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대륙 동쪽 끝자락에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 그리고 그 옆에 '여기까지가 아시아입니다'라고 얘기하며 거대한 대륙을 감싸고 있는 듯한 나라, 일본. 두 나라는 모두 오랜 역사를 지닌, 찬란하고 독특한 고유 문화를 지닌,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나름 잘 나가는 나라'들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하면 한국인들 대부분은 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 36년에 걸친 일제 강점기, 왜곡된 -적어도 한국인의 관점으로는- 사실을 기술한 후소사 역사교과서, 고위 정치인사들의 그칠 줄 모르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정신대 문제 등 부정적인 것들 일색이다. 마치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수 천년에 걸쳐 서로 반목하고 으르렁대며 살아온 것만 같다. 그렇다면 찬란한 문명을 꽃피울 만한 능력을 가지고 서로 잘 살아볼 수 있는 시간을 수 천 년씩이나 가졌던 두 나라가 서로 상생할 생각은 하지 못한 걸까?

2009 년 삼국시대사에서 발간된 시다 이치로오의 역서 '또 하나의 우리역사'는 사학자의 역사서가 아니다. 이치로오는 문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에서 국어(일본어)를 가르치던 교사다. 하지만 그의 저서에 담긴 고조선/죠몬 시대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의 한일사(때론 중국까지 3국을 아우르는)의 내용은 어느 역사서적 못지 않게 방대하며 조목조목 역사적 근거를 들어 사실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제일교포 1세와 재혼한 어머니 덕에 한국인과 친분을 쌓고 일본을 밖에서 한국을 안에서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던, 어찌보면 그의 어린 시절을 암울하게 했을 법한 특이한 이력을 이렇듯 멋지게 승화시킨 저자에게 우선 찬사를 보내고 싶다. 임나본부설의 부당함, 강점기의 무자비했던 문화통치의 허실과 고대 일본인의 한반도 도래설 등 이 책의 내용은 20년 전 일본에서 강점기가 막 끝난 1946년 생 평범한 일본인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친한적 요소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한 일관계는 일제강점기와 같이 삐걱거리기도 했지만 불교를 전파하고 사신을 주고 받고 물건을 사고 팔며 조화롭기도 했었다는 것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다 이치로오가 한 것처럼 어긋나 삐걱거리기 시작한 두 나라의 관계를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이 한국에서도 언젠가 화제거리가 되지 않을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책 첫머리에 명시된, '조선, 조선인, 조선반도'가  '한국,한국인,한반도'로 대체되지 못한 점, 그리고 원문에 나와 있는 일본식 한자를 단어의 뜻을 명확하게 하고자 괄호 안에 넣은 것도 아니라 한글없이 그대로 집어 넣은 점이다. 일본어에 문외한이 필자도 한중일 3국에서 부분적으로 다른 한자가 쓰인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무분별하게 불쑥불쑥 나타나는 일본식 한자는 내용의 이해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 보인다. 단원의 끝에 등장하는 역자의 칼럼을 쓰는 데 들인 시간을 일본식 한자 앞에 한글 단어를 집어넣는데 썼다면 일본어에 익숙하지 못한 한국인을 독자층으로 끌어들이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꿈 꾸는 듯한 핑크색, 알록달록하고 깜찍한 소품들, 그리고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도도하게 서있는 공주님이 그려진 표지만큼이나 이 소설은 달콤하고 깜찍하고 반짝반짝 빛나며 나를 꿈꾸게 했다. 한 편도 보지 못했지만 포털 연예기사면을 도배하며 숱한 스타들을 탄생시켰던 시트콤 논스톱의 저자이며 한국식 칙릿소설 압구정 다이어리와 블링블링의 저자인 정수현의 새 장편소설을 나는 잠도 자지 않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연휴라는 휴식기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인기 미니시리즈를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모두 옆에 쌓아 놓고 다음 회가 궁금해 식음을 전폐하고 모니터 앞에 앉아 울고 웃었던 것처럼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내 눈을 사로잡았고 웃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셀러브리티..명사, 유명인.(네이버 국어사전) 셀러브리티의 사전적 정의는 이름 석자만 들어도 누구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영화배우나 스포츠스타, 정치인 등 유명인사다. 이 소설의 주인공 백이현은 이 셀러브리티들의 가십기사 짜깁기해 잡지를 펴내는 '플러스 텐'(더할 '가'+ 열 '십'= '가십')의 그저그런 기자다.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을 만큼만 명품가방을 할부로 사들이고 11센티미터 킬힐의 높이를 자신의 자존심의 높이라고 믿는, 민주주의 공화국인 대한민국에 태어난 죄로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공주님'을 '샐러브리티'와의 결혼으로 급선회시켜야 하는 비극적 운명을 지닌,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고 5년 할부로 노란색 폭스바겐을 살 정도로 외모지상주의와 허풍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지만 어딘지 허술하고 엉뚱하고 소녀같은 순수함을 잃지 않아 사랑스러운. 이 미니시리즈의, 아니 이 소설의 주인공 백이현의 신데렐라 만들기가 이 소설의 소재다.

우리의 주인공을 신데렐라로 만들어 줄 왕자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이 여자 저 여자와 스캔들을 뿌리고 다니는 싸가지 한류스타 '유상현'이다. 헐리웃 스타 캐리 팍스도 한달이면 지겨워져 차버린다는 전설의 한류스타이자 카사노바 유상현. 하지만 그도 알고 보면 프랑스 요리보다는 김치를 팍팍 썰어넣은 청국장에 더 열광하고 트레이닝 바지입고 맥주캔을 벗삼아 만화책 읽는 털털해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남자다.

어느 날 저녁 백이현은 유상현과 캐리 팍스의 스캔들을 취재로 300퍼센트 인센티브를 받아 카드값을 한 방에 날려보낼 욕심에 우연히 자신의 차 바로 앞에 주차되어 있던 유상현과 캐리 팍스가 타고 있던 차를 받아버린다. 둘을 차 밖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한 이현은 방심한 틈을 타 함께 있는 사진을 찍는다. 당황한 상현은 '그쪽'이 보냈냐며 값을 더 쳐줄테니 사진을 삭제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쪽'이 누군지 모르는 이현은 생각해 보겠으니  연락하라며 자신의 명함을 상현의 차에 던져 버린다. 며칠이 흐른 뒤 회식자리에서 호텔 스위트룸으로 오라는 상현의 건방지고 일방적인 명령하달식 전화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이현은 자신의 차 위에서 곤히 잠든 꽃미남을 발견한다. 이현을 보자마자 배고프다는 황당한 멘트를 날리는 살인미소의 소유자 환은 알고보니 유상현의 조카. 계속되는 우연과 행운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이현은 서로 한 가지 소원씩 들어주기로 하자는 환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이현과 환의 동거 아닌 동거가 시작되는데...

책을 놓을 때까지 이 스토리로 드라마나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이 역할이 누구에게 가장 잘 어울릴까하는 생각에 파묻혀 이야기를 쫓아가는 즐거움이 배가 됐었다. '셀러브리티'가 언젠가 드라마로 방영된다면 아마 나도 닥본사!를 외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