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 by 오쿠다 히데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깔깔대며 읽었던 책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글쓰기란 참으로 맛있다.

 

5월 들어 해가 길어져서 서쪽 하늘은 아직 저녁 노을에 물들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다. (p.15)

 

학교 따위는 억지로 다니지 않아도 되는 곳, 의무교육은 국가의 무리한 강요이며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 하루씩 걸러서 다녀도 되는 학교를 왜 날마다 가느라 사서 고생이냐고 하는 아버지의 말(p.24-25). 이 말을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사람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러면 안될 텐데 하면서 불편해 하면서도 어디선가 통쾌하게 하하하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책장을 넘겼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무정부주의자다. 세상의 법 위에 잠자고 있는 자. 정말 자유로운 자. 실 생활에서 보면 한심하고 저런 사람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멀리 할 테지만, 소설 속의 인물이기에 왠지 친근해 보이고 귀엽기까지 느껴졌던 캐릭터이다. 그가 내 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옳게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아버지는 항상 자신이 추구하던 자신만의 낙원으로 가기 위해 소설 후편인 (2)권에서는 오키나와로 떠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일부러 (2)권을 읽지 않았다. 왠지 유쾌한 나의 기분을 정치적인 심각한 그런 생각들에게 자리를 내 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물론 읽으면 단지 소설일 수도 있지만 아직 난 (2)권을 펼쳐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항상 이 아버지는 유쾌하고 단순하게 세상을 생각하고 무적인 상태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직 크기 때문이다.

 

“개인 단위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얏!” (p.328)

 

개인 단위로 생각한다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의무 교육은 정말 쓸모 없는 것일까. 지금 나는 의무교육을 다 마친 사람이지만, 그건 순전히 나의 의지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그리고 겪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받았던 그 교육들, 그리고 좀 더 원하는 욕구에 의해 더 받았던 교육들. 하지만 역으로 내가 받았던 교육들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니 참 아이러니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아니 그 시절에는 내가 원하지 않았다는 생각조차 자라나지 않았던 때였다) 교육들로 내가 지금 먹고 사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개인 단위로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이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어딘가 꼭 한 군데는 연결 고리가 있다. 없을 수가 없다. 세상엔 천애 고아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남들과의 연결 고리를 끊는다고 해도 그 많은 수 많은 연결고리들이 다 끊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개인 단위의 생각이란 무었일까. 오쿠다 히데오는 이걸 뭐라고 생각했을까. 이기심? 이타심이 아닌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말하는 것일까? 국가와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개인 단위의 생각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즐거운 소설 속에는 작가의 상념과 이념이 너무나 많이 뭍혀져 있어서 여기를 맛봐도 작가의 생각, 저기를 맛봐도 작가의 냄새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그런 자신의 냄새를 아주 스파이시하게 표현 할 줄 알았던 사람이다. 물론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의 힘도 매우 크다. 정말 재밌다고 느낄 수 있도록 잘 번역해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오쿠다 히데오의 책으로는 공중 그네, 인더풀 그리고 이 책 정도이다. 하지만 한결같은 그의 유머 코드는 나에게 적절한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앞으로도 주목할 작가의 리스트에 기꺼이 올려 줄 수 있는 작가의 하나로 오늘 오쿠다 히데오를 품안에 안았다.

 

1Q84(2) by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 처음엔 무라카미 류와 함께 비교해서 읽는 재미였지만, 지금은 그 만의 세상에 많이 발을 담근 것 같다. 일본에서 유학시절 전공 수업때 한 과목이 한 학기 내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수업을 했었다. 그 때 수업시간마다 한 작품씩 하루키의 작품을 배웠는데, 그 때마다 무지 많은 양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어서 열심히 읽어갔던 기억이 난다.

이젠 하루키를 분석하려는 입장에서 잠시 내려와서 단지 한 명의 독자로서 하루키의 작품을 대했다. 1Q84가 일본에서 출시 되자마자 난 1,2권을 둘 다 원서로 재빨리 입수했다. 그리고 열심히 읽었다. 지금은 (3)권이 벌써 출시 된 시점이고, 지금도 역시 원서로 입수하여 회사에서 짬짬이 읽고 있다.

