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진보적 사회주의자 스코트 니어링의 동반자 헬렌 니어링이 그녀의 삶을 돌아보며 쓴 책이다.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인도 사상가 크리슈나무르티와의 인연, 이어 반세기에 걸친 스코트와의 삶을 담담히 풀어놓고 있다.
어린시절에 헬렌이 어떠했는가, 크리슈나무르티와의 사랑은 어떤 식이었는지 재미있게 읽을만하고 무엇보다 스코트와의 인생을 회고하는 내용은 두고두고 곱씹으며 읽을만하다. 이 책은 제목그대로 아름다웠던 그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실천적인 지식인의 삶으로써 보여준다.
스코트와 헬렌은 주류의 삶을 과감히 버리고 교외 땅을 사 농장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한다. 그들에게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희망이 있었다. 공허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희망을 확산시키고자 스스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낮에는 노동으로 하고 밤에는 서로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연구와 집필활동을 병행한다.
착취의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자급자족의 생활이지만, 이는 한 인간의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일이다. 육체노동을 통해 골고루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채식을 통해 건강을 유지한다. 그리고 밤에는 끊임없이 공부하여 정신을 단련하는 생활을 계속한다. 헬렌은 작가 허버드의 글을 인용한다.
허바드 <건강과 부>
"이 세상에서 정말 가치있는 것을 얻게 해주고, 사람의 상상력으로는 더 보태거나 낫게 할 수 없는 세 가지 습관이 있다. 그것은 일하는 습관, 건강을 관리하는 습관, 공부하는 습관이다. 당신이 만약 남자이고 이러한 습관을 가진 데다 같은 습관을 가진 여자의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천국에 있는 것이며, 여자 쪽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이상적인 생각들을 생활로 이끌어오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법한데도 그녀의 말에선 어떤 불평, 불만, 다툼의 낌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아흔이 다된 나이라서 여러 가지를 관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전(全)생을 통해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며 얻은 단단하고 안정된 정신력 때문인 듯하다.
헬렌과 스코트의 관계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코트는 20살 이상 연상으로 헬렌을 이끌어준다. 그는 교수시절 급진적 사회주의자로 강단에서 쫓겨났고, 그런 고립감을 견뎌내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실천할만큼 단단한 의지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와 부르주아 가정에서 안락하게 자란 헬렌이 만나 이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헬렌은 스코트에게서 완벽한 남자를 발견했고, 평생 그를 신뢰하며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그들의 관계는 열정보다도 이성에 가깝다. 남자, 여자의 뜨거운 사랑이라기보다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를 가장 많이 신뢰하고 배려하고 북돋을 수 있는, 그리하여 모든 면면이 잘 맞는 완벽한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둘이고, 서로를 동반자로 선택한 둘 이었으니, 그들의 동반자로서의 관계도 부침이 없다.
헬렌에게는 여전히 스코트가 가장 완벽한 남자이다. 진실하고, 이상적이면서 실천적이며, 유머감각이 있고, 평소에는 말이 많지 않으나 자리가 주어지면 누구보다 분명하게 말하고, 의지적이며, 자상하고 배려심이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무한한 애정과 신뢰가 생전 그들의 관계를 짐작케 한다.
죽음 역시 그들의 인생의 일면을 보여준다. 스코트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며 100세까지 장수했는데, 스스로 음식을 끊음으로써 죽음을 선택했다. 인위적인 생명연장장치를 이용하지 않은 채, 육체의 힘이 소진되고 죽음을 가까이 느끼게 되자 죽음을 준비한 것이다. 죽을 때 행복한 인생이라면 진정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그에게 죽음이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육체의 소멸이었기에, 오늘날 어딘가에 스코트는 여전히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다가 죽을 때가 되서야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을 뿐, ’본인’은 다른 무엇인가를 내심 부러워하며 산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때문에, 현실에 대한 얽매임때문에 포기하고 외면하며 산 것이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면서 한번도 자신의 날개를 펼쳐보지 못한 인생은 그렇게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류의 삶은 나름대로 행복하다. 그들이 주류이기 때문에, 즉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게 마련이니, 부와 명예를 생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일까.
스코트와 헬렌은 철저히 비주류적인 삶을 살았다. 초기에는 남들로부터 인정받지도 못했고, 서로에게 온전히 서로만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원칙이 확고했고, 생활습관이 분명했기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등떠밀려 살 필요도 없었다. 온전히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으면서도 주류에 들려 발버둥치며 아둥바둥한다.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거나 ’이건 사는게 사는게 아니다’고 하면서도 ’가족들을 위해서’ 오늘을 감내한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것은 거룩한 희생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진정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스코트와 헬렌은 일종의 대안을 제시한다. 그들처럼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이것이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냐고 물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삶이 흔한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류만을 바라보는 삶은 상상력을 제한한다. 삶은 다양한 형태와 방식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한가지만을 좋은 것처럼 말하고 그것을 위해 달려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감동적인 책이라 천천히 음미하며, 반성하고, 미래를 그려보며 읽어갔다. 스코트나 헬렌처럼 산다는 것은 범인(凡人)에게는 힘들 것이다. 그들처럼 강철같은 지성과 의지로 무장한 사람이 어디 흔한가. 그러나 넓은 시야를 가지고 생에 대해 좀 더 큰 비전을 품어볼 수 있게 한다. 오랜만에 지인들에게 추천한 책이다. 마음과 영혼이 찌들어간다고 느낄 때 이 책을 접하며 세속의 눈을 교정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