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뮤직 러버스 온리 by 야마다 에이미

 

영어로 쓰자면 soul music lovers only. 하지만 이 소설은 명백히 이렇게 영어로 적지 않는 편이 더 야마다 에이미 소설스럽다.

남편이 흑인이고, 미국의 문화를 자연스레 접했던 야마다 에이미.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속의 단편들에는 전부다 흑인들이 등장한다. 검고 탄력 있는 피부. 하얀 눈동자가 더욱 부각되어 보이는 갈색 피부의 얼굴. 그리고 긴 팔과 다리, 탄력 있는 근육과 랩이 어울리는 그 입술 등. 야마다 에이미는 그녀가 사랑했던 흑인들을 떠올리며 소설을 써 내려갔다고 한다.

 

한 남자를 사랑하면 60매의 단편소설을 쓸 수 있다. 나는 최근에야 이런 법칙을 알았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사랑을 하는 건지, 사랑을 하기 때문에 소설을 쓰게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연애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한다. 슬프고 기쁘고, 또한 달콤하다. (p.169 ‘후기’ 중에서)

 

허튼 소리가 아니다. 나 자신도 사랑에 빠져있을 때에는 여러 생각들이 흘러 넘쳤으며, 그런 생각들은 내가 읽고 있는 책들 여백과 귀퉁이 구석구석마다 적혀져 있으니까. 총 8개의 단편들은 우리를 흑인의 매력과 섹시함에 빠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만큼 매우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다.

실제로 나는 지하철에서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침에 서서 책을 읽고 있을때 이 책은 조금 주변이 신경쓰였다. 거의 매 페이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성적인 묘사가 많았다. 물론 야마다 에이미는 내가 대학 시절부터 원서로 읽어왔던 작가여서 그런 노골적인 표현에는 익숙했지만, 이건 한글판 아닌가! 그래서 주변의 눈치를 조금 신경쓰게 되었는데, 그래도 뭐 평생 다시 볼 기회가 거의 희박한 사람들과 전철을 함께 탔을 뿐이기 때문에 뭐 어떠한가 라는 마음으로 그냥 편하게 끝까지 다 읽었던 것 같다.

 

참 재미있었던게, 이 소설을 읽으려고 손에 잡았을 때가 4월 30일 밤이었는데, 첫 단편부터 우연스러운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21페이지에 ‘발 푸르기스의 밤’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그 단어에 각주가 이렇게 달려 있었다.

 

4월 30일 밤을 이름. 독일에는 세상의 온갖 마녀들이 이날 밤 독일의 브로켄 산에 모여 환락의 술 잔치를 벌인다는 전설이 있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언급해 더욱 유명해 졌다. (p.21)

 

그렇다. 내가 책을 읽고 있던 그 시점이 바로 4월 30일 밤이었다는 점.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신기한 체험(?)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발 푸르기스의 밤이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되었다. 내년 발 푸르기스의 밤에는 잊지 않고 술 잔치를 벌이고 있을까?

 

 

야마다 에이미는 사랑에 대한 표현도 매우 능숙했다. 마치 연애 9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해, 윌리.”

나는 너무 벅찬 행복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 말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휘저으며, 편리한 대로 배신할 수 있는 것인지를. (p.41)

 

“남자의 몸은 처음 반년이면 돼. 그 다음에는 마음이 필요하거든.” (p.47)

 

 

또한 남자가 되는 것도, 그리고 10대 소년이 되는 것에도 매우 능숙했다.

 

그들에게 술과 사랑과 여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p.78)

 

그는 여자의 이어링이 남자의 마음에 어떤 효력을 발휘하는지 전혀 모른다. (p.79)

 

아직 사랑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틴 에이저의 이런 순수한 마음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장난스러운 노골적이고 뇌쇄적인 표현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했던 틴 에이저의 생각에 대한 그녀의 언급. 참으로 신선했다.

 

그리고 마지막 단편.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읽는 내내 나를 너무나 불편하게 했던 내용을 가진 단편이었다. 내가 너무나 싫어했던 사랑의 방식이 거기에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계속 싫다는 내용의 낙서를 여기저기 해대고, 심지어는 목차에는 X표시까지 했을 정도다. 어서 빨리 휘릭휘릭 읽어버렸던 마지막 단편.

