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길의 작품도 개인적으로 처음 접합니다. 와~~~ 문제적 작품이면서도 논쟁적 작품입니다. 그러면서도 서사의 전개는 훌륭합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만족스러운 작품입니다. 연이어 좋은 작품을 읽게 되어 기분이 상당히 좋네요 ㅎㅎ 하지만 작품의 내용은 결코 밝지 않은, 어느 한 쪽에는 불쾌감 혹은 비난을 다른 한 쪽에는 반성과 성찰을 요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목부터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와는' '생각이, 성격이, 환경이...' 다른 사람, '예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 혹은 기타의 다른 사람...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안에서 생활합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면서 혹은 성숙하면서 과거의 나와는 '다른' 사람(나)를 꿈꾸며 생활하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건 '다르다'란 말은 같지 아니한, 무언가 두드러진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 '다른' 사람을 꿈꾸던 여자(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데이트 폭력입니다.(사실 데이트 폭력이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같은 회사 상사이기도 한 남자친구로부터 폭행(성폭행 포함)을 당한 진아.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립니다. 쏟아지는 관심. 회사가, 주변 친구가, 언론이 그녀의 상황에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나 우호적이던 분위기는 직장 동료인 김미영이 사내게시판의 내용을 올리는 순간 반전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새 바보같은, 맞을 만한 여자가 되어버립니다. 그녀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도, 이겨낼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는 일이라곤 방에 틀어박혀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고 댓글을 확인하는 것뿐. 그러던 어느 날 진아는 “김진아는 거짓말쟁이다. 진공청소기 같은 년.”이라는 글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잊고자 했던, 벗어나고자 했던 안진이라는 지역과 12년 전 자살한 그녀의 친구(?) 유리에 대한 기억과 함께...

 

이제 진아는 안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짧은 대학시절의 추억과 그 시절을 함께 한 수진, 유리, 동희, 현규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꿈꾸었던 그들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처음엔 단순히 사회적 이슈인 데이트 폭력을 다룬 소설이라 생각했습니다. 소설의 첫 부분은 데이트 폭력에 대한 상대적인, 지극히 날선 입장들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피해자인 진아의 내면 심리가 무척 밀도있게 그려집니다. 읽다보면 어느 입장이나 이해가 가능합니다.(여기서 이해가 가능하다는 말 자체로 이해하시길... 그 입장을 수용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느 입장이든 결국 자신의 현실적, 실용적 가치에서 사고가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철저하게 피해자의 입장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가해자 혹은 동조자들의 입장을 다루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진아가 다시 안진에 내려오면서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유리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의 성격을 띄게 됩니다. '걸레 같은 년, 진공청소기'였던 유리의 죽음. 그 누구도 그닥 신경쓰지 않았던 그녀의 죽음의 의혹에 진아가 다가서면서 이야기는 훨씬 입체성을 보입니다. 거기에 어린 시절 진아의 단짝이었던 수진과 진아의 짝사랑이었던 현규( 이 둘은 부부가 됩니다.), 짧은 4개월의 연애를 했던 동희와의 과거가 펼쳐지고 그 누구의 친구도 아니었던 유리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쫓는 진아, 그리고 대학가 성추행의 당사자가 된 동희와 김미영, 이강현이 있는 현재가 펼쳐집니다. 즉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유리의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소설을 나아갑니다.

 

쉽게 접근했던 저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뒤통수를 친 소설입니다. 가볍게 접근했다가 크나큰 숙제를 안고 되돌아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 '이야기를 끝낼 사람은 바로 너다. 모든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 오래된 미래를 다시 펼쳐놓은 사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 때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마지막 장. 모든 것이 끝나버린 그 순간, 대답할 사람은 바로 너니까. 그렇다. 이제는 네 차례다.'(334쪽) 어쩌면 이 문장은 소설의 처음이자 끝일 수도 있습니다.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면 수많은 이야기가 생성됩니다. 그것의 주체는 바로 나일 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끝낼 사람도 나 또는 너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수많은 담론 중에서 제대로 끝맺음된 담론은 얼마나 될까요? 결국 소설은 말합니다. 애초에 이야기를 시작했던 '너'가 바로 지금 이야기를 끝낼 때라고...

