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작가 4인으로 보는 중국 현대 문학의 풍경이 특집인 가을호다. 아시아라는 잡지는 계간지이다. 연 4회 발행이라는 소리인데, 오늘에야 처음 접하게 된 책이다. 그동안 일본 문학에만 너무 집중했었던 터라, 정작 우리 한국 문학은 도외시 되었고, 더군다나 중국문학은 말할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기회에 궁금하기만 했던 중국의 현대 문학을 접해볼 수 있었다.

  중국 작가라 하면, 고등학교때 학교 도서관에서 정신없이 읽었었던 김용의 <영웅문>이 제일 처음 생각난다. 그 다음이 삼국지. 그리고 노신의 <아큐정전>. 아큐정전이라는 작품은 읽어본 적은 없지만 수 많은 세계 명작 리스트에는 꼭 올라와있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중국 작품에 대해선 큰 대륙의 기운을 받아서 스케일이 매우 장대하고, 나오는 등장인물 또한 많으며, 생소한 이름과 지명, 발음들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우선 이 책의 목차부터 살펴보았다. 책의 구성은 일본의 대지진 사태에 대한 사안을 특별 기고로 시작하며, 중국 작가 4인의 단편들이 수록이 된다. 그 다음엔 앞의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이 제시되고, 좌담으로 현대 중국 문학에 대한 한국 작가들의 시선이 자리잡는다. 그리고 중국 하면 역시 바로 떠오르게 되는 신화나 전설로 읽는 아시아라는 재밌는 리스트도 첨가된다. 그리고 이번 계간지의 기획 연재물인 아시아의 도시와 문학편에선 베이징을 중심으로 3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생각을 내놓는다. 마지막으로 시가 게재되는 매우 알찬 구성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며, 수 많은 친구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일본에서 벌어진 지진, 그리고 지진보다 더 무서운 원전사태. 그로 인해 일본의 혼란과 앞으로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에세이를 읽고, 빨간 종이위에 수놓아진 현대 중국인 4명의 단편을 읽어보았다. 작가들이 매우 비중이 있는 작가들이라는 것을 알고서 더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놀라운 것은(아니, 기대 이상이었다고 해야하겠다), 그 단편들이 매우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4편 모두 환상문학같았는데, 하늘을 나는 신부라든지, 향장의 말로 돈을 벌어 큰 저택을 지은 이야기, 매우 소중한 돼지기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 여우에 관한 이야기 등은 지금까지 접해 왔었던 문학들과는 조금 색다른 코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흥미롭게 읽었었던 것 같다. 처음엔 이게뭐지? 하면서 봤었는데 그 이야기와 소재의 독특함, 그리고 발상의 신선함에 감탄하게 되었다. 4편의 단편 중에 제일 재밌게 읽었던 것은 츠즈젠의 '돼지기름 한 항아리'였다. 이 단편은 나중에 동화로 각색해서 내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을 정도로 꽤 탄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평들로 인하여 단편들을 더욱 심도있게 볼 수 있게 되었고, 좌담을 통하여 현대 중국 문학에 대하여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신화와 전설로 읽는 중국의 내용은 기대한 만큼 정말 재밌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또한 베이징을 그려내는 3명의 작가들의 이야기는 아직 베이징을 가 본 적이 없는 나에게 베이징을 보여주었다. 나는 중국에는 상하이 지방밖에 가보지를 못하여 베이징은 항상 궁금했는데, 이 작가들의 시선을 따라 본 베이징과 예전에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 받았던 신선한 베이징의 이미지가 떠오르며, 다음에 중국을 가게 될 기회가 온다면 여행지는 베이징으로 하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가을은 역시 시의 계절인가보다. 책 사이에 끼워둔 나뭇잎처럼 가을 단풍색이 나는 시까지 읽고 나니 이 잡지 한 권이 나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얇지 않고, 계간지이기 때문에 더욱 스케일이 컸던 잡지. 앞으로도 참고할만한 서적 리스트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이 서평은 '도서출판 아시아'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름이 '이레네', '라헬 마이어' '이렌카', '마와' '소니아 소피어슈타인'. 그녀가 가진 여러 이름들이다. 때에 따라서 자신의 신분을 속이기 위해 예명을 쓰기도 하고, 새로운 이름을 새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얻기도 하였다. 그녀의 이름이 어떤 식으로 변하고 있는지 책을 통해서 그 루트를 따라가 보았다.

 

 

 날아오르는 새 한마리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새 한마리의 이야기로 결말을 맺는 이 소설은 제2차대전 속에서 청춘을 보낸 여인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에 첨부되어 있는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폴란드는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 사이의 나라이다. 전쟁이 터지게되면서 독일의 침공으로 나라의 절반이 독일에 영속되고, 사람들은 쫓겨나며, 유대인들이 학살되는 장면을 거리에서 마주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지명이 나오면 꼭 지도에서 그 지명을 확인해가면서, 이레네의 이동 루트를 눈으로 좇았다. 그렇게 읽어가면 훨씬 더 내용의 리얼리티가 느껴질 것이다.

 이레네가 태어나기 딱 1년 전, 이레네의 부모님이 만나는 장면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도 1922년 5월 5일, 우리에겐 어린이날로 마냥 즐겁기만 한 날짜에 태어나게 된다. 이레네가 태어난 때는 라일락이 필 무렵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 속에서 생일 즈음엔 라일락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나오게 된다.

