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던가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이라는 작품이 참 좋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인터넷 검색결과 마땅한 판본을 찾을 수 없어서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었었다.
그래서 우연찮게 이 책을 선물받고는 적잖이 놀랐다. 
살다보면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데자뷰 혹은 예감했던 일이 벌어진다든지, 원했던 것이 우연한 형태로 이뤄진다든지..
결론을 내린즉 이러하다. 
관심을 갖게 되면, 내가 무엇인가를 바라게 되면 언젠가는 그것을 찾아가게 된다고, 혹은 그것이 찾아오게 된다고. 
(시크릿과는 무관한 얘기다)

비룡소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 청소년문고인데, 왜 청소년문고인가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때 읽어본 청소년 문고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보통 청소년 문고는 성장소설이 대부분이고, 
비극이거나 희극이거나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다. 아니면 그 또래의 고민을 담고 있어 흥미롭게 읽히거나..
그러나 이 소설은 어느 부류도 아니다. 아마추어적인 식견으로 봤을 때는 그렇다. 
딱히 청소년 문고라 이름붙일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로버트 번스의 시 <생쥐와 인간>을 인용하여 소설 앞에 써 놓았다. 
생쥐와 인간은 아주 다르게 보이지만 계획한대로 미래를 실현할 수 없고 슬픔과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똑같다는 내용이다. 
원래 다른 제목을 택했던 작가가 우연히 번스의 시를 보고 생쥐와 인간이라고 제목을 바꿨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확 와닿는 것이 있었다는 것일진데, 
짐작대로다. ’계획한대로 실현할 수 없는 미래’ 그것에서 기인하는 ’슬픔과 고통’ 이 바로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이다. 

조지와 레니는 함께 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노동자이다. 
조지는 작은 체구지만 영리하고, 레니는 힘은 ’사람의 목을 으스러뜨릴만큼’ 세지만 바보나 다름없다. 
조지가 이런 사고뭉치 레니를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그저 ’함께 있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공황 시대 노동자들은 혼자서 떠돌아다녔다. 일하는대로 술집에 가서 탕진하고 창녀들을 전전하며 
하루살이 인생을 반복했다. 이런 인생에는 미래가 없을 수밖에 없다. 돈은 모이지 않고, 힘이 다할 때까지 하루벌고 하루먹고 사는 삶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조지와 레니는 꿈을 꾼다. 

’우리는 달라.. 나에게는 네가 있고 너에게는 나를 보호해줄 네가 있기 때문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힘을 얻고 둘은 돈을 모아 땅을 사고 원할 때만 일을 하는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생활을 꿈꾼다. 
꿈꿀 수 있는 한 그들은 힘들지 않다. 희망을 가지는 한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레니는 의도치 않게 실수를 저지르고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조지는 끊임없이 레니를 단속하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협박하고 타이르지만 레니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는가. 바보인걸 어쩌라고. 

결국 그들이 꿈꾸는 미래는 요원할 뿐이다. 
둘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지는 그것을 깨닫게 된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라 하였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그 자유의지를 제대로 통제한다는 것은 벅찰 수밖에 없다. 
우리들은 늘 행복할 수도, 그렇다고 늘 불행하지도 않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늘 달라진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는 무관하게 닥치는 불행들이다. 

조지와 레니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똘똘 뭉쳐 파트너가 되어 어디든지 다녔다. 
그들이 겪게 되는 일들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한 일들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그냥 그렇게 벌어졌다. (it just happened)

환경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닥친 일 속에서 조지는 ’선택’을 한다. 
거짓희망을 꿈꾸며 계속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고치기를 반복할 것인지, 
희망을 놓치고 마음은 부서지지만 그래도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것인지.
어려운 결정이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암울한 시대 거짓희망이라도 붙잡아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조지의 선택은 후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린 그에게 오히려 희망의 씨앗이 숨어있다. 
그에게는 인간을 향한 희망이 있다. 아무리 바보라도 사고만 치는 인간이라도 존중하는 태도가 그에게는 있었다. 
겉으로 보았을 때 그것이 과연 정말 존중하는 방식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는 어려운 길을 택했고, 그것이 역으로 절망으로 극복하는 희망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뚜렷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아무리 실망하고 절망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면 살 수 있다. 
그것이 미래를 꿈꾸게 하고 오늘을 살게 한다. 

