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내가 이 책을 골라집게 되었던 이유는 바로 민음사의 모던클래식이라는 타이틀과 21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라는 저자 자신의 당돌한 자화자찬식 소개였다. 첫 시작은 그러했지만 들여다보니 이 책, 소재부터 한국의 타부라 할 수 있는 동성애란다. 게다가 독실한 기독교인의 동성애라니 파장을 적잖이 일으킬 법도 하겠다. 구성도 소재 못지 않다.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구약성서 8개의 복음서를 제목으로 따왔다. 물론 제목이 그 장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성서를 기독교 맹신주의자, 아니 종교 맹신주의자를 비판하는 매개체로 사용한 것이다.

이 소설은 동성애자인 지넷 윈터슨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꼬리표가 무색하지 않게 지넷이라는 어린 소녀의 성장과정을 그렸다.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고 광적이라 할만큼 맹신적인 개신교도 루이에게 입양되어 선교사로 키워지기 위해 성경과 찬송가와 선교사업에 관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다. 하느님과 교회가 삶의 전부였던,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던 지넷은 루이가 이단자의 소굴, 악마의 소굴이라 부르는 학교에 가게 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갈등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생선 가게에서 수족관 앞에서 생선을 다듬고 있는 멜라니를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되고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이를 알게 된 루이와 교회는 큰 충격에 빠지고 멜라니와 지넷은 혹독한 퇴마식을 치루며 헤어지게 된다. 퇴마식이 있기 전 며칠을 방에 갇혀 굶고 있던 지넷은 어머니와 교회목사가 얘기하던 자신의 악마가 실제함을 알게 된다. 바로 오렌지 악마다. 지넷의 어머니는 오렌지만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완벽한 과일이라며 지넷이 힘들어할 때마다 오렌지를 건넨다. 오렌지 악마는 지넷에게 선택을 강요하는데, 과연 지넷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도 있을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책에서 오렌지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완벽한 과일로 사회적 권위와 종교적 맹신을 뜻한다. 윈터슨의 문장은 도발적이고 당돌하고 기발하다.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 자신을 지목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이 책에서 하나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글의 흐름을 끊어놓으면 중간중간에 불쑥 나타나는 동화들이다. 이 동화들은 하나의 독립된 줄거리로 또는 전체 줄거리를 부연하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소장할만한 책을 만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