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죽기 5년 전인 1985년 11월 4일 날짜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정말 내가 삶을 이렇게 견뎌내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암이라도 걸려서 그냥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면 안 되는 생각이라고 하지만 분명 누구나 한 번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게 흔히 뉴스에 나오는 학업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고, 금전적 문제, 가족 문제, 연인 문제, 혹은 건강상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유가 되었더라도 타인이 그 힘듦을 예측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모든 복합적인 문제로, 혹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문제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내 머리를 장악하고 있을 때 '너의 그림자를 읽다(어느 자살 생존자의 고백)' 이 책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첫 문장부터 어둡고 어두운 이 책의 문장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내 어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조금 밝아지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의 동생 킴에게 일어난 이야기이자, 킴의 자살을 극복해가는 여정을 그린 에세이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담담하게 쓰여있지만 깊고 어두운 글에서 에세이라는 느낌보다는 조금 막연한 미스테리 소설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게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삶은 동생 킴의 자살하기 전의 세상과 자살한 후의 세상으로 나뉜다. 킴의 자살로 모든 게 바뀌어버린 그녀는 킴의 자살 전의 저자의 기억과 킴의 일기, 학교에서 썼던 에세이 등을 참고하여 침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외에 경찰 기록, 부검 보고서, 문학과 논문 등 자살에 관한 연구를 통해 '심리 부검'으로 킴에게 일어난 일들과 킴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고자 한다.  

 

내가 상처를 주는 거라면 정말 미안해요. 우리 가족 모두를 사랑해요! 정말 많이! 하지만 난 떠날 수밖에 없어요. 외로움에 지쳤어요.'

 

킴의 유서에 쓰인 말이다. 미디어를 통해 자살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오는 유서는 대부분 이런 내용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살하기 직전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거나 자기만의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등 도움의 손길을 어떤 방식으로도 내민다고 생각한다. 킴 역시 죽은 날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멀리 떠날 것이라고 알렸고, 저자의 친구도 죽으려고 수면제를 삼킨 뒤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해 목숨을 건졌다. 한국의 작년 자살 사망자는 1만 5천 명을 넘었다고 한다. OECD회원국 중 1위이고, 하루에 4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퍽퍽하고 고된 삶에 누구나 포기하고 편해지고 싶은 마음을 안고 살아가겠지만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늘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자살 사망자가 줄지 않을까. 현실이 삭막하고 하루하루 내 삶을 이끌고 가기도 숨차는 날들의 연속이라도 주위에 늘 마음을 열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살 유족, 측근들의 인터뷰에서 늘 후회하는 게 바로 관심이지 않던가.

 

 

P. 253

자살하는 사람은 단순히 나약해서, 정신병이 있어서, 혹은 우울증이 있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모든 점들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눈이 멀 정도로 통절한 심적 고통 속에 있으며, 아마도 그 마지막 파멸의 날 자살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P. 312

우리는 어떤 비극들은 우리를 피해 갈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자살은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 다른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겨우 몇 시간 만에 우리 중 누군가가 떠나버렸고,

남은 우리의 삶은 영원히 바뀌어버렸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 때문에 헝거 게임이라는 영화의 개봉 소식도 모른 체 책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표지만 보고도 영화의 원작이구나 바로 알 수 있었다. 책의 첫 인상이 판타지스러워서 그런 내용의 책일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열어봤던 헝거 게임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헝거 게임의 규칙은 간단했다.

반란을 일으킨 대가로 12구역들은 추첨을 통해 매년 소년 소녀 한 명씩을 참가 시켜야 한다, 총 스물 네명의 조공인들은 드넓은 야외 경기장에 갇히게 되고 그 속에서 몇 주 간에 걸쳐 서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그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단 한 명의 조공인이 승리자가 된다.

