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겨울 등산길에 마주한 비구니 스님의 모습을 보고 미치지 않고서야 그 추운겨울 몇시간을 떨며 목탁치며 탁발할수있을까란 의문이 들어 반야심경을 구해 공부했었다. 그때도 나름 열심히 배운다는 자세로 익혔는데 종교란 개념이 없으니 글귀가 머리속을 맴돌다 잊혀졌다. 그럼에도 반야심경정도는 읽었었지란 거품같은 자부심은 있었는데 도올선생님의 책이 출간되었다 하여 다시한번 읽었다.

 

도올선생님의 책은 읽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나의 명제를 설명하실때 연관되는 동서양의 사상과 종교 모두를 조합해 적재적소의 타이밍에 가장 적확한 언어(영어,독어,중국어 등등)로서 풀이해주시니 글이 편하게 읽힌다. 더욱이 강의까지 친근해져있어 글에서 그분의 음성이 나오는 듯한 느낌 역시 받는다.

하지만, 그 장점이 때론 아주 큰 단점으로 바뀐다. 선생님의 책을 볼때면 아 그런거구나 하며 쉽게 익힌 듯 하지만 책을 덮을땐 내가 뭘 읽은거지란 空虛의 상태로 돌아가 다시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주장과 텍스트가 혼재할 경우 이런 현상은 더욱 강도가 세어진다.

나의 경우 금강경 강해를 읽었을때 시종일관 그 말씀의 흐름을 잡지못해 애먹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공력이 약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선생님의 잘못이 1할 정도는 있다 생각된다.

 

그분의 글을 좋아해 의무감 처럼 읽었는데 이번책이 구성은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앞부분에서 배경설명이 있었고 뒷부분 반야심경 강의를 하는 부분에선 텍스트 자체만을 풀이해 주시는 구조여서 도올선생님 특유의 혼재가 일정부분 사라졌다. 그러니 먼저 배경설명을 충분히 익히고 경전을 읽을땐 그 배경지식이 이미 있는 상태에서 강의를 듣는 구조여서 그 어떤 책보다 이해가 쉬웠다. 하여 "아재 아재 바라아재 바라승아재 보리사바하"란 구절까지 쉼없이 익힐수 있어 공부하는 맛이 있었고 애써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방송대에 편입했다. 국문과로..

현대소설론 이란 과목의 과제가 몇권의 책중 두권을 읽고 비교 분석하는 글을 쓰라는 거다.

학교 과제만 아니였으면 결코 읽지 않을 그런 내용의 소설이다.

 

살아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가 있다. 이름은 아카스 네팔어로 하늘이란 뜻이다. 아버진 네팔에서 온 불법체류자이고 어머닌 그런 아버지를 사랑했던 조선족 여인이였다. 아카스가 한국에서 존재할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네팔대사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는 다닌다, 학생신분이 아닌 청강생으로. 물론 어린나이지만 그러한 신분때문에 치뤄야할 대가가 있다. 우선 아이들에게 멸시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언제나 더러운 존재로 인식되어야 하며 짓굿은 장난의 피실험대상이 되어야 한다. 

 

아이가 소년이 되고 다시 청년이 되려 할때 주변의 환경에 따라 자신과 주변에 대한 관념을 설정한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따뜻한 환경속에서 자란다면 이런 시기가 늦게 올것이나 "네팔의 하늘"이란 이름을 가지고 한국 하늘아래 불법체류자들의 거처에서 생활하는 처지라면 판단할거다, 강해지던 비굴해지던 아님 체념하던.. 그런 아들이 불안해 아버진 말한다. 누군가 때리면 맞아주라고, 돌을 던지는 자에게 꽃을 주라는 말에 따라. 그 글을 읽는데 가슴이 ？？어진다는게 뭔지 느낄수 있었다. 

 

어머닌 조선족이였고 여자였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카스 그리고 자신의 욕망 사이의 선택권이 있었다. 그녀의 선택이 남편과 아들은 아니었다. 화가 나지만 그럴 자격이 있나 자문해 본다.

