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라고 하면 공중그네의 아라부처럼 가볍고 유쾌한 느낌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방해자>는 그런 기대를 완벽하게 무너뜨리며 작가의 새로운 면을 드러낸다. 이 작가의 놀라운 변신은 결코 실망스럽지 않다. 3권의 두둑한 분량만큼이나 내용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마냥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소설은 아니다. 1권은 다소 늘어지지만 2권부터 3권까지는 빨려들어가 끝까지 읽게 된다. 

방화사건을 둘러싸고 형사 구노와 용의자를 남편으로 둔 교코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펼쳐진다. 구노는 7년전 아내를 잃은 후 불면증에 시달린다.  직장내에서는 강직한 인물로 신임을 얻고 있지만 동료와의 불화로 인해 위기에 빠진다. 교코는 회사원인 남편과 두 아이를 둔 단란한 가정의 주부이다. 그러나 남편이 방화사건의 용의자로 몰리면서 평온한 일상에 파문이 번지기 시작한다. 범인을 잡으려는 구노와 가정을 지키려는 교코의 분투가 눈물겹다. 

줄거리에서 볼 수 있듯이 범인은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범죄가 발생하고 그것을 둘러싼 관계들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는가이다. 구노는 범인을 잡으려 애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일들을 해결하게 되고, 교코는 가정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몰랐던 자신의 내면을 발견한다. 

균형을 잡으며 묵직한 감각을 유지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솜씨가 놀랍다.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없이 소설적 분위기를 유지해나간다. 인간심리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력에는 감탄이 나왔다. 특히 그런 부분에 있어서 '티'를 내지 않고 안정된 문체로 담담하게 묘사해나가는 것에 이 작가를 다시 봤다고나 할까. 

정신없이 3권까지 달리고 나면 좀 얼떨떨한 기분이 든다. 독자가 말끔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경우는 주로 모든 사건들이 해결되고 주인공들도 해피엔딩을 맞게 되는 경우일텐데, 이 소설에서는 '아무도' 행복한 결말을 맞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행복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테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행복한 결말보다는 '진실'을 원한 것 같다. 

즉, 이런 거다. '매트릭스 딜레마'. 매트릭스에서 깨어나는 것이 행복할 수도 혹은 아닐수도 있다. 진실은 그 자체로 가치있지만 진실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작가의 재량으로 주인공들에게 매트릭스에서 깨어날 수 있는 알약을 주었지만,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온전히 그들에게 달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열린 결말일 수도 있겠다. 이런 여러 가지 의미들을 생각해본다면 <방해자>라는 묵직한 소설은 아마 가볍게 잊게 될 소설은 아닌 듯 하다. 여타의 미스터리 소설과 비교해본다면 다소 심심한 느낌도 들지만, 그 속에 담긴 작가의 문제의식과 치밀한 관찰에 따른 디테일, 심리묘사 등은 앞으로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의 이름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할 것 같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에쿠니 가오리는 그간 실망스러웠던 작가였다.  실망이라 하면 기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할터,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은 뒤로, 신선한 감성적 충격에 주목할 작가로 생각했었고, <반짝반짝 빛나는>을 통해 나름대로 신뢰할 수 있는 작가일 것이라고 섣부른 판단을 내렸기 때문.   

그러던 어느날.....홀리가든, 맨드라미 빨강 뭐시기 하는 책을 접하고 돈이 아까웠다는..읽고 환불할 면피는 안되기 때문에 그래도 보관은 해두었으나, 아까웠다. 진정.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보여주었던 에쿠니적 세계는
여자라면(아마도) 한번쯤 꿈꿔보았던 판타지를 훌륭하게 충족시켜주었다.  
그러나 그 뒤로 너무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작품들은 제자리 걸음의 연속. 
점차로 넓어지는 것이 아닌, 고립되고 좁아지는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답답하다, 답답해를 연발케 했었다. 

등장인물 수도 적고, 이야기도 없고. 
-아마도 외로움에 대해 작가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한데- 
세밀하고 감각적인 묘사나 미묘한 감정처리에 능한 솜씨는 좋지만 
그것만으로 재미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감동이랄 것도 없고. 

그녀의 책은 자신의 색이 너무 강해, 작가가 어떤 사람이다 짐작할 만한데 읽다보면 그녀가 왠지 불쌍해진다. 이런 감정들을 끌어안고 변화없이 계속해서 외로워하며 체념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싶기 때문이다. 즉 그녀의 작품에서 일련의 변화나 발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장미 비파 레몬>은 말하자면, 집에 어쩌다 들어와 있길래 한번 펼쳐본 책에 지나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에 대한 기대를 모조리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도 적당히 건너뛰고 술렁술렁 읽었다. 