 

진아와 수진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다른 사람(13쪽),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 절대 강간당하지 않는 사람'(226쪽)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들은 '밀착된 마음의 실체'를 소중히 여기고(166쪽, 수진) '옆에서 당장 손을 잡고 그 실체를 느낄 수 있는 온기'(188쪽, 진아)를 원했습니다. 어찌보면 진실한 사랑을 찾으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들이 원한 다른 사람은 결코 혼자의 노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가 '너'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도와달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미는 손을 맞잡을 때 마침내 이야기가 끝날 수 있음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 인생이 아니라, 서로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라'(310쪽)는 진아의 인식은 나를 넘어 너와 우리에게 향하는 말입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같은 사람이라는 역설적인 의미로 접근하는 것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 핵심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욕구를 참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욕구를 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데서 발생하는 문제다.'(259쪽) 동희의 성추행에 관한 이강현(남자 이름같지만 여자입니다.)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성편향적인 시각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꽤 많은 성폭력이 이런 사고의 바탕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사회는 누가 뭐래도 여전히 남성 중심의, 남성 우월적인 사고가 넘쳐나는 사회입니다. 여성은 약자이고 보호해야할 대상 혹은 군림해도 좋은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지 자문하고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데이트 폭력은 꽤 많은 경우 '너를 사랑'해서 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사랑이 아님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너'가 아닌 '나'가 묻고 답하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인 해결책이 아닐까요?

 

진아와 수진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이룰 수 없었기에 더욱 서글픈 꿈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진아와 수진이 이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은 강화길 작가가 말하는 '너'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너'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이 사회를 나눔과 연대, 평등의 공동체로 만들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인상이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나 책이나...

'빛의 호위'​의 첫인상은 그닥이었습니다. 짙은 회색빛의 표지. 그 위에 쓰인 흰색의 글씨. 사람의 시선을 끌만한 요소가 별로 없습니다. 표지 디자인만 본다면 그냥 지나치기에 쉬운...

그러나...

제게 있어서는 보석같은 책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쳤다면 책 내용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조해진의 문체가 정말 좋았습니다. 완전 취향저격!

아껴가며 읽었습니다.

 

표제작인 '빛의 호위'​를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목만 놓고 보면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합니다. 나와 권은의 이야기, 그리고 알마 마이어와 장 베른, 알마 마이어의 아들이 노먼 마이어의 이야기. 암흑에 빠져 있던 은에게 내가 건넨 필름 카메라 하나, 식료품점 지하 창고에서 숨어 살던 알마 마이어에게 전달되던, 한번도 연주되지 못했던 장의 악보들. 그것이 선의였든 무심히 건넨 것이든 어떤 누구에게는 '내일을 꿈꿀 수 있는 빛'(23쪽)이 되기도 합니다. 절망 속의 구원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며 아주 사소한, 하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마음 속 깊이 잠재돼 있다가 불현듯 빛처럼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태엽이 멈추고 눈이 그친 뒤에도 어떤 멜로디는 계속해서 그 세계에 남아 울려퍼지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간혹 다른 세계로 넘어와 사라진 기억에 숨을 불어넣기도 한다는 것 역시, 나는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31쪽)

 

