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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누님, 누나~아 !

한 해 첫 절기 입춘이 지나 해가 길어지고 날마다 하늘이 밝아지고 먼 산등성이의 나목의 무리가 움직움직 하는 듯하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지금쯤 나뭇가지에 움이 트고 있을 것이다. 물끄러미 천천히 게으르게 볼 수 있는 그림같은 책이었으면 싶어서 고른 책이다.
요즈음 어지간한 일에 무덤덤한 나자신에게 책을 읽어 주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책보다는 그림을 먼저 고른 것인지도 모른다.이 앞뒤 표지에 뚝뚝 그려진 동백꽃 그림에 먼저 끌렸는지도 모른다.
낮고 고른 목소리로 담담하게 속내를 풀어 보여줄 만한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작품을 골랐다
아마도 요즈음 나에게 위로가 필요한 모양이다.
이청준(1939~2008)작가 의 동화 작품 ``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 `` , `` 선생님의 밥그릇``이 있어서 아직 뜯지 않은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가 신식학교 들어가기 전에 서당에서 사람의 도리 부터 배우라고 보낸다
이제 여섯 살난 준영이가   하늘은 까마득히 높고 땅은 넓고 끝이 없다고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끄덕끄덕해가며 배운다.
사람의 도리 를 배우라고 한 아버지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는지는 작품을 읽고 난후 에도 내내 물음을 던지고 있다
.서당에서 훈장님께 종아리를 맞으면서도 친구 판동의 장난임을 고자질 하지 않았다고 집에 까지 업어다 주던 형, 어린 동생의 돌무덤 사이에 살포시 끼워 놓고 온 호루라기,다 맡기고 편안히 가라고 아버지를 위로하던 어머니, 다 맡기고 떠나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자꾸 미안하다고 하던 아버지.
이 모두 여섯 살난 소년의 마음에 화석 처럼 새겨져 있다가 노 작가의 펜을 통해 이야기화 되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어려도 느낌은 온 몸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마음 이쯤에서 그 아스라하지만 찌릿한 서러움에 얼마나 서성거렸을까.

세살박이 어린 아들을 열병  잃고 설움을 다 토해 내지 않고 지내던 아버지가 어린 동생을 묻은 돌무덤을 찾아가 토해내는 설움을 본다. 그토록 섧게 울던 아버지는 그 해 겨울 병이 깊어 식구들을 남겨 두고 다시 못 올 곳으로 떠난다

둘째 아이의 처지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더란다.  젊은 부부는 상상 슬픔이 너무커 부부거 위로 조차 제대로 언젠가 티이브이에서 멀리 여름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근교에 마련한 캪프장이 있었다 젊은 부부가 큰 아이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 가족들이 저마다 슬픔에 젖어 일상생활을 못하다가 어느 날 , 맨 날 같이 공부하고 놀던 형이 사라져 버린것도 슬픈데 엄마 아빠까지 슬픔에 친 나머지 일상생활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내팽기쳐진   못하고 각자 삭이고 있다가 서로 손을 잡고 얼마나 울던지 . . 상처 없는 영혼이 없다지만 참 짠하다  아직 은... 젊은 나이에 .

아무리 슬퍼고 그리워도 속을 다 드러내지 않아야 된다고 여기고 서당에 가려고 책보를 챙기는 준영를 보고 조용히 타이르는 약산 아저씨, 집에 머물면서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잘 모시기 위해 애쓰는 아저씨를 보면서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지고 또 알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부터 눈물이 난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 드린 준영은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아무리 보고 싶고 그리워도 다시는 만날 수 없고 내놓고 슬퍼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서당에 다니는 일도 예전같지 않다.

좁아진 어깨로 유난히 먼 곳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아이가 있다면 또 다른 준영이지 싶어 조용히 토닥토닥 해 줘야지.
.이쯤에서 책을 읽는일도 가끔은 고된 일임을 알겠다. 한 참 이리 저리 헤매이게 된다. 아득한 그리움과 슬픔 ,  막막함에 휩싸이는 무력감이 전해 온다.

그런 준영에게 정례 누나의 혼례, 또 다른 이별이 기다린다
누나는 아버지,어머니와는 다른 친밀감으로 얼러주고 다독이며 길러준 손길인데 이제 다른 곳으로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일이 여간 큰일이 아니다. 누나를 위한 혼례청 을 꾸미면서 약산 아저씨는 아직 겨울이라 피지 않은 동백꽃 대신 붉은 종이로 동백꽃을 만든다. 아직 피지 않은 꽃과 활짝 핀 꽃으로 꾸민다.

혼례를 준비하면서 가끔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 누나, 누나를 데려갈 매형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안고서 서성대는 준영에게 약산 아저씨는 이제 준영에게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사람의 도리를 배우라고 서당에 보낸 아버지를 생각하는 걸 보면 삶의 모습들이 하나하나 여울져 소년을 키우고 있다.

준영은 이제 남겨지고 기다리는 존재가 그리고 누나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어린 동생과 아버지는 아버지의 떠남은 아득한 하늘에서 끝없이 퍼붓던 눈보라였지만 누나의 떠남은 기다림이 있는 것이다.

마중재에 올라 목 놓 아 불러봅니다.
``누~나~아~ ~ ~ `` 준영의 목소리에 겨울내내 움추려 있던 동백꽃이 다 피어날 것같습니다. 뚝 뚝 피어나는 동백꽃
약산 아저씨는 겨울을 잘 이기고 난 동백꽃처럼 잘 살라고 혼례청을 꾸며 주셨구나  .

나도 준영이가 되어 불러 봅니다.    `누~나~아 ~ ~ ~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한 오백 년 !    준영의 바램 .

세상살이 곳곳에 숨은그림찾기, 퍼즐 맞추기 참 어렵습니다 .

준영이 황토 흙이 미끌미끌해 지도록 땅이 녹으면 땅의 정기를 흠뻑 받아 뼈와 살이 동백처럼
푸르고 붉어지길 바랍니다 .

동백꽃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