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삼봉선생에 대하여 뛰엄뛰엄 알던 일대기가 비로소 체계화 된 느낌이다. 삼봉을 알기에 앞서 필히 읽어야 할 책이 맹자일 것이다. 맹자의 사상이 없는 삼봉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 당시 유가라 하면 공자의 제자중 증자일파의 학문이 발달했을거라 추측하는데.. 유배시절 찾아온 벗인 정몽준이 건넨 맹자에 매료되어 맹자조차도 구현하지 못한 그의 사상이 피어나는 나라를 구축한다. 조선이란 이름으로..

 

역자인 한영우선생의 눈을 통해 다시본 삼봉에 있어 개인적으로 기쁜점은 그의 유교적 사상이 꼰대문화 사대문화가 아니였다는 점이다. 불씨잡변을 읽을때 불교철학의 깊이를 논하는데 있어 당대 고승들과의 논증이 아닌 서적을 통해 익힌 자신의 지식으로 불교와 유교의 차이를 이원법으로 규정짓는 듯한 태도에 실망감이 일었었다. 이정도 사람이 하나의 왕조를 폐업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열었나 싶어서.. 그러나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 하나에 정진하니 자신의 백성을 도탄에 빠드리는 자는 부처가 아닌 석씨일 뿐이고 학파가 아닌 이단일 뿐이란걸. 그렇게 뜨겁게 인민을 사랑한 거인의 모습이 되려 각인되었다.

 

天長降大任於斯人也 必先苦其心之 ~ 是故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맹자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하늘이 장차 누군가에게 큰일을 맡기기 전 먼저~ 이렇게 시작하는.. 감히 짐작한다 삼봉이 아마도 가장 곱씹어 마음에 각인했을거라고. 그의 인생을 축약하면 이 구절 하나로 다 설명되지 싶다.

 

그러나 동서의 역사를 통해 나름 정립된 개인적 생각과 삼봉의 정치체계가 일치하진 않는다. 당시의 관념으론 최선이겠으나 왕조, 귀족이란 신분은 당연히 혁파되어야 마땅하다 생각한다. 또한 정치자에게 성인이 되라 강요하는건 불가능이라 느낀다. 권력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권력을 탐하지 말라... 모순이다. 더욱이 민주주의의 시조격인 그리스의 페리클레스에서도 이미 보았지만 개인의 역량으로 국가를 다스린다는 한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시스템에 의한 국가.. 돈이권력인 세상이라도 누구나 명분상으로 천부인권을 부인하지 못하는 국가 그런 국가였으면 싶다.

문득 궁금해 진다.. 삼봉선생이었다면 현시대의 정치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는 붓으로 문명개혁의 좌표를 세웠고, 그의 칼은 썩은 왕조를 도려냈다. 난세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역자의 묘사가 적확하다 생각한다.  

이전까지 세권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접하며 우리주변에 대해 배웠다. 특히나 사찰의 아름다움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공간의 감동을.. 중국편을 읽으면서는 삼장을 모시고 길떠나는 손오공의 일행이 된듯한 느낌과 고대 중국과 인도 그리고 페르시아 인들이 뒤썩여 만들어내는 스토리와 문물에 감동했다. 그런연유로 정수일 선생이 역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역시 읽었다.

 

그러나 북한편은 이전의 답사기와는 그 느낌이 다르다. 분명 한글로 쓰여 있는데 느낌은 혜초의 글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익히 알지만 밟아보지 못한 곳을 대함에 공통점이 있어 그런가.. 또하나 재미있게 느낀점은 글이 진행되면서 대상에 대한 작가의 정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처음 고려항공 기내에서의 분위기를 묘사한 장면에서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 비춰졌다면, 마지막 장을 덮던 법운사에서 만난 김구선생을 묘사할때 글에 비쳐진 감정은 아련함과 아쉬움 그리고 미안함 등등이 뒤썩인 정이였다 판단된다. 그래서 여분을 두어 그간 도움을 준 한분한분의 모습을 재미를 더해 소개했지 싶다. 