그래서 인간은 생쥐와 같지 않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면 계속해서 살아나갈 수 있다. 
스타인벡은 간결한 이 소설에서 풍부하고 아름다운 묘사와 생생하고 실감나는 묘사를 통해 조지와 레니의 비극을 부각시킨다. 
자연은 묵묵히 그 자리에 있고 조지와 레니를 빤히 응시한다. 아니 그냥 무심할뿐인지도. 
우리들은.. 그저 살아나갈 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한치 앞도 예상하지 못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마음을 훈련하는 것뿐이다. 

때론 이런 책으로, 사람으로, 종교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구원해야만 그에게 길이 있다. 
조지와 레니는 서로를 구원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아마도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는 여전히 꿈꿀 수 있는 무엇인가가 
남아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저 믿을 뿐이다. 

어릴 때부터 꽤나 많이 들어본 캐릭터다. 돈 까밀로 신부와 예수님, 신부의 라이벌 빼뽀네와 마을 사람들. 시리즈물로 9권이나 10권정도 되는 듯 하다. 시리즈물의 장점은 내용이 다소 부실해져도 캐릭터만 제대로 산다면 충분히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인데, 다행히 읽어본 결과 캐릭터가 매력적이라 주욱 관심을 갖게 될 것 같다. 

돈 까밀로 신부는 마음이 따뜻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짓궂어서 매번 공산주의자 빼뽀네와 아웅다웅한다. 그 둘이 정말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할퀴고 호시탐탐 골탕먹일 기회를 엿보지만 서로가 없으면 정작 가장 서러워할 사람이 그 둘이다. 그런 악의없는 다툼이 흥겨웠다. 예수님은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 성경처럼 예수님이 살아나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목소리로 항상 돈 까밀로 신부와 소통한다. ’까밀로야 다투지 말아라. 까밀로야 잘했다’ 뭐 이런 식으로 온화하게 말해주고 까밀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거나 돌아본다. 그렇다고 까밀로 신부가 늘 말을 잘 듣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뜻은 깊고, 까밀로는 인간이라. 그런 허점투성이지만 순하고 착한 그가 사랑스러웠다. 

다양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주된 내용은 돈 까밀로와 빼뽀네의 대결에 관한 것이지만, 마을 사람들에 관한 평범한 에피소드도 꽤 된다. 마구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유머스러운 내용은 아니지만, 잔잔히 따뜻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책이다. 우선 에피소드들이 모두 선량한 기운을 뿜고 있기 때문이고, 캐릭터들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성질급한 공산주의자 빼뽀네도 실은 의리있고 정많은 캐릭터이고, 마을 사람들도 감정이 풍부하고 개성이 넘친다. 우리 주위에서 볼 법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시골의 푸근한 인심좋은 이웃들을 닮았다. 우선 선량함의 테두리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못된 짓을 해봤자. 인 것이다. 선한 사람들의 음모(plot)은 일종의 코믹함을 선사한다. 

몇 가지 재미있는 장면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벤치대결장면이다. 
마주친 돈 까밀로와 빼뽀네는 그들이 즐겨 하는 벤치 결투를 시작한다. 상상이 가시나? 벤치를 뽑아들고 던지는 돈 까밀로, 이에 질세라 빼뽀네도 뽑아 던지기 시작. 벤치들이 부딪쳐 와장장 와르르 우당탕. 막무가내로 싸운다. 그런데 웃기는 점은 그둘이 최대한 급소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심하면서’ 싸운다는 점이다. 몇 페이지인지 잊어버려서 직접 인용은 불가하지만, 이 장면에서 ’빵’ 터졌다. 

