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바지를 사서 기장을 줄여 입은 친구에게 '야, 바지 겁나 이상해. 다리 짧아 보여." 라고
하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다리 짧고 바지 겁나 이상한 건 팩트일지 모르지만, 굳이 할 말은 아니다.
수선까지 마친 바지를 환불할 수도 없는 거 아닌가? 그런 식의 말을 즐기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그럼 거짓말해?" 라는 것이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편하거나 상처가 되는 말은 안 하는 게 더 낫다. 말 안 해줘도 바보 아닌
다음에야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진실, 타이밍, 친절. 이 세 가지를 기억하고 말하는 게 좋다. -p193
이미 세권의 책을 출간한 고만재 작가님. 나에겐 이 책은 처음인데,
일상을 관찰하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참 따뜻한 분같다. 아니, 따뜻한 분이다.
작가님이 겪은 분들과의 다양한 경험들을 읽다보면, 바깥은 추운데, 내 마음은 천천히 따뜻함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다.
글쓰는 운동선생 이라는 소개글로 미루어, 작가님은 운동을 가르치시는 분인데, 오히려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을 한권에 꽉 채워주셔서, 마음을 단련해주시는 분이다.
특히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단편영화 라 칭하며, 재밌게 얘기해주는 에피소드는
대중교통 매니아인 나에게 공감대 백퍼센트였다. 핸드폰때문에 내 주변에 누가 있는지 모르고 목적지에 내리는 많은 사람들속에서
작가님은 다채로운 경험을 하시고, 글로 남겨주셨다.
나도 의도적으로 핸드폰을 안 보려고 하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는 대중교통 이용시 좀더 꾹 참고,
사람냄새를 느껴보려 하고 있다.
버스에서 조는 승객을 깨워, 목적지를 물어보는 훌륭한 버스기사님 이야기에 나도 20여년전 버스기사 한분이 생각났다.
대학로에서 우리집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막차를 탄 어느날, 유독 피곤했던 하루여서, 아뿔사,
버스안에서 잠이 들었다. 누군가 어깨를 흔들어 눈을 떠보니, 종점이었고, 막차여서 나가는 버스도 없었다.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기사님이 집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중화동이요. 했더니,
그냥 앉아있으라고 하고서는 버스를 몰고 집근처 정류장에 내려주셨다...!!!
기사님도 늦은 시간 퇴근을 하셨어야 했을텐데, 나또래 자녀가 생각나신 걸까?
작가님 같았으면, 이름도 물어보고, 다음날 종점까지 찾아갔을텐데...그냥 나는 재밌는 에피소드로 기억하고 있다.
고마운 마음은 꼭 표현을 하는 작가님의 마음이 몸에 운동근육처럼 친절근육을 만들어주시는 듯 하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게으른 살들의 밀도가 슬슬 나를 압박하고 있는데, 운동근육 만들어달라고 찾아가고 싶다.
작가님께 배우는 운동은 무언가 마음까지 챙겨주실 것 같은...
커피를 쏟아도, 웃는 사람을 만날수 있는 작가님은,
작가님이 먼저 누군가를 돕고 만나는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기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추운 날씨에, 손난로 같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