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말 하나 문장 하나는 독자로 하여금 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체취를 말해주기도 하고, 가슴아프고 힘든 한때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잔잔한 수면에 퍼져나가는 물결처럼 위로가 되 주기도 한다. 이렇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과 그 소설을 낳은 작가. 그들은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는 것일까.

 

 항상 소설을 읽는 독자측에 서서 이 소설이 재밌네, 이 소설은 여기가 별로였네 하면서 평가를 내리기만 했다. 창작이라는 활동이 매우 큰 압박과 스트레스 속에서도 자신의 필력을 쥐어짜내서 세상의 빛을 받는 힘겨운 일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짧은 서평하나 쓰기도 골치 아픈데 단편, 장편 소설같은 책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탄생하는 것일까.

 이 '마법의 소설쓰기'에서는 그런 나의 의문들을 조금은 구체적으로 현실화 시켜주는 계기가 된 책이다. 독서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연스레 독서 후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혹시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 보았다. 지금 말고 나중에 내가 여유로워지면...하면서 내 맘속에 그려놓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펼쳐 볼 생각은 접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말솜씨가 훌륭하고 싹싹한 보험회사 판매원처럼 구체적인 수치로 골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책이 '마법의 소설쓰기'였다. 판매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루에 단 몇 백원 아니면 몇 천원 투자한다고 생각하세요, 큰 부담 되는거 아니잖아요 라면서 마음을 잠시 흔들리게 한다. 그렇듯이 이 한만수라는 작가도 우리에게 '하루 1시간 원고지 3매만 쓰면 된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어떻게 글을 쓰는데에 투자를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준다.

 일반적인 글쓰기에 대한 서적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나에게 이런 글쓰기에 대한 첫 지침서로 이 책은 매우 좋았던 것 같다.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으면서 어렵지 않게 소설 쓰기에 도전할 수 있게 해주는 용기를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오늘 당장 시작해 볼까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내가 끄적였던 문장들, 내가 눈여겨 보았던 글귀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게 해 주는 계기를 준 것 만으로도 나에겐 큰 첫 걸음이었다.

 또한 작가가 직접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구체적으로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 좋았던 점으로 남는다. 또한 우리 한국 문학에서 예시를 보여줌으로써 한국 문학에 대한 나의 생각을 좀 더 호감으로 바꾸게 되는 기회를 주었다. 아름다운 묘사와 글귀를 통해 나도 이렇게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켜 준 것이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물도 창조할 수 없다. 글을 쓴다는 것. 남의 좋은 글귀를 보고 감탄하는 것. 모방에서 시작된 창조활동, 나도 할 수 있다. 하고 싶으니까 이 책을 선택했다. 나의 생각과 감성을 남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소설. 또 다른 자아를 찾듯이 그 길로 천천히 진입하기로 마음 먹었다. 

 

 

 단테의 <신곡> 등장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베아트리스와 버질'. 20세기 셔츠의 등허리 부분을 여행하고 있는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고함원숭이 버질의 대화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서양배'에 대한 묘사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가 상처를 입었고 지쳐있었으며 어딘가로 계속 도망치고 있는 존재였다.

 

<작가로서의 헨리>

 홀로코스트에 대한 작품들은 수개월에 한 번씩 다시 나올 정도로 차고 넘쳐 흐른다. 그 중에서도 홀로코스트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헨리는 자신이 직접 예술작품으로서 승화시켜 홀로코스트를 이야기 하려 한다. 흉측한 과거사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만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타내기 위해 그는 플립북이란 형태를 띤 새로운 결과물을 내려 하고, 이 결과물을 검토해 줄 점심식사 자리에 나와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판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점심식사 자리에서 헨리가 받은 갖은 (그를 괴롭혔던) 질문들과 대답들은 나중에 헨리가 박제사를 만나 겪게되는 대치 상황과 결부된다. 헨리는 박제사의 행동과 그의 작품에 대한 내용과 태도에서 자신이 편집자들에게 받았던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무엇'을 쓴 것인가. '무엇에 대해' 쓴 것인가. 라는 질문은 헨리가 받은 질문이자 헨리 자신이 박제사에게 던지게 되는 물음이 되기도 한다.

 

<박제사와의 연관성>

 작품에서 박제사는 헨리가 낳은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한다. 또한 베아트리스와 버질도 헨리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시점에서 작품을 분석해 보았다.

