와 문화권적인 이해차이
그리고 개인의 선호 등으로 책의 평가는 달라질 수 있는데
<예감은 들리지 않는다>는 저에게 굉장히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지금 '책 추천해주세요?'라고 말하면
이 책 이름이 한동안은 불려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책을 보고 프루스트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생각났습니다.
제목을 보셔서 아시겠고 글귀들을 보시면 그런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역사, 철학, 윤리, 심리 문학에서 다루기에는 까다로운 주제를
소설 속에 밀도 깊게 스며들게 한 부분입니다.
특히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정의를 수정하면서 이야기의 방향성을 변경하는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이 책도 영화로 되면 정말 괜찮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 흐름도 극적인 부분이 많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1부와 2부로 구성했는데
1부에서는 <이방인>같은 시간의 흐름에서
자신을 타자적으로 밀어내면서 이야기를 풀어냈고
2부에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처럼
타자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드리면서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이런 부분도 이 책의 매력입니다.
책은 덮고 머리 속에 채워진 하나의 질문
'지금 나의 과거는 몇 퍼센트나 절대적 진실일가?"
아직은 나이가 젊음에 가깝지만 문득문득 저도 과거를 덧칠하는 나이가 되고 있는데
언제인가 덧칠이 너무 많이 되어서
원본 그림의 형태마저 없어지는 것이 나의 과거들이 될 것 같은 두려움..
그 속에서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진실들은
어떻게 하면 지켜갈 수 있고 누군가 비슷한 그림 또는 내가 그린 그림의 사진을 가져오면
난 그걸 긍정할 자신이 있을까라는 생각...
이 책을 읽고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아마... 평생 못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