그런데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그녀 특유의 문장은 왠지 서툴러보이고, 작가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미숙한 것같은 느낌도 있는데, 그럼에도 이번 소설은 다른 소설과는 조금은 다르다고 봐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선 등장인물이 많고, 그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끊임없이 바뀐다.
앞페이지가 레이코의 이야기였다면, 뒷페이지 맨 윗부분에서 느닷없이 에리의 이야기가 서술되는 식이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짧고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오히려 긴 분량에도 불구 늘어지는 위험을 피했다. 그러다보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어떻게 결말이 날지 추측해보며 읽는 재미도 있었다. 

내용은 결혼한 커플들 및 그들의 친구 혹은 가족의 연애이야기이다. 
주로 그 연애는 불륜이고. 
에쿠니의 책에는 왜이리 불륜이 많은거냐.. 이것도 좀 거슬린다. 
거슬린다는 의미는 뭐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진부’하다. 너무 이 문제에 천착하니..공감도 안될뿐더러. 

다만 신이치의 말은 갑작스레 공감이 되는 바람에 뜨끔할 정도였다. 연애란 서로 안정된 가정이 있고, 다 갖추어져서 상대방에게 더는 바라는 게 없을 때, 즉 결혼한 사람과의 연애가 진정한 연애일 수도 있다고. 왜냐하면 상대에게서 오로지 ’상대방’만 볼 수 있으니까. 

현실적인 관점에서 연애란, 더욱이 결혼할 나이의 성인들에게 연애란 상대방만을 보는 통로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연애당사자에게도 그래서 더 피곤한거지.. 책 속의 인물들을 보니 정말 결혼이란 이런 것일까 하는 답없는 의문에 맹숭맹숭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인생 자체가 답이 없는 거니 무슨 선택을 해도 후회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알콩달콩사는 것 같아도 열정없는 사이라든지, 겉으로는 이상적인 부부인데 서로에게 관심은 없고, 오로지 생활의 톱니바퀴를 끼워맞추려고 전전긍긍한다든지, 이혼 후에 ’그 사람이 그립거나 보고싶은 것은 아닌데도, 그 사람의 존재감때문에 못견디게 힘들다’라든지. 다들 힘들게 산다. 

한 사람을 평생 사랑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책 속 인물들은 가정은 그것 대로 소중하지만 바람을 피고 거기서 만족감을 얻는다. 
죄책감은 거의 없다. 드라마나 책이나, 혹은 실제 생활에서 풍문으로 들려오는 이야기나 불륜은 흔하디 흔해 이제는 더 자극거리도 안되는 소재가 되어버렸다. 

사람이란 모를 존재다. 인생이란 변화의 연속이고, 사람의 감정도 변덕스럽다. 그 속에서 일관성을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의지’이다. 나는 이렇게 살겠다 라든지, 이것은 피하겠다라든지. 그 의지가 쉽게 발휘되는 때도 있는가 하면 거의 초인적으로 노력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 그런 노력을 해야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에 휩싸이게 되고, 아니다 싶으면 포기하게 되는거지.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고.. 살면서 힘든일이 얼마나 많은데 되도록 편하고 쉬운 방향으로 생각하고 싶은 그런 시스템이 인간의 두뇌에는 있단다.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도 있고, 그래서 생각없이 저지르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 

이 소설의 경우 그런 것을 어떤 무게감없이 개방적으로 펼쳐놓은 듯하다. 다들 그냥 그럭저럭 사는거지 뭐. 내용도 그럭저럭 재미있었고. 깊이는 없지만. 그녀의 작품은 깊이보다는 뛰어난 묘사력에 비교우위를 두어야 한다. 줄줄 읽다가 문득 몇 구절에, 블랙홀마냥 빨려들어가곤 했으니. 간질간질한, 설명할 수 없던 감정도 슥슥 그려내니 시원스럽기도 했고. 그런 점은 여전히 좋더라. 

인물이 늘어난다고 해서 작품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녀의 시선이 조금은 넓어진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나올 소설이 조금은 궁금해지기도 했고, 돈주고 사서 보지는 않겠지만. 

아, 이 책의 최대장점은 이쁜 책 표지 및 표지를 벗겼을 때 나오는 하드커버...이 하드커버의 울긋불긋한 색과 무지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것때문에 산 사람도 있을거야.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