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심리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 지금 주인의 마음은 화가 나 있는 건지, 들떠 있는 건지, 또는 철학자의 유서에서 한 가닥의 위안을 구하고 있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세상을 비웃고 있는 건지, 세상에 섞이고 싶은 건지, 하찮은 일에 열통을 터뜨리고 있는 건지, 모든 세상사에 초연해 있는 건지 도무지 짐작이 안 간다.

고양이는 거기에 비하면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가 날 때는 열심히 화내고, 울 때는 아주 처절하게 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中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자신은 어디까지나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있다. 이것은 자기는 죄가 없다고 자신하는 거니까 천진해서 좋긴 하지만, 아무리 천진하더라도 남들이 곤란해하는 사실을 없애버릴 수는 없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中

 

나츠메 소세키의 작품은 전부터 계속 접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였다. 내용이 이렇게나 여러울 줄은 몰랐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나츠메 소세키의 첫 장편 소설로, 고양이의 시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 특징이다.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본다니, 좀 이상하게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날카롭게 인간이 가진 가식, 허풍, 허세같이 불필요한 것을 꼬집어내는 게 매력적이었다.

한가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는데 리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웃음). 왜 그런가 하면,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데도, 일본어로 하는 말장난이나, 인물들이 나와서 하는 농담같은 것이 세계사적인 부분도 있어서 이해하기 힘든 탓이었다. 뭔가 재미있어서 인물들이 웃고 떠드는 것 같기는 한데, 이해를 하지 못하니, 어느 포인트에서 웃는지 알수가 없다는 걸까. 마치, 전혀 모르는 외국어의 자막없는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인 것이다. 그래도 앞부분은 이해하기 그런 농담들의 수가 적어서 어느정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아무튼 이렇게 어려운 책인데도 나는 이 책을 단1장만 읽어도 좋으니 꼭 한번 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사물도)를 우습게 보고 있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고양이는 건방지게도 인간을 우습게 보고 있다. 그런 점이 굉장한 발상의 전환이 된다.

처음에는 '이 고양이 뭐야, 건방지잖아.'하고 말하게 되던 것도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고양이한테 동화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인간을 우습게 보게 된다. 나도 인간인데.

쉽게 얘기하자면 고양이가 말하는 인간의 겉치레같은 것이 우습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한 겉치레는 버릴 수가 없으니, 그것 또한 슬플 수 밖에.

고양이도 고양이로 사는 것이 힘들겠지만, 인간도 인간으로 사는게 참 힘든일이다.

“빨간 것도 있고 노란 것도 있어. 단풍나무나 은행나무처럼 선명하진 않고, 약간 은은한 빛을 띠고 있지.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아. 다들 그냥 지나치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꽃구경하던 때를 생각해봐. 전국에 벚나무가 얼마나 많아. 그걸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어. 그러면서 꽃이 지면 다들 무시하지. 색이 칙칙하다느니 어쩌니 하는 건 그래도 좀 나은 편이야. 대부분은 단풍이 드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어. 좀 심한 거 아닌가? 당신도 그런 식으로 벚나무(사쿠라)를 대하는 사람 중 하나야. 이름도 똑같으면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中

 

……첫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을 때, 순식간에 이루어져버린 반전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추리소설 책인데다가 반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난 후 본 것인데도. 나는 나름대로 여러 장르의 책들을 접하면서, 작가가 던진 복선들을 찾아내서 결말을 맞추는 것을 즐겼다. 소설 대부분이 비슷한 흐름으로 반전을 집어넣는 경우가 많아서, 어쩔 때는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결말을 생각하고 결말을 읽고 나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었다.(오래 전에 모 일본 드라마를 4화 하나만 보고 엇비슷하게 결말을 맞춘 적도 있다.)

때문에 추리소설에 손을 댄지는 조금 오래되었다. 반전이 가득한 소설 속에서 결말을 맞춰버리면 무슨 재미로 읽을까.

