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손에 잡게 된 건, 단순히 침대와 책이라는 제목과 표지가 맘에 들어서였다. 매트리스 발치쪽에 책들이 무작위로 쌓여있다. 여자는 책을 한 권 고른 모양인지 매트리스에 올라서고 있다. 매끄럽고 날씬한 종아리가 어여쁘다. 하늘하늘한 치마는 편하게 엎드리고 눕고 뒹굴기 좋을 것 같다. 크림색 시트는 편안한 분위기처럼 부담없이 구겨져있다. 하늘을 닮은 침대 뒷 배경은 여자가 책을 통해 꾸는 꿈을 나타내는 것도 같다. 이 표지는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담았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고된 일과를 마치고 한 권의 매혹적인 책을 품고 자신의 안식처에 들어가는 일. 그 장면을 보여주기보다, 그 직전의 과정을 동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막 매트리스에 발을 딛는 여자의 기대감과 행복감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표지는 저자의 방을 닮았다. ’내 작은 침실엔 거대하고 납작하고 아주 낮은 다다미 침대가 놓여 있다. 그 침대는 삼면이 감은색 나무 프레임으로 둘러싸여 있다. 발치 부분 나무 프레임의 한가운데는 은도금이 되어 있어서 가끔 얼굴을 비춰 볼 수도 있다. 헤드 부분엔 푸른 하늘과 불안정한 하얀 구름과 작고 검은 새가 그려진 커튼이 벽화처럼 붙어 있다. 침대의 프레임엔 수많은 책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다.’ 저자는 그 프레임을 채우려고 책을 사다날랐다고 한다. 침대를 처음 들여놓던 날에는 백석의 문장을 떠올리며 나타샤와 나귀를 립스틱으로 그려놓고 , 프랑스 작가 보니 콜레트를 떠올리며 자신도 80세가 되면 침대에 누워 사람들에게 그 주의 신간정보를 물어볼 것이라 익살궂게 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수히 많은 책들과 작가들과 그 속의 이야기들이 작가의 재치와 맞물려 이어진다. 책은 총 22개의 소주제로 분류되어 있는데, 각각의 주제는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싶은 아침’, ’부장님께 된통 깨지고 나서’, ’꿈은 있지만 꿈에 이르는 길을 몰라 불안할 때’ 와 같이 누구나 생활 속에서 겪는 부침에 대한 작가의 경험을 녹여냈다. 순서대로 읽기 보다 자신이 공감가는 챕터부터,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한 주제를 택한 다음 천천히 음미하면 좋을 만한 책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조언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 방식대로 말없이 책 한권을 슥 들이밀 뿐이다. 발췌된 책 속의 책 내용은 절묘하게 상황에 부합하고 혹은 어리둥절할 정도로 부합하지 않지만 어떤 곳에서도 위로를 얻고 즐거움을 발견해내는 그녀의 안목이 마치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우울을 쾌활로 만들어준다’던 수전손택의 말을 그대로 실현해내는 것 같아 유쾌하다.
한 챕터만 읽어도 그녀의 책에 대한 열정과 박식함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세상을 정의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보인다. 그녀가 플로베르식으로 ’명예’를 정의한 것을 보면 그녀의 앎에 대한 열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p17 명예- 하루 세 편의 영화를 보고 일주일에 세 권의 책을 읽는 것)남들이 세상사에 복작복작 볶일 때마다 그 속에 휘말려들어가 고민할 때에도 저자는 끊임없이 책 속에서 구원을 찾는다. 구원은 거창하다. 그저 위로정도로 해두자. 그녀가 위로를 찾아내는 방식은 아주 개인적이다. 문득, 아마도 그녀 자신의 특정한 경험과 결부된 것이겠지만, 어느 구절을 읽다가 아무 이유없이 좋아지고 그 구절을 혹은 장면을 닳고 닳도록 떠올린다. 그 구절들은 닳아서 없어지는 듯 하다가 그 구절들이 필요할 때가 되면 거짓말처럼 나타나 저자를 위무한다.
그렇다. 이 책은 책에 대해 바치는 찬사며, 책을 고매한 정신활동으로 격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도구 혹은 생활 속의 일부로, 저자의 인생의 동반자로 끌어온다. 그녀는 침대에서 세상을 여행하고 인생의 진리를 터득하며, 삶의 위로를 얻는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이 책 읽었었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저자의 세심한 시선과 감성에 놀라게 된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것을 붙잡아 재조명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싶다, 읽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쉬운 능력은 아닐 거다. 실제로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접한 책이 발췌된 구절에 대해 느꼈던 감동과는 반대로 지루하게만 느껴졌을 때, 오히려 저자의 ’발견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숱하게 나오는 와인, 여행에 관한 안내서처럼 책에 대한 안내서를 쓰고 싶었다는 저자는 이 점에서 확실히 성공을 거둔 것 같다.
저자의 인용글로 끝을 맺어보려 한다.
방랑자
- 인간이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하는 존재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아끼기만 하는 자는 결국 그렇게 너무 아끼다 병들고 만다. 많은 것을 보려면 자기 자신을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한다. 인식하는 자로서 눈에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어떻게 만사에 있어서 겉으로 드러난 근거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을 터인가?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자신을 넘어서 올라가야 한다. 위로 더 위로! 그렇다. 나 자신과 나의 별들마저도 저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 나는 그것을 나의 정상이라 부른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정상으로 내게 남겨진 것들이다. ’가장 높은 산들은 어디서 오는가?’라고 일찍이 나는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이 바다로부터 온다는 것을 배웠다. 그 증거는 산의 바위와 산 정상의 암벽에 씌어 있다. 가장 높은 것은 가장 깊은 것으로부터 나와서 그 높이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하여 ’ 결국 우리는 말한다. 차라투스트라식으로. 용기는 말한다.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러면 다시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