 이레네를 이어 4명의 동생들이 더 태어나, 5명의 딸들이 함께 자라게 된다. 코지에니체에서 태어났던 이레네는 막내가 태어날 무렵 쳉스토호바로 이주하게 된다. 독일과 폴란드 국경에 더 가까운 곳이다. 그리고 1934년, 이레네 12살되던 해 독일 대통령이 사망하고, 그해 8월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이 되었다. 이 때, 구트 가족은 국경에서 더 가까운 곳, 6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던 코즈워바 구라(오버 슐레지엔)로 이주하여 살고 있었다. 독일인이 상당수였던 그곳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성씨가 구트여서 독일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뼈속까지 폴란드인이었던 부모님의 영향덕에 폴란드인임을 자랑스러워 하도록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이레네가 16세가 되는 1938년, 라돔으로 홀로 공부를 시작하며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전쟁이 터질 무렵, 집에서는 돌아오도록 편지를 보냈지만, 라돔에 머물겠다고 결심한다.

 전쟁이 시작되고, 폭격과 전쟁병, 피난민들 사이에서 이레네가 할 수 있는 것은 간호일이었다. 우크라이나 접경지대를 따라, 르보프를 목적지로 삼아 모두들 움직였다. 하지만 르보프에 도착하기 전 테르노플에서 처음으로 포로로 붙잡혀서 병원으로 가게되는데, 포로 신분으로 병원 간호일을 시작하게 된다. 불미스런 일로 병원을 탈출하고, 스베틀라나에서 다시 새 삶을 살아가는 이레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테르노폴로 통행증을 받기 위하여 갔는데, 그곳에서 다시 인민위원회로 끌려가 감금되지만, 다시 탈출하여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출발한다. 하지만 도중에 독일인들에 의해 기차가 멈추고 결국 라돔으로 돌아오게 된다. 라돔에서 가족들과 다시 재회를 하지만 둘째 동생 야니냐와 둘만 남게 된다.

 

 

 탄약 공장에서 일하게 되지만 그녀의 독일어로 인하여 뤼게머 소령이 있는 곳에서 식당일을 새로이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이레네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된다. 이레네는 자신이 폴란드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여자이며 예쁘다는 사실을 무기로 삼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유대인들을 도와주고, 독일인들의 계획을 뒤엎어버리려고 한다.

 이레네는 꽤 오랜 기간동안 들키지 않고 유대인들을 몰래 살아남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은근히 알고 있으면서도 알리지 않았던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레네가 보살펴 주거나, 몰래 식사를 가져다 주고, 은신처로 옮겨다 준 이들이 매우 많았다. 숲속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해 주거나, 세탁실과 지하실로 숨겨주었던 6명이 그들이다. 나중에는 지하실에 사는 인원들이 총 12명이 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꼬리도 길면 잡히는 법. 결국은 뤼게머 소령에게 들키게 되지만, 소령은 이레네의 몸을 담보로 그 사실을 무마시켜 주겠다고 한다. 독일군의 퇴각과 함께 이레네는 뤼게머 소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고, 진정한 레지스탕스 일원이 되어 활동하게 되는데, 그 시작점에 야넥과의 사랑이 있었다. 이레네의 생일날 결혼식을 치루려고 한 5월 5일에서 3일전. 야넥은 작전중 사망한다. 참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인가.

  첫 사랑의 죽음은 이레네도 죽음으로 몰고 갈 뻔 했지만 이레네는 슬픔을 딛고 오히려 더 열심히 레지스탕스 일을 시작한다.

 

 

  1945년. 폴란드는 해방되었고, 자유를 찾았으나, 이레네는 고단했다. 그 때 이레네의 나이 스물 셋. 하지만 너무나 많은 일을 겪은 이레네에게는 청춘이란 고통스런운 기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 많은 일을 겪었고, 여러 곳으로 이동하였던 그녀였지만 그녀의 기억력은 매우 좋았던 것 같다. 이 책이 이레네의 구술을 통해서 정리되었고 기록된 책인데, 그 기록의 세세함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이레네가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 독일이라는 것은 참 웃을 수 없는 일이다. 송환 캠프가 독일에 차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레네는 유대인으로서 새 삶을 살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독일에서 새 삶을 살게 되었지만 매우 무미건조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1949년, 이레네 27세되던 때.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인터뷰 하기 위해 UN에서 대표단이 파견되었고, 이레네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다. 이는 이레네를 미국 시민권을 얻고 미국에서 살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매우 영화같은 삶을 살았으며, 시기 적절한 행운도 함께하여 2차 세계대전의 풍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레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이니 게토의 상황에 대한 것이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유대인들과는 다른, 또 다른 차원의 폴란드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전쟁에 대한 체험은 다른것이었다. 유대인 학살에서는 한 편으로 피할 수 있었지만, 노동력은 착취되고 있는 폴란드라는 나라. 나라 잃은 심정을 우리 조상들도 뼈저리게 공감하겠지만, 지금 나 자신은 느낄 수 없었던 그 카오스 속의 이야기이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이런 일을 겪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종때문에 차별받지 않고, 전쟁때문에 이산가족이 되지 않으며, 약자의 입장에서 어디까지나 짓밟히고 살지 않는 지금 나의 현실. 꽤나 많은 다행스러움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해주었다. 이레네가 무사히 전쟁에서 살아남고, 미국으로 이주 하였으며 결국은 결혼도 했다는 사실은 나를 매우 안심시켜주었다. 태어난 딸에게는 자신의 여동생의 이름을 붙여주기까지 했다는 데에는 큰 감동을 느끼기도 하였다.

  아픔과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하여, 이런 고발성 체험기들은 아직도 계속 세상에 나오고 있다. 최근의 한국소설인 공지영의 '도가니'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설을 통하여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가니 사건은 영화화되어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는데, 이 것도 또한 영화화 된 적이 있고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적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진실은 어딘가에 살아있으며,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당연시 여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런 진실들이 얼마나 고통속에서 발현되었는지 그 경과 과정을 간접 체험으로나마 느끼면서 이런 아픔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겠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레네의 명복을 빌며.

 

 

(이 서평은 '연암서가'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