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에 혹하여 책을 손에들고 읽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그러하였다. 600여쪽에 이르는 두툼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읽기로 결심한 까닭은 오로지 [바람과 그림자의 책]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궁금증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책을 안다, 바람과 그림자처럼 곁에 있고 때론 보이기도 하지만 만질 수는 없는 그런 책,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책에 대한 이야기. 무척 흥미롭게 읽기를 시작하였다.

나름 재미있는 세 가지 이야기가 각각 전개되다 만나는 이 큰 욕망의 어울림과 호흡이 이런 스릴러물의 재미를 판가름 하는 관건일 터이다. 그런데 한마디로 너무 지은이의 욕심이 넘쳐난다. <세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이라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벅찬데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인종적 특성까지 …따라가기에 무척 벅찬느낌이다. 특히 처음부터 시작하여 세가지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더욱 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일관성있는 이야기를 하기란 빌어먹게 어렵다는 것이다.(8쪽)

주인공 스스로 고백하듯이 이야기의 일관성을 쫓아가기에 지친 독자들이 많았으리라. 주인공인 지적재산권 법률 변호사인 ’제이크 미쉬킨’의 고백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400여년전의 문서인 <브레이스거들의 편지>로 넘어가고 다시 그 편지를 발견하게 되는 ’앨버트 크로세티’의 이야기로 가지치기를 한다. 그리고 각각의 길로 냅다 달리는데 각각이 따로 따로 분권으로, <1.미쉬킨의 이야기>,<2.크로세티의 이야기>,<3.브레이스거들의 편지>로 이야기가  정리되었다면 차라리 좋았으리라는 생각마저 든다.

친구,여자,아이,가족,아버지 등 충분한 문제거리를 갖고 있는 ’미쉬킨’변호사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훌륭한 소설이 될 수 있고 나머지 두 갈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열심히 읽고 달려가지만 예측되는 결말에 비해 들인 공이 지은이도 주인공들도 그리고 읽는 독자도 너무 많다. 그래서 지치는 것이리라. ’미쉬킨’의 여자와 ’크로세티’의 여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추리소설을 조금만 본 사람이라면 쉬 눈에 들어오는 트릭이었고 중간중간 개연성없이 치고 들어오는 인물들인 아버지,형들의 이야기도 마뜩찮은 전개였다.

큰 거짓말을 하나 하려면 천 개의 진짜 얘기를 말해야 합니다. 그중에 섞여 지나가게 하면 거짓말은 들통나지 않습니다.(275쪽)

아마 마지막에 드러나는 몇가지 반전을 준비하느라 이야기가 이처럼 늘어진 것이리라. 영화로 제작한다면 다 추려내고 꽤 재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으리라 보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이 책에서 스릴러와는 또 다른 읽는 재미를 발견하였으니 가끔씩 등장하는 잠언류의 말들과 이런 이

필요한 것이 좀 더 적고,좀 더 인심이 있으며,버려야 할 배움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게 예수님이 그들(빈민)을 선호한 이유이다.(290쪽)

네 문제는 나태함이고 언제나 그랬어(293쪽)

마치 빠삐용의 죄처럼…,미쉬킨의 형이 미쉬킨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 전쟁 후 독일 사람과 러시아 사람들이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폴란드인)는 주위를 둘러보고 우리 안에 아직 생명이 남아 있음을 발견했다는 거네. 배우고,사랑을 나누고,아이를 낳았지.폴란드는 살아 남았고,우리의 언어는 살아 있어서 사람들은 시을 썼어. 바르샤바는 재건되었고 벽돌 하나하나가 전쟁 전과 똑같았네. 밀로시는 노벨상을 탓고, 쉼브로스카도 노벨상을 탓어. 우리 가운데 교황이 나왔지. 누가 이걸 상상할 수 있었겠나? 그러므로 우리가 예술을 만들 때는, 이 예술은 거의 대부분 ’아,나는 너무 불쌍해. 얼마나 고난을 겪었는지.악마 탓이다.인생은 쓰레기야.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이런 것보다 더한 무언가를 담고 있지.내 말은 바로 이런 뜻이라네."(328쪽)

같은 성찰의 문장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자,그러면 이야기 속의 세익스피어가 직접 전하는 연극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사람들은 형님의 연극에 몰려듭니다.형님의 희곡이 최고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브레이스거들) "어찌 그리 말하는가? 딕,연극이란 무엇인가? 화요일이면 새것을 올리고,7일 후면 그들은 뭐 다른 것 없소,이것은 이전에 들었소,하고 외친다네.이는 한푼 두푼 장사이며,음유시인과 곰 싸움의 중간에 자리하는 것이라네. 바람과 그림자처럼 무게라고는 없다네.~ 나는 젊은 시절부터 돈을 벌고 벌었으나 펜은 오로지 저기 목조 원형극장을세익스피어)(487쪽)

개별적인 이야기들은 나름대로 읽는 재미가 있고 별도의 색지를 사용한 ’브레이스거들의 편지’도 읽는이를 고려한 좋은 편집이다. 다만 너무 이야기가 넘친다는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이 책, 세익스피어의 알려지지 않은 마지막 작품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읽는 이를 위하여 남겨두련다. ’바람과 그림자의 책’이므로.

2008. 2.20. 새벽, 넘쳐나는 생각을 다 못 추스리다……

들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