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 작지만 단단하다. 겨우 통권 8호이지만 갖가지 문화와 예술에 관한 이야기들이 아기자기 담겨있다. 200쪽이 채 되지 않는 얇은 두께는 이 시대의 독자들을 위한 것이리라. 통상적인 계간 문예지의 절반의 두께이지만 있을 건 다 있다. <그림 에세이>,<특집>,<문화예술기행>,<새 시집 속의 詩>,<소설>,<동화>,<에세이>,<칼럼>,<인터뷰> 등등 읽을거리는 넘쳐난다. |
|
| 자, 그럼 이 신나는 문화의 마당으로 뛰어들어가보자. |
|
| 먼저 <특집: 상상력,그 무한지대의 꽃 뮤지컬>을 통하여는 금세기 공연 장르에서 가장 활발하게 발전하고 왕성하게 성장해온 뮤지컬에 대한 기본 상식을 넓힐 수 있었다. 음악과 춤과 연기가 3박자를 이룬 공연장르,뮤지컬은 요즘 공연문화의 큰 주류를 이끌며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내가 본 뮤지컬을 되짚어보니 옛날옛적에 보았던 "아가씨와 건달들"이 생각날 뿐 다른 관람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최근에는 산업화한 콘텐츠로 무장한 뮤지컬들이 등장하고 있고 우리는 창작 뮤지컬의 태동기이며 성장시켜야할 중요한 단계라는 것이 설명되고 있어 뮤지컬을 잘 모르는 나같은 이에게 딱!이라는 느낌이다. |
|
| <최하림의 그림에세이>는 박수근 화백의 <좌판>,<빨래터>를 소개하고 있는데 '예술가들은 결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다.박수근 화백과 같이 가엾고 뜨거운 마음으로 사물과 세계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다.'라는 최하림 시인의 예술론을 들을 수 있다. |
|
| <문화예술기행>은 마야,무위사,러시아,아마존으로 발길을 넓히고 있는데 솔직히 글보다 사진이 눈에 흠뻑 들어온다.특히 아마존의 사진은 어디서 보아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마야문명에 관심이 많지만 소설가 김원일의 글맛을 느끼기에는 너무 짧다. |
|
| 소설가 김영현의 에세이 <장롱이야기>는 소시민의 살아가는 한 단편을 장롱바꾸기를 통하여 쓸쓸히 나타내고 있고 작곡가 이건용이 시인 오세영의 시에 곡을 붙인 <11월>은 들을 수 없어 아쉽다. 하지만 여기서 오세영 시인의 절창 한 소절을 만날 수 있다. |
|
|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
| 돌아보면 |
| 다들 떠나갔구나 |
| 제 있을 꽃자리 |
| 제 있을 잎자리 |
| 빈 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
| ＊오세영의 <11월>에서 (117쪽) |
|
| 이진곤의 문화칼럼<돈 먹고 배 쓸기>에서는 요즘 자주 부딪히는 관료들의 부패를 옛이야기에서 또 만난다, 역시 기분 나쁘다, 아직도 진행중인 부패를 생각하니 더욱 그러하다. |
|
| 인터뷰 <빠리의 택시 운전사와 신촌에서 만나다>에서 홍세화가 이야기하는 프랑스어 '똘레랑스'의 적절한 우리말이 '너그럽게 받아들인다'는 뜻의 '관용'이 아니라'차이를 참으면서 받아들인다'는 뜻을 가진 '용인'이 더 가깝다는 본인의 목소리를 직접 만날 수 있어 좋다. 차이와 다름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우리에게 그의 존재는 여전히 고마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 잘 알기 위하여 인문학을 공부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래, 그렇기에 내가 이 시간에도 이렇게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하자 스스로 흐뭇해진다. |
|
| 그리고 내게 이 책을 보게한 가장 큰 까닭인 <휴먼스토리> 신영복 편에서는 여전히 정정한 그를 만나 반갑고 '지식인은 항상 제3의 입장을 견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씀은 더욱 기껍다. 가훈이 [함께]라는 신영복 교수의 이야기는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작업을 기대하게 한다. |
|
| <이장호 감독의 영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김다은의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5.폭탄주와 피아노>는 매우 새롭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들을 문화현상으로 분석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다. |
|
| 이 밖에도 <강태규의 이사람 :인순이>,<문화소식>,<2007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참가기>등 읽을거리는 계속 된다. 잠깐 멈춰 생각하니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간신문도 주간지도 아닌 계간지 아니던가. 넉달을 끼고 살며 보아야하는…그러므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함을 아쉬워말자. 시간이 흐르면 다른 이야기가 샘솟듯 솟아 날터이니까. |
|
| 자, 그러니 <쿨트라가 읽은 새 시집속의 詩> 4편과 <신작시>4편, 가슴찡한 함영현의 <동화:노란잠바>와 박규원의 소설 <불꽃속의 나라>이야기는 나중에 나누기로 하자. 하지만 끝으로, 교장선생님 말씀하시듯이,마지막으로, 오늘의 詩, 한 편만 가려뽑아 함께 읊어보자. 신달자 시인의 '손을 베었다'로 시작되는 "열애"도 화끈한 말투가 좋지만 이 겨울에 더 어울릴 이 시를 읽으며 책장을 덮자. |
|
| 낡은 교과서 |
|
| 나는 그들이 버린 낡은 교과서를 알고 있다. 사랑에 빠진 젊은이는 결코 혁명가가 될 수 없다는 낡은 교과서. 애인과 헤어지고 이불 속에서 울며 읽었던 낡은 교과서. 아,연탄불을 갈아가며 숨어 살던 흑석동. 다시 가보니 닥터 지바고보다 지독한 눈이 내리고, 지적 오만이 병처럼 꿈틀거렸다. 나보다 가진 게 없던 자들이 밥을 먹여 주던 시절. 어디쯤일까. 비닐에 묶어 파묻었던 낡은 교과서. 이제는 늙어 목이 쉰 낡은 교과서. |
|
| - 원구식, 시집 [마돈나를 위하여]에서, (139쪽) |
|
|
| 2008. 1.28. 다시 겨울비 내리는 밤 |
|
| 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