 편집자들과의 식사 후 헨리는 발길이 닿는 대로 정처 없이 걸어가는데, 이 장면은 베아트리스가 고문당한 후에 내팽개쳐진 모습과 오버랩 된다. 결국 베아트리스는 헨리 자신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처 없이 걸어간 곳은 공원이었다. 고향인 캐나다에서 공원은 피난처였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서로를 처음 발견하게 된 곳도 피난처였다. 또한 헨리가 찾아간 공원에 한 가운데에 있는 둥그런 연못은 피난처 속의 피난처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시골 여성들이 아기를 안고 뛰어들어 자살을 했던 연못과의 연계성도 보이는 장면이다.

 책을 읽어나가다가 베아트리스가 버질에게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는 장면에서는 베아트리스가 박제사이고 버질이 헨리라고 생각했었다. 고문을 받았던 아픔이 있는 유대인인 박제사가 자신의 경험을 희곡을 통해서 고백을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결국 박제사는 고문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러면 고문받는 베아트리스와 버질 둘 다 헨리 자신인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20세기 셔츠의 등 부위를 다니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줄무늬를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보고 수용소에 대한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 생각났다. 줄무늬 셔츠에서 그들은 폴 스미스의 줄무늬 셔츠가 아닌, 수용소를 떠올리고 고문과 대량 학살을 떠올리는 것이다.

 고통을 순수한 어린이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또 우화라는 형식으로 야생동물을 등장시켜 서술하면 그 고통은 잠잠하지만 더 시사하는 바가 크게 된다. 괴롭다고 울부짖는 행동은 버질의 고함으로 나타났고, 홀로코스트라는 단어 대신에 '호러스'라는 말을 쓴다. 작가의 재해석으로 탄생한 반짇고리와 그 목록들 모두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지만 작가는 애써 다른 모습으로 그리려 한다. 더욱 상징적인 것들, 호러스 손짓이나 독특한 신조어. 그 이유는 작가가 표현하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선입견 없이 받아들여주길 원하는 바램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의 말미에 나온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은 그 자체가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이 되었다. 나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 슬프고 아픈 결과가 나올텐데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마지막 게임 15에 나온 여백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아픔과 상처가 없는 나에게도 알수 없는 쓸쓸함과 슬픔을 주었다.

 

 베아트리스와 버질. 한 번 쭉 읽고 감상을 쓰기에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그러기에 한 번 더 읽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얀 마텔이라는 작가를 이번 소설로 인해 처음 접했지만 그 전작인 '파이이야기'를 이젠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뜨거운 감자' 사건을 다룬 책은 언제나 그렇듯 흥미로운 점들을 마구 쏟아내고 결론을 짓지 못한 채로 끝나버린다. 이 책도 그런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사건이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결론이 없을 수 밖에 없다는게 당연한 것. 사람들은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하고, 언론 출판업계는 그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하여 재빨리 대응을 한다. 나는 책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애쓴 흔적이 역력한 마무리 부분보다는 그 동안의 사건 일지에 대한 서술이 너무 흥미로웠기에 높은 평점을 주고싶다.

 

<위키리크스와 줄리언 어산지>

책은 '위키리크스'라는 사이트와 이를 대표하는 인물, '쥴리언 어산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산지가 어떻게 지금의 상태가 되었는지 그의 출생과 자라온 성장 배경부터 시작하여, 어산지가 왜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고 그 배후를 파헤치려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파헤칠 수 있는지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살린 해킹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이 책의 서술자는 독일 '슈피겔'의 두 기자들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위키리크스는 언제나 언론을 비평하면서도 언론의 힘을 빌리게 되었고, 이런 언론사에서 위키리크스에 관련된 자료를 발행한 것이다. 쥴리언과 위키리크스 관계자들과의 인터뷰와 잦은 접촉은, 이 책이 더욱 리얼리티를 띨 수 있게 해 준다. 특히 '부수적 살인' 비디오를 시작으로 '아프간 전쟁 야전 일지'등을 폭로하기 위해 쥴리언과 그의 팀원들이 어떤 식으로 공개를 준비해 왔는지, 그리고 매체의 반응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이 글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위키리크스쪽 편에 서서 이들을 옹호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위키리크스 내부로 끌여들인다.

 

<바로 오늘의 이야기가 책 속에서 펼쳐진다>

현재 이집트와 리비아 사태를 비롯한 일련의 민주화 운동들로 국제 뉴스가 들끓는 가운데에 이 책을 읽고 있는 기분은 매우 묘했다. 책에 언급된 무바라크, 가다피에 대한 내용이 같이 혼재했기 때문이다. 위키리크스가 누출한 문서들로 인한 이런 도미노효과는 과연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들도 그 결과의 하나로서 기록되고 있는데이 도미노효과의 끝은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 지 상상해 보기 힘들다.