대강 책의 분위기가 상상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슬럼프에서 구해주었던 책이니만큼, 우울할 때 일이 진척이 안되고 머리가 복잡할 때 기분전환삼아 아무 에피소드나 펼쳐 읽어보시라. 자그마한 온기가 발끝에서부터 슬금슬금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테세우스 신화에 상상력의 살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테세우스 신화라 하면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찾아가면서 겪은 모험, 아리따운 여성들과의 이야기, 왕자가 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 등 그는 그리스 신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그가 조국의 젊은이들을 구하고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리아드네 공주와 탈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화는 이렇다. 아테네는 강국인 크레타에 매년 인간제물을 바쳐야 한다. 이에 아테네의 왕자인 테세우스는 일부러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가 크레타에 잠입하고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괴물을 죽이고 무사히 탈출한다. 그러나 낙소스 섬에 이르러 아리아드네 공주를 두고 가버리는데..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생긴 말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이다.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실뭉치를 주어 입구에 묶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 그것을 따라 나오게 하는 지혜를 발휘했는데 이때의 실타래를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고 하여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방법을 말할 때 쓴다. 적국의 공주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나라를 구한 셈이다. 

이 이야기는 굵직한 줄거리만으로 알려진 신화에 살을 조밀조밀 붙인다.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공주의 비극이 부각된 것이 신화라면, 아니 부각이라기보다 온전히 이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텐데, 이 책에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본줄기로 하고 그 주변의 실을 촘촘하게 직조하여 보다 현실적인, 즉 소설적인 감각으로 풀어내었다. 

궁전에서 홀로 쓸쓸해하는 아리아드네와 그녀의 충실한 시녀, 그 가족들, 가족의 친구인 이카로스(날개가 녹아 추락사한 바로 그 이카로스다), 다이달로스(라비린토스를 만든 장인), 훗날 테세우스의 아내가 되는 아리아드네의 언니 파이드라 등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펼쳐진다. 이들의 관계가 얽히고 설켜 신화와는 또다른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신화로만 알고 있던 이야기들에 일종의 현실성을 부여한다. 

왜 아리아드네가 조국을 배신할 수밖에 없었는지, 테세우스와 어떻게 만났는지, 왜 버려졌는지 등 신화를 보고 가질 법한 의문들에 대해 펼쳐지는 상상력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도 그런 의문을 가졌기에 이런 대답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짧은 신화를 이렇게 두툼한 책에 녹여냈다는 건 그만큼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는 의미이고, 실제로 당시 상황에 대한 묘사 특히 문물, 음식 등에 대한 묘사는 꽤 그리스스럽게 잘 그려냈다. 

신화를 알고 있다면 이것저것 비교하고 짜맞추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이야기로는? 글쎄. 
요즘 소설이 워낙 다이나믹해서, 다소 수더분한 이 소설이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 읽혔을 때 마냥 재미있을지는 의문이다.  수더분하다는 말은 말그대로 꾸밈이 없고, 복잡한 플롯이나 치밀한 묘사도 없고, 긴장감도 딱히 없다는 말이고, 장점이라고 한다면 신화의 빈 곳을 상상력으로 메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라고 할 수 있으니.. 역시 네이버 지식인을 한번 찾아주고 본문에 돌입하는 것이 좋겠다. 

읽으면서 조금 거슬렸던 점이라면 우선 인물이 평면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디테일을 살려내어 상황을 만들어 내었고, 그 상황에 따라 인물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는데 인물들이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느껴질 뿐 각각의 개성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해는 되지만 몰입은 잘되지 않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다소 상투적이고 과장된 표현들이 눈에 띄었다. 원문번역이 아니라 그리스어-영어-한국어 번역이라 그 과정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작가가 평면적인 인물, 과장된 표현 등을 의도한 것이라면 그 목표란 신화를 풀어쓰면서도 최대한 신화에 가까운 느낌을 살리고자, 그 느낌을 훼손시키지 않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건 순전히 아마추어적인 관점이지만.

신화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표지는 우리나라 화가의 작품이고, 니크스의 전집의 표지가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예술적인 표지그림과 깔끔한 글씨체, 두툼한 책 한권은 여튼 손에 드는 것만으로 꽤 만족스러운 감촉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