'번역의 시작'은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삶에 대해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안젤라와 영수씨는 '나'의 곁에 없지만(떠났지만) 나는 그들의 삶과 꿈을 떠올리고 이어갑니다. '철컹철컹 철컹철컹' 울리는 기차소리는 환상의 소리이면서도 '내게만 들리는 사라진 사람들의 언어'(57쪽)입니다. 나는 살아있기에 그들의 언어를 번역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잊지 않는 한 그들의 언어는 여전히 내게 살아있습니다. '나'는 '배들의 회항을 기다리는 텅 빈 항구'(58쪽)에 있기에 다시 번역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이 여기 없지만 그들의 온전한 삶을 번역하는 '나'의 삶은 다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물과의 작별'과 '동쪽 伯의 숲'은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재일간첩단 사건과 동백림 사건. 독재정권 하에서 자행된 전형적인 인권유린의 사건이자 조작된 간첩단 사건입니다. 바로 그 조작된 사건 때문에 한 개인은 평생 한과 후회, 인내의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사물과의 작별'에서는 '나'의 고모와 '서군'이, '동쪽 伯의 숲'에서는 '한나'와 '안수 리'가 이에 해당됩니다. 억압의 시대에서 한 개인의 꿈과 사랑은 작은 파문조차 내지 못하고 스러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흔적을 붙잡고 많은 이들의 생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피지 못한 사랑이고 꿈이기에 더 애틋하고 아련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랑과 꿈을 고이 접을 수는 없습니다. '개인은 세계에 앞서고 세계는 우리의 상상을 억압할 수 없'(111쪽)으니까요. 물론 이 진술은 상대적일 수 있지만 적오도 고모와 한나에게는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억압된 세계 속에서 주체적 개인 혹은 그의 사랑과 꿈이 그 억압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산책자의 행복' 역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친한 친구의 죽음 이후로 '살아 있고, 살아있다는 감각에 집중'(142쪽)하는 메이린과 대학 강사에서 개인파산을 겪고 편의점에서 일하는 홍미영. 미영에게는 현재의 삶이 그냥 버텨나가는, 부끄러움의 연속일수도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살아있고 살고 싶어합니다. 주류에서 밀려나 하층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삶의 의미나 존재의 이유는 거추장스러운 사치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인에 미치듯이 쫓긴 후 미치듯이 삶의 갈망을 토해냅니다. 메이린 역시 낯선 땅에서 산책을 하며 주변의 풍경을 보고 자신과 유사한 타인을 만나며 라오슈(홍미영)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사실 편지의 형식이긴 하지만 자신의 일기와도 같습니다. 뻔한 일상에 정착하지 못한 듯한 그녀의 삶에서도 삶은 여전히 또아리를 품고 자리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감각, 그것이 그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이번 소설집의 특징적 양상 중의 하나는 꽤 많은 인물들이 떠도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산책자의 행복'에서의 메이린, '잘가, 언니'의 언니, '문주'의 문주(나나) 등이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소설에서는 이들의 흔적찾기가 나타납니다. 흔적보다는 정체성 찾기가 맞을 지 모르겠습니다. 나이 차가 상당히 나지만 언니와 무척 닮은 '나'가 미국에서 죽기 직전 언니의 삶의 추적하거나 문주인지 나나인지 정체성이 불분명한 인물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또다른 나를 찾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이 세계 안에서의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고 개인이 세계에 앞선다는 것을 입증하는 단초이기 때문입니다. '무너지고 있는 수많은 집들'(223쪽) 사이에서 노란 등만이 유일하게 빛을 내듯 수많은 개인 속에서 오지 그대로의 '나'는 '나'일 뿐입니다. 인생이 그러하듯 여전히 '나'는 '나'로 서기위해 오늘도 살아갑니다.

 

전체적으로 소설이 어둡습니다. 그 바탕에는 상실이 있습니다. 그 상실의 폭압적 시대가 원인일 수도 있으며 가혹한 삶의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그 속에서 누군가 삶의 현장에서 떠나갑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반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에게 전해지고 그는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삶의 버팀목이 필요합니다. 어떤 이는 찰라의 빛이 그에 해당하고 어떤 이는 어떤 이는 떠나간 이의 흔적을 찾으며 동일성을 확인하고 또 어떤 이는 스스로의 뿌리를 찾으려 합니다. 우울함이 가득한 소설의 전반적 분위기 속에서도 결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사실 문장(문체)이었습니다. 특히 인물의 상황이나 감정을 표현할 때 나타나는 관념 혹은 추상의 구체화가 그것입니다. 잘못 쓰면 현학적 표현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때 그 상황을 적확하게 나타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그렇기에 글을 읽는 속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내용 자체가 밝은 것이 아니기에 천천히 자신의 호흡에 따라 읽어나가면 됩니다. 또한 소설의 내용 역시 많은 암시와 여운을 주기에 빠르게 읽는다면 소설이 주는 묘미를 만끽할 수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세계(시대)와 개인,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등 살아가면서 맞닥뜨려야 할 많은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작품을 읽으면 작품이 주는 여운에 잠시 호흡을 쉬어야 하는 소설입니다.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올해 읽은 소설 중 가장 큰 울림을 준 소설입니다. 혹 이 글을 보시는 분이라면 조금은 긴 호흡으로 '빛의 호위'를 만나시길 조심스럽게 권합니다.

