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모토 세이초의 소설을 이렇게 좋은 기회로 읽게 되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이 작품은 1959년작이네요, 딱 전후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기점에 서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전후문학이란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문학, 즉 일본이 패전하고 난 뒤의 문학을 얘기하는데요, 신칸센이 여기저기 막 개통되고 교통이 점점 편리해지고 있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근대문학, 특히 1920,30년대 일본 문학을 주로 읽었어야만 했던 저에게는 이런 전후 시대가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결혼을 중매를 통해서 하게된 데이코와 그와 10살차이가 나는 남편 겐이치. 그 둘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서로의 첫 인상이 큰 기쁨도 실망도 아닌 '이정도면 되겠다'싶은 것에 합격점을 주고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결혼 후 신혼여행은 신부가 원했던 북쪽이 아닌 다른 곳으로 다녀오죠. 그리고 나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남편은 일 처리 마무리를 위해서 떠나지만 그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실종이 되어버립니다. 그 남편을 찾기 위해 남편이 있었던 곳, 그리고 데이코가 그렇게도 가보고 싶었던 남편의 자취가 있는 가나자와로 남편의 행방을 찾으러 갑니다. 그 곳의 지도도 친절히 소설 앞부분에 붙어 있어서 책을 읽는 간간이 지명이 나오거나 역이름이 나오면 찾아보면서 읽었습니다.

 

약간 우울한 느낌이 드는 가와자와란 곳에 간 데이코는, 그의 업무 인수인계자인 혼다와 함께 행방을 찾기 시작하는데, 이 혼다라는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데이코에게 너무나 큰 친절을 베풉니다. 이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는 데이코.

 

 

자살하러 오는 사람이 은근히 있다는 하쿠이 근방의 해안 절벽지대. 그 곳에 가서 신원 미상의 시체가 남편인지 확인하러 간 김에 들른 그 절벽지대를 데이코가 방문하는 장면에서는, 유명한 세계 3대 주상절리의 하나라는 도진보의 지명이 언급됩니다. 그 부분을 보면서 제주도에도 주상절리가 있었는데, 그 곳에 방문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주상절리는 이젠 관광지가 되어서 입장권을 따로 구매해서 들어가야 하고, 절벽을 둘러서 기둥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떨어질 염려는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절벽 뒤의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파도가 치는 하얀 거품을 보러 오는 관광지였죠. 그 곳도 낮에 갔었기 때문에 특별히 자살을 생각할 수 있는 절벽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소설을 통해서 보니 해안 절벽 지대라는 곳이 어느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장소가 된다는 점에 새삼 놀라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소설이 매우 마음에 들었던 점은, 추리를 해 나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추리 전문인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행방이 묘연한 남편을 찾기위한 부인의 마음으로 추적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작가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세세한 마음씨를 어쩌면 이다지도 자세히 느끼고 알 수 있는지, 그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데이코가 남편에 대해서 생각하는 부분에서 많이 느꼈는데, 남편이 데이코를 애무할 때 하던 말이나, 그녀의 알몸을 보고 젊다고 얘기 했을 떄, 이건 분명 다른 어떤 여자를 염두에 두고 비교하는 말이라고 느끼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데이코는 아주 옛날시대의 여인이 아닌, 어느정도 교육을 받은 여성으로 나오고, 두 세어번 정도의 연애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나오기때문에, 그런 느낌을 더욱 잘 캐치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사라지고 난 후, 추적을 하는 와중에서 알게 된 남편의 묘연한 행방과 알 수 없는 거처 등에 대해서 느낀, 다른 여자의 느낌에 촉을 세우는 여자의 직감이라는 것을 이 마츠모토 세이초라고 하는 남성 작가가 너무나도 자세히 알고 있음에 놀란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섬세함에서 오는 작품이기에 작품이 꽤 두꺼운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술술 잘 읽혔습니다. 책 표지 그림도 너무나 마음에 들더라구요, 빨간 립스틱을 발랐기 때문에 여자임을 알려주는 한 흉상 그림 위에 남자가 절벽 끝에 서 있는 듯한 검은 실루엣을 배치한 그림이 소설과 너무나 잘 어울렸기때문입니다. 책 날개를 펼쳐서 보았을 때의 느낌은 더욱 확실하죠.이 책의 어두운 느낌을 잘 살렸다고 생각하는 그림입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허하면서도 가득한 느낌을 소설에서 읽었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신이 죽었다. 그 후의 인간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주제로 작가는 글을 썼다. 참 대단한게 요리사로 일하면서 틈틈히 쓴 그의 데뷔작이 바로 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데뷔작인데도 불구하고 짜임새가 매우 좋았다. 글을 전개하는 속도라든지,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 등장인물들이 어떤식으로 연결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처음에 읽기 시작했을때는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서 그저 단편소설들의 나열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하나의 주제하여 연결고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사람의 모습을 빌어 인간계에 내려온 신은 결국 죽게 되었고. 그 신의 죽음 이후에는 인간계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제비뽑기로 서로를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자살해 버리는 청소년의 이야기가 가장 섬뜩했다. 그런 식으로 신의 존재가 사라진 세상을 그렸다.