 

소설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분이 좋다가, 다시 기분이 나빠지거나 불쾌해 지는 등. 한 권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사랑을 한 기분이었다. 한 남자와 만나 정신없이 사랑을 하고 싸우고, 토라지고, 환희를 경험하는 것과 같은 사랑.

야마다 에이미는 그런 작가이다. 사랑을 가르쳐주는 언니 같은 작가.

 

라쇼몽 by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정말 내가 아끼는 작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그와의 인연은 <라쇼몽>으로 시작되었다. 대학 시절 내가 발표를 맡았던 책이기도 했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정보를 모았고 영화 <라쇼몽>까지 챙겨봤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 수 있듯이 영화 <라쇼몽>은 소설 라쇼몽의 배경 플러스 소설 <덤불 속>의 내용을 합쳐놓은 작품이다. 그 후로 나는 아쿠타가와의 작품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거의 대부분의 소설을 탐독했다. 지금도 좋아하는 작품은 <갓파>이다. 갓파는 정말 나의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을 정도의 지경에 오른 소설이 되었는데, 이제는 조금 갓파를 쉬게 해 줄 타이밍이다.

 

이 라쇼몽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에는 아쿠타가와의 단편 8개가 들어있다. 마치 이야기 보다리를 풀어주는 곰방대 문 할아버지 같은 책이다. 그래서 너무 좋아하는 책이고 좋아하는 작가이다.

인간의 처절함과 이기심(에고이즘)을 최고 지경까지 이끌어 내 보여주는 라쇼몽으로 시작하여 정말 신기한 스님의 코 이야기를 거쳐, 영화 <라쇼몽>의 주된 내용이 된 덤불 속의 부부와 도적에 대한 사연들을 구구절절이 듣고 나면, 딸을 너무나 사랑했던 미치광이 같은 그림쟁이의 비극을 함께 관람하고, 투도와 점귀부를 지나 갓파의 세계로 드디어 입성하게 된다. 그리고 최후의 난쟁이 어릿광대의 말을 끝으로 이 단편 모음집이 대막을 내리게 된다. 그 어느것 하나 소홀이 읽어나갈 수 없고 모든 작품의 임팩트가 아주 강한 이 단편들 이외에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은 정말 읽어야 하는 작품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책 맨 처음에 나오는 작품 세계에 대한 설명은 꼭 필수로 읽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절대로 넘어가지 말고, 작가의 얼굴 사진이라고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부분이다. 내가 이 작가를 전공으로 하고 있어서 더욱 애착과 애증이 심하겠지만,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그리고 알아주었으면, 그의 천재성에 눈을 떠 주었으면 하는 그런 소망이 담져겨 있다.

 

매우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던 1부 시절부터, 조금 심오한 세상으로 끌어들이는 2부, 그리고 힘 없이 쓰러지려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듯 적나라한 3부까지, 뭔가 이 것만으로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너무 나를 만족시켜 주었던 한 권의 단편집이다. 중간중간에 삽입 되어 있는 그림까지도 훌륭하다고 할 만하다. 책의 내용을 보고 있으면 그 장면들이 마구 떠오른다. 이런 장면에서는 이렇구나, 왠지 배경은 이런 색깔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하듯이 말이다.

기괴하고 어둡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천재 작가. 사소설을 쓰는 것은 소설이 아니라는 논쟁까지 벌였지만, 그도 결국은 자신의 푸념을 소설속에 털어놓지 않았는가. 그래도 나는 용서 할 수 있다. 타니자키 준이치로가 인정했듯이. 그가 그린 도쿄의 거리 거리들, 산 속 풍경들, 갓파가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튀어나와 그 미끈 미끈한 피부를 뽐내며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 담배를 피우며 나와 대화를 나누어 줄 듯한 밤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책이지만, 왠지 나의 모든 치부를 다 드러내어 버릴 듯한 소설이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더 자세한 이야기를 쓸 수 없을 것 같다. 아쿠타가와는 나에겐 트라우마같은 존재로 남아버렸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아쿠타가와를 마주하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흠뻑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이 비참한 서평을 여기서 마치려 한다. 언젠가 이 서평을 다 뭉개버리고 다시 쓰고 싶은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내 컴퓨터의 전원을 누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