선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행동하는 지성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한, 제 아들도 이렇게 멋진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습니다.

 

저자인 김승섭 씨는 사회역학자입니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입니다.(6쪽)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부조리를 제시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만연할 대로 만연한 사회적 차별과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유, 무형의 폭력, 그리고 최근 꽤 많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소수자의 인권 등을 말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통계자료를 제시하여 글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때문에 글을 읽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책 속에 제시된 충격적인 통계자료 수치에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을 뿐...

 

책은 전체 4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장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의 숨겨진 힘을 고발합니다. 차별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보다 그것은 인지하면서도 보고하지(말하지) 않는 것의 심각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차별을 경험하고 그것을 인지하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여러 정신병적 증상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유무형의) 상처는 결국 몸에 기억되어 지속적인 상처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질병을 발생시키는 '원인의 원인'인 사회적 요인을 탐구'(60쪽)하는 사회역학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몸에 기억된 상처는 당사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뿐아니라 그와 연관된 수많은 사람에게 또다른 상처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원인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소하는 사회역학이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2장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에서는 아파도 표현하지 못하고, 그래서 병원에도 가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아픔을 말하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이와 관련된 이들의 사망 통계는 충격을 안겨줍니다. 1997년 이후 일상화된 정리해고가 해고자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해고가 일상화되었기에 산업현장의 노동자는 아파도 말을 하지 못하고, 그 아픔을 숨긴 채 일을 해야만 합니다. 비단 산업현장만이 아닙니다. 그 어떤 직업보다 존경받고 보호되어야 할 소방공무원들도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까봐 자신의 질병을 말하지 못하고 심지어 업무상 재해를 입었음에도 자비를 들여 치료하고 공상처리를 하지 않는 실태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그들은 왜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아파도 그 아픔을 받아들일 수 없느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IBM의 직업병 소송에 관여했던 클랩 교수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법정에서 노동자들은 보통 이길 수 없습니다.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변호사는 어떤 학자는 그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108쪽)

 

3장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에서는 아픔과 상처, 차별을 끊기 위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가장 큰 아픔으로 기억되는 세월호 참사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접하면서 저자는 수많은 참사의 기록이 없음에 놀랍니다. 삼풍ㅍ백화점, 씨랜드, 대구지하철 참사 등 사회적으로 많은 충격을 주고 논란을 안겨준 그 많은 참사의 기록이 없었기에 적절한 대책이 있을 리 없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166쪽) 그리고 저자는 '세월의 참사가 참사의 연쇄고리를 끊었던 사건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167쪽) 세월호 참사 말고도 동성애자, 에이즈환자, 트랜스젠더 등에 가해지는 차별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한국에서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응답하는 이는 77.6%, 에이즈 환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이는 88.1%입니다. 이 통계수치에서 자유롭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요? 이런 통계수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의 대답을 제시합니다.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업삳면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216쪽)고...

 

4장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은 이미 제목에서 글의 내용과 우리가 해야할 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관계망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었나가 수많은 차별과 상처를 막고 치료할 수 있는 주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자명한 사실은 개인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개의 질병은 개인적 연유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질병이 사회적 원인에서 출발한다면 그 해결책 역시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듯 인간은 연결될수록 건강하고 강한 존재입니다. 사회적 파장이 일어난다면 그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원인을 파악하고 다같이 그 원인을 제거하고 유사 파장이 나타나지 않을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현상을 덮고 눈가리기에만 급급한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차별과 상처, 아픔만이 가득할 것입니다.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닙니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은 무겁지만 접근까지 어려운 책도 아닙니다. 책 안에서 언급되는 사안들은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더불어' 사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고 가장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저자는 마지막에서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한가 묻습니다. 대답은 뻔합니다. 다만 그 안녕하지 못함에 대해서 깊이 인식하고 안녕을 위해 사회적 중지를 모으는 작업이 되고 있는가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에 대한 진지한 물음에 답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의로운 건강을 위한 질병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지금이라도 우리 자신의 모습과 앞으로의 모습에 대해 자성하고 그 방향을 모색할 시점입니다. 그 시작에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