 

(2)권이 끝난 시점에서 이야기의 끝이 더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랍기도 하고(방대한 분량이기에), 조금은 실망하기도 하였다. 조금 깔끔한 마무리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뭔가 책을 읽으면서 계속 했던 이야기 또 하고, 했던 문체 또 나오고 뭐 그런 느낌을 받아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하루키이기에 믿기에 그를, 열심히 읽었고, 정말로 내용은 재밌었다.

 

(1)권에 대한 서평은 그냥 넘어가겠다. 대신 (2)권으로 한다. 책의 형식은 언제부터인가 자리 잡힌 하루키만의 두 주인공을 왔다 갔다 하는 형식을 택했다. (3)권에서는 한 명이 더 추가가 되어 세 명을 왔다 갔다 한다. 그게 누구냐고? 바로 우시카와이다. (1),(2)권에서는 그저 오덕후 같던 기름기 절절 흐를 것만 같은 뚱뚱한 인물에 어두운 인물의 이미지였는데 (3)권에서는 드디어 그 오덕후 기질이 안경 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게 전개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반면 언제든 자살을 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아오마메는 조금 더 살아보기로 작정하는 대목에서는 ‘으윽, 정말이냐’라는 한숨이 왠지 모르게 나왔다. 그냥 쿨하게 권총 자살하는게 어떨는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루키가 책에도 썼듯이 책 속에 ‘권총’이 등장하면 반드시 그 권총은 총구에서 총알을 뱉어내기 마련이라는 얘기인데, 그러면 빨리 그 권총의 의무를 이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아오마메를 죽이지 않아도 어서 권총이 불을 뿜는 장면을 더 빨리 집어넣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책 속의 또 다른 책 내용 남들이 액자 형식이라고 하는 이 형태로, 하루키는 또 다른 동화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리틀 피플이 지배하는 두 개의 달이 떠있는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소설 초반에서는 계속 공기 번데기 소설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너무너무 궁금했는데, 나중에 그 소설 내용을 공개 해 주었을 때는 정말 동화를 읽는 듯이 재밌었다.

하루키의 소설 말고 에세이 들을 읽을 때의 느낌과는 정말 다르다. 에세이에서는 에라, 되는 대로 되라 라는 식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소설에서는 정말 천직이라 그런지 진지하다. 그리고 정말 하루키는 공상가이구나, 정말 귀여운 꿈을 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영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같이 거울 뒤편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나오듯이 그런 꿈을.

 

하루키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끝낼 것인지 전혀 상상이 안가지만(실제론 전혀 상상하고 싶지 조차 않다. 왜냐면 그의 상상력을 그냥 따라가고 싶기 때문에. 굳이 초월하고 싶지 않다. 하루키 아저씨의 세상을), 그 마무리는 나를 기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어떤 결말이더라도.

 

하루키의 1Q84가 매우 큰 판매율을 보이고 있다는 뉴스가 일본 현지에서 발매 되자마자 떠들석했었고, 지금 3권이 나온 시점에서도 또 다시 예상 뉴스로 떠들석 하다. 누가 3권을 기대하면서 읽던 아니면 2권에서 지쳐서 더 이상 읽으려 하지 않던(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읽는데 2권에서 지쳐버렸다. 더 이상 연장을 하지 않았다) 하루키는 계속 글을 써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1Q84를 읽은 사람들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연달아 읽는 현상도 조금은 퍼져 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 자신 조차 최근에 <1984>를 읽었기 때문에.

뭔가 큰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새로 내 놓는 다는 것이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 나름 놀랍고 재밌었다. 얼마전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로 재미좀 봤던 댄 브라운이 신작을 냈을 때 보다 더욱 떠들석 하게 하루키는 한국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영어판으로 1Q84가 발매되었던 것으로 안다. 하루키가 끼치는 영향은 저 멀리 프랑스에도, 미국에도, 영국에도 그리고 중국까지 다양한 것이다. 이미 필리핀의 소년도 읽었을 수도 있고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사람의 손에도 이 책이 들려있을 지도 모른다.