그런데, ‘우타노 쇼고’의 작품은 결말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이전에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시체를 사는 남자.]라는 ‘우타노 쇼고’의 작품을 접한 적이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을 접할 때에는 데뷔작부터 하나하나 찾아서 보는 버릇을 갖고 있던 내가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이전에 다른 두 작품을 봤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어찌할까. 도서관에 책이 이제야 들어왔는걸.

아무튼 나는 이전의 두 작품에서도 결말을 맞추지 못했다. [시체를 사는 남자.]의 경우에는 비슷하게 추리는 했으나 결말이 완전히 달랐고,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에 실린 세 개의 이야기의 결말은 전혀 예측해보지도 못했다.

이것이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가 가진 매력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특별하게 유명하지도 않은 작가를 왜 좋아하냐며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보다(용의자 X의 헌신, 제목에서 너무 드러나 있어서 결말을 쉽게 맞춰버렸다. 기대하고 읽었는데…….), 우타노 쇼고의 작품이 좋은 건 어쩌면 그저 취향일지도.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했지만, [시체를 사는 남자.]의 경우는 최고였다. 조금 네타성 발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작품에서는 이너그램 혹은 바꿔치기를 중점적으로 썼는데, 이너그램은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말장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경우에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침묵을 느꼈다고 해야할까. 설명하기가 어려우니 직접 책을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벚꽃지는계절에그대를그리워하네, 우타노쇼고

 

아버지의 독설에 마냥 움츠리기만 했던 아들이 처음으로 어깨를 펴고 거리를 걷고, 당당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안 날이었다.

서글픈 대답에 재상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른 대답을 내 놓았다.

“……제 여식의 비파 소리는 죽을 때까지 못 잊으실 겁니다.”

“각오는 하고 있네.”

교활은 희미하게 웃으며 방을 나섰다. 그 뒤를 소란과 고호가 따른다. 재상은 뒤에서 넙죽 허리를 숙여 왕을 배웅했다.

 

-왕은 웃었다 3 中-

 

 

검은 머리 소년이 안도하듯 웃는다. 아기에는 ‘어, 어?’하며 당황했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멍하다. 아기에의 눈동자마저 당황으로 물들었다.

이런 적은 없었다.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겨우 찾았다.”

눈앞의 소년, 라야가 입을 열었다. 아기에는 낯익은 목소리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어떻게 여기에 있지? 눈을 뽑힌 충격으로 꿈을 꾸나?

아기에는 평소 같았으면 하지도 않았을 바보 같은 생각만 주구장창하며 라야를 올려다봤다.

 

 

-왕은 웃었다 3 中-

 

 

(첫번째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 두번째로는 아기에와 라야가 만나는 부분)

 

 

 

 

사람과 사람이 사는것, 쉽게 내뱉는 말그리고 성장하는 것은 참 무섭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것이, 너무도 쉽게 내뱉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아이가 성장을 하면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 그로 인해 달라지는 삶은 생각보다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왕은 웃었다 3권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인물은 교활왕이었다. 아기에에 관한 이야기었으나, 아기에쪽보다도 교활왕에 관한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모든 이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아서 숨죽이고 살았던 소심했던 아이. 그런 아이가 결국에는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무슨 짓을 저질렀나. 자신의 잘못은 다른 이에게 떠넘기고서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고 하는 그 모습이 애처롭고, 안타까웠다.

안타깝기는 했으나, 교활왕의 잘못에 관해서 너그럽게 봐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본인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어쨌거나 교활은 아기에가 미쳤다고 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느끼는 교활왕의 모습이 좀 더 미쳐있는 것처럼 보인건 착각이 아닐것이다. 교활왕이 가진 광증은 단순히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그런 종류와는 조금 달랐다. 굳이 지칭하자면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있다. 착한이가 되는 것이 무엇이 그리 나쁘냐고 물어온다면 할말이 없다. 그러나 본인이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남을 짓밟는다면? 자신의 죄의식을 감추기 위해 남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비난한다면? 그게 착한 아이일까?

불행하게도, 정한왕도 교활왕도 자신과 남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고집불통들이다. 정한왕이 교활왕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그리고 교활왕이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아기에가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이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흘러갔을까.

 

왕은웃었다3, 류재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