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지인과 통화를 했다, 그 지인에게서 명나라 주원장에 대해 조사했더니 생활이 어려워 거지생활을 했고, 당시 유행 중이던 비밀결사조직에 들어가 실력을 인정받았고, 그 세력의 지원을 받아 명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뭔가를 새롭게 알게 된데서 오는 기쁨도 기쁨이지만, 중국 상해를 여행하는 동안 한족출신 가이드한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거지들 중 상당수가 상해에 아파트 몇 채씩을 가진 재력가라는 이야기였다. ‘거지’가 직업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 터라 중국의 내로라하는 많은 유적지를 다 가보고 싶다. 예전에는 비교적 싼 여행비 때문에 택했지만, 어느새 ‘역사’를 배우고 느끼고 싶어 관광지가 아닌 유적지를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오천년 중국 역사를 관통하는 ‘뭔가’를 기대할 수 있을 듯해 읽게 된 책이 『중국 거지의 문화사』다.
『중국 거지의 문화사』는 중국어로 '구걸'이라는 말은 기원전 18세기 초 갑골문에 처음 나타났고 현대 중국어로 '거지'를 뜻하는 용어는 송나라(960~1279) 초기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인류 문화의 시작과 더불어 동고동락할 수밖에 없는 계층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시작한다.
전체 8장으로 나눠진 『중국 거지의 문화사』는 19세기 초부터 1949년 인민공화국 건립까지의 중국 역사와 문화 속에서의 ‘거지’를 재조명함으로써 단순히 하층민으로서의 거지의 삶뿐만 아니라 중국을 관통하는 정서를 느끼게 해준다.
저자 ‘한차오 루’ 교수는 중국 거지들에게 단순한 거지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거지’는 동냥 또는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들 나름의 독특한 방법으로 대가를 지불했고, 그 형태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광대나 곡예사에서부터 해결사, 심지어는 비밀결사조직, 무림의 고수 등 다양한 형태라고 설명 해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의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내용이 고스란히 책에서 읽을 수 있었던 부분이다. 역사 속 유명한 인물들, 공자, 석가모니가 거지의 선조라는 것부터 주원장, 한신, 등이 유랑 걸식하다가 성공한 일화는 중국 거지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개인적으로 중국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부분은, “공산당이 존재하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이 나라에서 웬 거지가 이렇게 많은가?”였는데, 『중국 거지의 문화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마오가 거지를 '거지의 옷을 입고 착취계급에 아부한 자'로 치부해 대대적인 거지 단속을 했기 때문에 거지들이 자취를 감췄다가 1979년 경제개혁 이후 다시 거리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책을 덮을 무렵, 중국 영화에 나타난 수많은 주인공들이 떠올랐다. 강호의 무림검객, 영화‘변검’의 주인공 할아버지, ‘현위의 인생’의 시각장애인 등등…….거지처럼 보여도 예술인이고 철학자였던 그들에게 남루한 입성보다 ‘멋’을 느꼈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간다.
『중국 거지의 문화사』는 공부를 업(業)으로 하는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읽기에도 쉽게 쓰인 책이라는 것. 지식을 채워주는 기쁨이 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