 

하나의 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너도 서로 리틀 피플을 알고 공기 번데기를 알고 있다는 사실. 내가 1Q84(3)권을 완독하고 나면 어떤 결론을 내릴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 때에는 (4)권에 대해서도 얘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햄릿 by 셰익스피어

 

이 책의 작품 해설을 읽기 전 까진 <햄릿>에 그렇게 많은 논란과 해석의 여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하나로, <로미오와 줄리엣>만큼 대단히 유명한 작품이라는 것 이외엔 전혀 기본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난 작품 해설이 책 맨 뒤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작품 본문부터 읽었고, 작품을 다 읽고 난 후에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 해설을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편안한 자세는 결코 편안하지 않았고, 이윽고 불편한 진실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 이유인 즉슨, 작품 해설의 내용을 빌려오자면 요즘은 작가의 원고가 그대로 책이 되는 것이 당연한 시대이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있어서는 조금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배우로 출발하였으나, 나중에는 자기가 소속된 극단의 주주이자 전속작가가 된다. 그래서 그가 쓴 극들은 극단의 소유물이었으며, 극단은 관객 확보라는 측면에서 작품을 출판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햄릿>처럼 인기가 있는 극은 다른 극단과 출판업자들이 노리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서 연극 대본이 빠져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 예시를 든 한 가지 방법이 매우 놀라웠는데(물론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지만), 햄릿 공연의 조연급 배우가 연극 대사를 모조리 외워 자신의 기억력에 의존해 햄릿 극본을 재구성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하고, 누구의 대사였는지도 혼란이 오게 된 것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책은 최종철님이 <아든>판을 주로 삼았다고 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판이 있는데, 그 만큼 햄릿은 셰익스피어가 써낸 정확한 작품의 상태로 발간된 적이 없다는 것이 된다.

 

각설하고, 책을 읽으면서 (부끄럽지만)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저 영국이겠거니 생각했던 왕자는 바로 덴마크 왕자였고, 햄릿의 아버지 즉, 억울하게 죽은 선왕의 이름도 바로 햄릿이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계속 선왕, 돌아가신 아버님 등등으로 서술되지만, 대사에 종종 등장한다. 선왕이신 햄릿 왕이라고.

 

그리고 사람들이 왜 그리 셰익스피어의 글 재주를 극찬하고, 영국 여왕이 영국 전체와도 셰익스피어는 바꿀 수 없다고 했는지 약간 간을 볼 수 있었던 글귀들을 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아침이 붉은 외투를 걸치고

저 높은 동쪽 언덕 이슬 밟고 넘어와

(1.    1. 171—172)

 

지갑의 두께만큼 비싼 옷을 사 입되

요란하지 않게, 고급으로 야하지 않게.

왜냐면 복장을 보고 사람을 아는 수가 많으니까.

(1.    3. 70-72)

 

피가 끓을 때면 영혼이 얼마나 아낌없이

혀에게 맹세를 빌려주는지.

(1.    3. 117-118)

 

준 사람이 불친절할 땐, 값진 선물도

고귀한 마음엔 초라하게 보이니까요.

(3. 1. 101-102)

 

죄의식은 서투른 걱정에 가득 차서,

엎지를까 겁내다가 스스로 엎지른다.

(4. 5. 19-20)

 

왜냐하면 치밀한 계획이 실패할 땐

무모함이 가끔 큰 도움이 된다 함을 명심해야 하니까.

(5. 2. 8-9)

 

우울할 때 햄릿을 읽어서 그런지 기분이 더 우울하다. 한 없이 우울해 지는 이유는 햄릿도 엄마도 아빠도 삼촌도 동료도 오필리아도 다 죽어서일까. 오필리아의 죽음에는 아직도 많은 의문이 있지만 적어도 표지에 있는 그림속의 오필리아는 매우 아름답다. 꽃과 함께 흐르는 오필리아의 육신이 영원히 물 속에 가라 앉지 않을 듯한 부유함을 보여주는데, 내 영혼은 어딜 떠돌고 있는걸까.

센티멘털한 날에는 햄릿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