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했다. 소설가 또는 작가인 김태용의 프로필을 읽었을 때 말이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것이 소로우의 월든을 뛰어 넘는 시련이 될 거라는 걸 말이다.

김태용은 '루'라는 이름의 텍스트 실험집단에서 활동 중이다. 루의 구체적인 실험에 대해서 아는 바 없지만 기존에 알려진 일반적인 텍스트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를 연구하고 실험하는 미래지향적 집단일테다.  새로운 창작을 위해 뼈를 깎는 고통도 함께 나누는 의미있는 작업일테다. 헌데 창작의 고통은 김태용의 신작 '숨김없이 남김없이'를 집어든 독자들도 같이 나눠야 했다.

겉으로는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왔지만 그 속에서 소설은 겨우 그 맥락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산문시라고 해도 형식과 내용의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단어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문장들도 의미없이 나열되어진다. 내용의 이해는 커녕 읽고 있는 그 단어, 그 문장들도 무척 난해하다. 탈고한 소설이라기 보단 실험하고 습작한 글을 그냥 벌거벗겨 내어 놓은 꼴이다.

읽는 내내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는 무거워졌다.

이 책을 읽기 위해 나를 온전히 불사른 것만 같이 기운이 빠진다. 숨김없이 남김없이.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면 새 단원이 시작할 때마다 국어선생님이 내주던 숙제를 기억할거다. 소재, 주제, 줄거리 요약 등 글에 대한 개요를 정리하는 숙제. 긴 글을 읽고 글에 흐르는 소재와 주제를 파악하고 짧은 단어와 짧은 문장으로 표현해 내는 것은 여러 문장으로 줄거리를 뽑아내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렇듯 '내'가 아닌 '남'인 어떤 지은이가 쓴 글을 읽고 지은이의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읽어내는 것은 그 나라 언어를 말하고 쓸 줄 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김숨은 친절하게도 그녀의 신작 '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을 여기저기 흩뿌려 놓았다. 그냥 처음부터 알려주는 것이다.

생명의 원천인 물로 표현되는 어머니.

욕망의 화신인 불로 표현되는 아버지.

말 그대로 '물과 불'처럼 극과 극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쌍둥이 자매 소금과 금.

그리고 종교에 심취한 결벽주의자 공기

김숨이 꾸린 가족이다. 어느 가족이든 크고 작은 문제 몇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맏딸 소금이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는 문제에 문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갈등이 해결되기는 커녕 더욱 깊어져만 간다. 저수지에서 삼백만톤의 물을 몰아내고 그 위에 불로 집을 세운 아버지는 어머니가 세 딸을 낳은 수족관을 부수고 집을 뛰쳐나간다. 불의 기운으로 식물들이 말라가는 집에서 물인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하지만 묵묵히 삶을 위해 싸운다. 세 방울의 물이었던 딸들이 각각 소금과 금과 공기가 소금이 자신을 견딜 수 있었던 유일한 남자인 혀와 이혼한 후 다시 한 집에 모여 살게 되고 아버지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집 안의 모든 수도꼭지는 담합이라도 한 듯 물을 내놓지 않는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은 갈증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하필이면 이런 때 물인 어머니는 얼음과 물의 중간 상태로 위태로운 생명을 이어간다. 탐욕스런 아버지는 막힌 수도관을 찾는다며 집 안의 벽을 망치로 부수기 시작한다. 화자인 소금은 물의 땅에 물을 몰아내고 불로 지어진 집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에 불안해지기 시작하는데...

책은 이해하기도 읽기도 쉽지 않다. 소설가가 친절하게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는데도 말이다. 김숨은 작가의 말에서도 극히 말을 아낀다. 마치 소설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고스란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겠다는 것처럼.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물'이다.

역사는 정사와 야사로 나뉜다. 정사 (正史)란 왕조가 정통으로 인정하거나 직접 편찬한 역사서를 뜻한다.  정사와 대립되는 의미에서 쓰여지는 야사 (野史)는 개인이 지은 역사서적을 뜻하며 야승(野乘) ·패사(稗史) ·외사(外史) ·사사(私史)라고도 한다. 정사체로 정갈하게 쓰여진 김부식의 '삼국사기'와는 달리 승려 일연에 의해 쓰여져 설화적 내용과 신화적 내용을 불교적 색채로 담은 '삼국유사'는 비록 야사로 분류되어 한때 그 사실성이 의심되기도 했지만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조선유사. 유사 (遺史)의 한자어를 풀이하면 남겨진 일 또는 사건이라는 뜻을 지닌다. 즉, 조선에서 남겨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 바로 조선유사다. 조선유사의 내용은 승자의 기록이라는 역사서술의 한계를 가졌으나 정통성을 인정받은 정사와 야사를 아우르며 형식은  '삼국유사'처럼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서술하는 형식을 취했다. '조선왕조실록', '대동기문'등 여러 문헌을 참고해  인물일화를 통해 조선의 풍습과 어원을 쉽고 재미있게 서술한다. 각 일화마다 우리가 평소에 자주 쓰지만 그 어원이나 유래가 생소한 단어를 골라 별도로 자세히 설명하는 난을 두었다. 동서양 역사, 문화, 풍속, 인물을 연구하여 국내 최초 지식정보사이트인 만물유래사전을 운영하는 지은이의 프로필에 걸맞는 책이다.

 

조선유사는 조선전기, 중기, 후기 총 3장으로 나눠 태조 이성계, 황희, 김시습, 퇴계 이황, 허균, 장희빈박문수,정약용, 김삿갓 등 유명인들의 일화는 물론 양반가의 계집종, 기생의 이야기까지 남녀와 노소,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한 참을 인자 세 번보고 살인을 면한 남자의 이야기로 풀어낸 속담이야기, 영문을 모르다의 영문은 어떤 문인지, 순애보와 독도, 막걸리, 동동주, 모주,엽전, 푼돈, 무일푼, 개평의 어원등도 자세히 나와 있다. 또한 사약의 성분이나 백일장의 유래 , 맞담배가 금기시된 근원등 재미있는 읽을거리들이 가득하다.

 

이 책이 '청소년을 위한 고려유사'의 후속작이라 하니 함께 읽어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