위키리크스는 아마존의 서버 임대 철회로 인해 사이트가 폐쇄된 적이 있으며, 서버 접속 폭주로 다운이 된 적이 있다는 글귀를 읽고서 바로 wikileaks.org에 접속을 해 보았다. 현재 접속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위키리크스의 고유의 모래시계 모양까지 확인 할 수 있었다. 모든 자료들은 영어로 제공되고 있었으며 매우 많은 양의 자료들이 공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책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이런 자료들을 수용하려면 언어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1차적인 자료가 아무리 중요도가 높고 방대하다고 하더라도 그 자료를 정리하고 수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언어적 문제를 뛰어넘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누구든 일반적인 사람들은 누군가가 이 자료들을 분석하고 정리해 주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가십거리 같은 뉴스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산지가 원하는 것은 가십거리 기사가 아닌 것이다. 이런 자료를 공개함으로서 가십으로 끝나는 것만이 아닌 정치에 직접 가담하는 시민정신을 원하는 것이다. 대부분이 미국 국방부와 관련된 자료이지만 이 것만으로도 전 세계는 미군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미국이 큰 나라이고 맞서 싸우기 벅찬 상대라는 것은 위키리크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언론사들을 포섭하여 위키리크스를 비판하게 만드는 미국의 힘.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위키리크스는 한 것이다.

 

<미국과 미군만을 적으로 만드려 한 것이 아니다>

쥴리언 어산지는 미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미군을 상대로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명백히 짚어 주었다. 그는 전 세계의 어느 곳의 자료가 타겟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다만 큰 반향을 주고 있는 자료들이 공교롭게도 미군과 관련된 자료가 나오게 된 것이다. 미국만이 악국이라는 악평을 하고 싶은 것은 나 역시 아니다. 오히려 미국을 옹호하려는 마음은 더더욱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저널리즘을 뿌리부터 뒤 엎으려는 위키리크스의 힘과 노력, 그리고 이를 지탱하고 있는 쥴리언 어산지가 앞으로도 계속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책 말미에도 나와있듯이 제2, 제3의 위키리크스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연애잡지 같은 가십거리를 폭로하는 곳이 아니라, 좀 더 진지한 '불편한 진실'들을 알려주는 곳이 더 많아지고 있다. 지금 이것은 우리가 보는 헐리웃 영화나 소설의 한 소재가 아닌 것이다. 더 광범위하고 더 위험한 진실들을 알게되면 이를 받아들이고 수용 하는 능력은 전적으로 개개인에게 달려있다.

 

<영화 GREENZONE>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난 영화가 있다. 2010년에 개봉한 영화 '그린존'. 맷 데이먼을 주인공으로 세운 영화이며 이라크 전쟁의 배경을 그렸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확신하에 이라크를 적국으로 세운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미국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전쟁영화를 관심있게 보는 나에게는 재미를 넘어서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였는데, 책에 이 이라크 전쟁에 대한 부분을 읽었을때 영화가 생각났다.

진실은 파헤쳐 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진실로 인해 수반되는 고통과 혼란도 있을 수 있다. 너무나 위험해 아직도 저 지하 깊숙이 숨겨진 은폐된 진실들이 아직 무수히 많다.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과 이를 저지하려는 사람.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의 활동의 결과는 우리는 언론으로 인해 바라보기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보를 언론사의 생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이런 위키리크스 같은 폭로 사이트를 통해서 내가 직접 확인해 보고 비판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또 다른 하나의 책 '위키리크스'>

위키리크스 책을 검색하면 한 권이 더 나온다. 바로 위키리크스의 독일 대변인이었던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가 지은 위키리크스이다. 지금 이 책보다는 보다 더 신랄하게 보다 더 자세하게(혹은 오히려 더 불분명하게), 그리고 비판적인 시각이 강한 위키리크스에 대한 책일 것이다. 내부인이었던 사람이 저술했기에 이 책과 비교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진실이던 위키리크스 내부의 이야기 역시 진실은 단 하나일 것이다. 진실을 폭로하려는 위키리크스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난 또 다른 '위키리크스'를 읽고 좀 더 위키리크스의 진행을 지켜보아야하겠다. 언제나 진실은 하나이기에.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라는 말을 곱씹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