 

신은 사랑이라고 했던가? 신이 없다면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것인가?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신이 없어도 사랑은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책을 읽어내려갔다. 작은 사이즈의 책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하나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첫 챕터부터 내용은 나를 사로잡았다. 소녀가 그렇게도 찾아 헤메던 소년이 나타났지만 그 소년은 진짜가 아니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른 그 소녀가 바로 신이었다는 설정이 너무나 신선해서 그 첫 챕터부터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 다음에 나오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녀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그 부분에는 아비새라는 새가 나오는데, 북미산 물새로 물고기를 잡아먹으면서, 사람 웃음소리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한다. 참으로 신기한 새이다. 사람 웃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는 새라니! 가끔 고양이들이 교미를 할 시기에 어린아이 울음소리같은 소리를 내는것은 하도 흔하게 들었지만, 사람 웃음소리같은 새 소리는 금시초문이라서 매우 궁금해졌다.

 

이렇게 작가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치를 곳곳에 설치하는 노련미를 보인다. 바로 그 점이 이 작가가 처녀작을 이제 세상에 발표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데뷔작으로 느껴지지 않는 점이다. 앞으로 이작가의 행보에 관심이 가게 된다. 나중에는 정말로 큰 작가로 성장할 수 있을것 같다. 첫 작품부터 이렇게 한국에 있는 나의 손에도 들려있으니말이다.

"내가 먼저 읽을래!!"

 

남편이 나에게서 책을 빼앗아갔다. 프랑스에 장기 출장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남편이 자기가 가 본 적이 있는 카페도 있을까 하면서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제일 마지막에 있는 프랑스편을 먼저 보았다. 프랑스를 다 본 남편은 자기가 가 본적이 있는 카페는 없다는 것에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파리의 노천카페들이 다들 비슷한 광경에는 조금 기억을 더듬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그렇게 이 책은 남편이 더 마음에 들어했던 책이다.

 

함께 책을 보면서 프랑스편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책에서 체코편을 발견했을때는, 둘다 멈췄다! 우리는 원래 신혼여행으로 가려는 후보지 중에 체코를 순위에 두고 있었는데, 신혼때 아니면 언제 풀빌라 가겠느냐며 장소를 유럽에서 동남아로 돌렸다. 책에서 보는 프라하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신혼여행을 그냥 체코로 정할걸 하고 후회하고 말았다.

 

노신사 바리스타. 책을 보면서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유럽 어느 곳을 가도 이렇게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바리스타도 하고 서버도 했다. 그런 그들의 사회적 관심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는 노인이라고 하면 우선 이런 서비스업에 종사시키길 꺼려한다. 유교사상이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손님이 찾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드물게 노인 바리스타가 있는 곳이 티비에 소개되곤 했었다. 그런 곳은 관심의 대상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일상적이 되기는 힘들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이런 나이 지긋하신 분의 왠지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몸가짐에 눈길이 더욱 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커피는 맛보다 향이 더 좋다. 그 그윽하고 달콤하면서 매캐한 향에서 나오는 기억들은 옛 사랑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 동네를 떠올리게 하기도하며, 어린시절 엄마 몰래 마신 커피 한모금의 비밀까지 떠올려주게 해 준다. 달콤한 커피보다는 쓰디쓴 에스프레소 한 잔이 더 강렬하듯이 맛이 진한 커피가 좋다. 뜨겁게 몸을 달구어 주는 뜨거운 커피 한잔. 오늘처럼 눈이 와서 쌀쌀한 겨울 날씨에 뜨거운 커피 한잔이 가득찬 종이컵을 얼굴에 댓을 때의 그 따스함이 전해져 오는 듯한 책 한권이었다.

 

커피를 공부하면서 만나게 되었다는 두 부부. 신혼여행을 유럽 전역을 커피를 마시면서 돌아다니기로 정했다는 것이 너무 부럽다. 그 여유로움은 어디서 오는걸까. 그 비용들과 계획들, 그리고 커피 전문점들. 이렇게 테마가 있는 여행을 나도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 한가지 테마를 정해서 부부 둘만이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을 사진 가득히 담아오고 나는 글을 써놓고. 그런 추억. 언젠가는 같이 만들어볼 수 있겠지?

 

동그란 커피 위에 내려앉은 거품의 동그란 향기.

 

오늘은 커피 한잔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