아버지 한테선 짐승냄새가 난다 한다. 땀, 화학약품 과 욕설에 찌든 몸에서 풍기는 냄새라한다 그럼에도 아카스에겐 유일한 버팀목이다. 하여 파괴의 신 시바에게 끊임없이 제물을 바친다, 자신과 아버지의 안녕을 위해. 산업재해로 잘려나간 이웃들의 손가락 따위의...

 

가난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을 기만하게 만든다. 자신보다 더 가난한자를 멸시하게 만들고 자신보다 조금 앞선자의 결과물을 수탈하고 싶게 만든다. 그들에게 그러한 삶 이외의 다른 선택권이 있을까?? 누군가는 자신을 위해 또다른 누군가는 자기를 믿는 고향의 가족을 위해 때론 훔치거나 때론 강탈하고 살인 까지도 저지른다. 그런 소용들이를 네팔어론 "외"라 부른다. 

네팔인에게 코끼리는 구름보다 높은 곳에 있던 신성한 성물에서 누군가의 실수로 우주를 떠받치는 고행을 해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런 코끼리들의 사회속에서 발생하는 외의 한복판에 아카스가 있었다. 소설은 그렇게 끝난다. 하지만 소설속의 글자수 보다 훨씬더 많은 잔상이 남는다. 아프고 어렵고 화가난다. 

 

한편의 소설을 더 읽고 좀더 생각해 봐야 겠다. 근원적인 이유가 무었이고 변화의 조짐을 만들 최소한의 행동이 무었인지에 대하여...

 

부유해 진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다. 추위와 더위로 부터 몸을 보호할수 있고, 식욕을 충족시키며 새로운 일을 하는 토대를 마련해 주기 때문일거다. 하지만 부가 지나치게 많아 지면 되려 그것을 지키기 위해 행복을 갉아먹는다. 주변국 보다 절대 우위의 부를 축척한 국가 이집트의 파라오를 보며 어떻게 축척하는 자산이 자신과 더불어 주변을 이롭게 하는가에 모범답안을 알게되었다. 친형인 셰나르를 비롯해 주변국가의 모든 적들은 그들의 권세와 자기 주변인들의 욕심을 위해 이집트를 탐냈다. 하지만 람세스에게 이집트는 그의 아내이자 그 자신이였다. 그렇기에 그속에서 창출된 모든 자산은 신들의 것이며 파라오는 신들을 대리해 백성 모두가 행복하게 해주는 소임만을 지키면 된다는 통치 철학을 평생에 걸쳐 실천했다.

 

현자라 칭할수 있는 첫째 아들 카와 훌륭한 군인이자 행정가인 둘째 아들 메렌프타. 첫째의 수명은 아버지 보다 길지못했으나 둘째는 훌륭한 왕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이집트를 위해 피,땀흘렸던 친지와 가까운 친구들 대부분이, 파라오를 위해 그리고 이집트를 위해 죽음을 맞이했고 남은 친구는 세타우 부부와 아메니뿐이였다. 하지만 100살 가까운 나이에 진정한 친구의 곁에서 맞이하는 죽음에 대해 평가를 박하게 내릴 사람을 없을 것이다.

한편 생각해보면 그를 위해 저승으로 간 모든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게 될것이니 되려 진정한 선물일지도.. 죽음을 생각하는 삶이 가르쳐 주는 도덕률,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맘속에 자리잡았다.

 

세티우는 누비아의 총독으로 그 여생을 마칠거다. 결코 바라지 않았지만 운명이 되어버린 누비아, 그곳에서 그는 어쩌면 람세스보다 더 위대한 정치를 펼쳤을 거다. 그가 총독으로 임명되었을 때 마을 촌장의 말 "우리는 생명을 구할 줄 알고, 마음으로 말할 줄 알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을 내려주신 람세스 대왕께 감사드립니다." 속에서 정치가 무었이고 지도자는 어때야 하는가가 각인 되었다.

 

이집트를 다시보게 되었다. 그리고 동경하게 되었다. 언젠가 이집트를 방문하면 누비아의 아부 심벨을 방문할 것이다. 아마 그곳에서 난 람세스와 네페르타리, 세티우 부부등과 조율하게 될거다. 그러면 그 오래전 사람들이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질 것 같다. 크리스티앙 자크, 위대한 소설가에게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