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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The Picture of Dorian Gray>

<행복한 왕자>라는 익숙한 이야기를 들려줬던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유일한 장편 소설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어렴풋이 소설 내용에 대한 플롯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은 처음이다.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는 도리언 그레이에 대한 이야기는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나서야 자신이 굉장히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했고 초상화가 대신 늙고 추해지길 간절히 바랬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 소원은 정말로 현실이 되었는데, 이는 도리언 그레이가 사랑했던 첫 번째 여자인 시빌 베인의 죽음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된 사실이다. 그 후 도리언 그레이는 아름다운 얼굴로 추한 행동들을 일삼게 되고, 신도 그를 돕는지 모든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도리언 그레이는 늙고 추한 모습으로 부검이 발견되고 초상화는 그토록 아름답던 도리언 그레이의 젊음을 발산하고 있는 채로 남겨져 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젊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그림이 나 대신 점점 나이를 먹는 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난 무슨 짓이든 할 거 예요! 그래요, 그럴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무엇이든 가져다 바치 겠어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바칠 거예요!” (54p.)

이 소설은 여러 번 연극과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본인이 확인한 바로는 영화 2편을 찾아낸 것이 고작이었다. 우선 하나는 책의 띠에서도 선전 문구로 쓰였듯이, 나니아 연대기의 캐스피언 왕자가 도리언 그레이 역할을 맡아 2009년에 제작되었다는 영화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도리언 그레이는 시종일관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James McAvoy)’였다.
특히 영화 ‘비커밍 제인’과 ‘어톤먼트’에서 보여준 그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우울한 듯한 이미지가 딱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도리언 그레이는 제임스 맥어보이였다. 또 헨리 워튼경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물도 ‘주드 로’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머지 인물은 적절한 배우가 떠오르지 않았다…

   소설에 나오는 주된 인물은 4명으로 추릴 수 있다. 우선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 그의 자아를 발견하게 해 주고 끔찍하게 삶을 마감한 화가인 바질 홀워드, 도리언 그레이의 내면에서 악마성을 이끌어내고 부추기는 역할을 맡았던 헨리 워튼경, 마지막으로 나오는 분량은 적었지만 도리언 그레이의 삶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친 여배우 시빌 베인이다. 거기에 굳이 한 명만 더 추가하자면 시빌 베인의 남동생인 제임스 베인을 더하고 싶다.

소설 속에서 인상적인 문구들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1) 난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에게도 그 이름을 말하지 않지. 이름을 말해버리면 그 사람의 일부를 내주는 것 같거든. (14p.)
2) 언제나 분노로 재단해 폭풍우 속에서 걸쳐 입었을 것 같은 복장으로 다녔다. (90p.)
3) 그는 이따금 악이란 그저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실현시켜주는 하나의 방식 정도로 간주하곤 했다. (268p.)
4) 감각으로 영혼을, 영혼으로 감각을 치유할 것 (335p.)
5) 긴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은 기껏해야 한 번뿐이지만, 이 경험을 가능한 자주 재현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사는 비결이란다. (359p.)
6) 인간이 문명에 도달하는 방법은 단 두 가지라네. 하나는 교양을 쌓는 것이고, 또 하나는 타락하는 것이지. (383p.)

이 외에도 정말 기억에 남는 문구들이 많다. 매우 아름답고 유려한 문체와 멋진 상상력이 겸비된 묘사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꿈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역시 클래식은 이런 배경 묘사에 중점을 많이 두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현대 소설 속에서 표현되는 묘사 방식과는 다른 점이 더 즐거웠다. 왠지 현대 소설에 클래식 식의 묘사를 해 놓는다면 요즘 말로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도리언 그레이를 통해서 우리는 그 시절 취미에 대해서 엿 보게 될 수도 있는데, 도리언 그레이는 음악(각종 희한한 악기들), 예술 작품(회화, 태피스트리 등), 보석, 교회의 예식과 관련된 것 등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작가는 이들에 대하여 세세한 부연 설명을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가지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도리언 그레이가 끔찍한 삶을 살게 된 것에 대하여 탓하고 있는 것은 3가지가 있다. 하나는 헨리 워튼 경이 그에게 선물한 책, 그리고 영원한 젊음을 원했던 그 기도, 마지막으로 바로 그가 간절히 기도했던 미모와 젊음이다.

책은 암흑과 혼란 속에 있는 19세기 말, 즉 세기말 분위기를 담뿍 담고 있었다. 이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글귀를 책 속에서 찾아보자면 다음을 꼽을 수 있겠다.

   “19세기에 도저히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는 요소가 딱 두 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죽음과 천박함이라네.” (387p.)

세기말이 그러하듯 20세기 말에도 역시 혼란과 공포, 어두움 들이 혼재해 있었다. 이런 세기말 분위기가 2010년이 된 지금도 약간 남아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현 시대를 살아가면서 19세기 말의 소설을 읽음으로 인해 동시대를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잠시라도 가졌던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두서 없는 서평을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