 

책을 덮은 후 잔상이 많이 남는 장소는 단연 묘향산이다. 누운측백나무에서 퍼지는 묘한 향기 그것이 이름되어진 산.. 壯而亦秀라 묘사하신 서산대사의 말씀 하나하나가 다시세겨지고 벽초선생이 묘사하신 향산 "달이 구름에 들어가면 희미하고 나오면 환하여 희미하고 환한것이 연해 섞바뀌어 변하였다."의 구절역시나 가볼수 없는 곳의 아련함을 자아낸다. 

 

가장 크게 놀랐던 장면은 청룡과 현무가 그려진 고구려 벽화의 사진이었다. 百問不如一見이라 사진으로 본것만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 그 일견을 언젠가 꼭 할수있는 날이 왔으면 싶다.

 

남한의 답사기는 공부하는 것 같아 진도가 더디게 나갔었다. 하지만 북한편은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과 기행문적인 요소가 공존해 보다 재미있게 읽힌 것 같다. 더욱이 북측 전문가의 문화유산에 대한 태도 "실증을 강조한다는 것이 역사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왜 우리가 역사를 연구하는 것인가? 또한 학문상의 보신주의 때문에 새 학설에 주저해서도 안될 것이다."를 접할때 되려 남측이 배워야 하지 않나 생각했었다.

문화만이라도 얽어져 연구하는 그날이 빨라졌으면.. 기원한다.

   

천재란 일반인이 볼수없는 과녁을 맞히는 자라고 작가는 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묘사하는 가장 적확한 표현같다. 어찌보면 답답하고 자신의 능력에 심취해 허영에 빠져있어 보이기도 한다. 책으로 만났기에 그의 성격과 업적에 대한 존경심이 일지 동시대에 살았다면 어쩌면 미켈란젤로보다 더 혹독하게 그를 대했을수도 있었을 듯 하다. 인간이 시기심, 그 지독한 컴플렉스에서 벗어난다는게 쉽지만은 않다. 레오나르도의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채우려는 끈질김을 알지못하면 그는 그저 게으른 천재로 인식되기 쉽다. 누군가 죽어라 노랙해 뭔가를 만들었을때 눈에 보이는 레오나르도의 작품과 비교해 번번히 좌절하면... 물론 미켈란젤로가 그랬다는건 아니다. 단순히 내가 동시대인이였다면 어떠했을까에 대한 유추일 뿐.

 

내게 이 책은 회화입문학 교과서처럼 다가온다. 단 한번도 그림을 보며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적이 없었다. 전문가들이 나와 어떤 그림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 가식이라 생각했고 그들만의 리그라 여겼다.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묘사하기위해 설명하는 원근법, 사물에 닿는 빛의 변화 그리고 특유의 스푸마토기법,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속의 이야기 등등에 대해 알아가면서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절정을 이루는 부분이 모나리자다. 책을 처음부터 공부하듯이 읽은 후 보는 모나리자는 이전의 모나리자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감동까진 아니더라도 분명 마음에 파장은 일으킨다. 과하지 않아 아련한 미소, 빤히 쳐다보는 것보단 흘끗볼때 빛나는 미소.. 그런 미소가 한동안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본 모나리자.

그는 겉모습을 그리면서 근육의 움직임을 표현하려 했고 그 근육을 지탱하는 뼈의 구조를 드러내려했다. 다시말해 뼈를먼저 그린 후 근육을 입혔고 거기에 피부를 입힌 것이다. 마치 엑스레이와 사진을 같이 두고 그 연결점을 퍼즐맞추듯 수놓으며.. 그렇게 시간을 두고 완성해가는 인물화에 자연현상 특히 빛의 움직임, 시간에 따른 지형의 변형등을 배경으로 동시에 표현했으니.. 작품의 보이는부분 뿐만아니라 보이지 않는부분 까지 보는이의 눈을 통해 녹아든다. 거장, 천재 이런말 보단 미친이란 단어가 이작품을 그린화가에겐 더욱 어울릴 듯 하다.

 

끝없는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인 남다른 관찰력. 레오나르도란 인물이 가진 큰 무기일거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인생을 살기는 싫다. 왠지 너무 피곤할것같다.

 

채식주의자, 동성애자, 위대한 화가, 최고의 연극 프로듀서, 도시설계의 거장, 발명가 등등의 무수한 단어로 그를 묘사한다. 하지만 따뜻했었나란 질문엔 답하지 못하겠다. 책을 읽으면서 그와 관련된 느낌은 못받은 듯 하다. 암튼 좋은 공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