서로 죽고 죽이게 한다는 이 내용에서 배틀로얄이 생각났다. 하지만 힘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권력층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다시는 까불지 마라'라는 의미의 이 살인 게임은 무턱대고 죽여야 했던 배틀로얄보단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책이었다.  어린 아이들의 목숨을 스포츠 이벤트처럼 포장하는 어른들이란 과연 정상일까. 그 어떤 전쟁 영화를 봐도 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누구를 위해서건 죽고 죽이는 싸움이 그들에게는 과연 승리욕 외에 의미가 있었을까 하는 거였다.

 

 

확률의 신이 언제나 당신편이기를 !

 

헝거 게임 추첨에는 가난한 사람일 수록 뽑힐 확률이 높아지는데 그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더 집어넣으면 배급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캣니스는 총 스무장이, 게일은 마흔두 장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반전은 있기 마련. 캣니스의 동생 프림은 처음으로 참가하는 추첨이고, 배급표를 받은 일도 없었는데 수천 장의 이름 중에 딱 한 장 들어가 있는 프림이 뽑힌 것이다. 결국은 어린 동생 프림 대신 캣니스가 조공인으로 헝거 게임에 참가하게 되고, 그 죽음과 가까운 상황 속에서 로맨스도 나타난다.

 

배틀로얄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영화의 원작이라 그런지 트와일라잇이 떠오르기도 했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니 뒤의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다 읽은 후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상영작이기 때문에 검색만 하면 예고편과 포스터가 떠서 읽다가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주인공들의 이미지와는 조금 갭이 있는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책을 먼저 읽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 보기를 권한다. 그 후 영화를 보며 상상했던 장면들과 비교를 해보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가 있을 테니까.

 

 

 

 

 

 

 

 

 

 

 

 '에스프레솔로지스트' 
커피향이 가득 담긴 듯한 책의 표지가 환절기 붕뜬 마음을 살짝 차분하게 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 크리스티나 스프링거는 우리 나라로 치면 귀여니 같은 청소년물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에서도 어릴 때 읽은 그 10대 연애소설의 느낌이 확연히 느껴졌다. 배경은 커피전문점 와이어드 조, 주인공 제인은 졸업을 앞둔 10대 학생이자 바리스타 부점장이다. 바리스타 일을 하며 노트에 틈틈히 커피를 마시는 손님들의 성향을 적어나가는 제인. 그 모습이 어릴 적 나와 겹쳐보이는 바람에 마치 이 소설이 마치 영화처럼 머리에 그대로 그려졌다. 저 또래에 커피전문점에서 일을 했었고 일을 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들어오는 손님의 표정만 봐도 어떤 음료를 시킬지 예상에 되곤 했었는데 제인 역시 그런 느낌을 노트에 기록하고 있었다. 습관이자 취미로 시작한 그 커피와 사람에 대한 통계가 어쩌다 보니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제인은 에스프레솔로지스트 라는 사랑의 큐피트가 된다. 커피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이고, 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다른 어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은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스치듯 한두 번 쯤 해보았을 것이다. 제인의 이 커피를 이용한 소개팅 주선은 친구들을 시작으로 손님들 까지 백발백중으로 성공해 결국 일이 엄청나게 커지게 된다. 읽으면서 참 소녀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이 책을 커피전문점에서 썼다고 한다. 카페에서 바리스타들과 손님을 관찰하면서 집필을 하고 있을 작가의 모습도 눈에 그려진다. 하이틴 배우들이 나오는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듯한 스토리는 소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 같다. 그 주제가 커피라는 매력적인 점도 있으니. 

아이스 바닐라라떼, 미디엄사이즈 :

똑똑하고, 선량하고, 신사적임. 말투가 부드럽지만 남에게 만만하게 보일 타입은 아님. 신실하고 신뢰가 감.

좋은 친구. 품위 있는 외모를 지녔음

 

드라이 카푸치노, 미디엄사이즈 :

똑똑하고 소탈함. 탄탄하고 예쁘장함. 살짝 수줍음이 있고 말투도 부드럽지만 때에 따라선 에너지가 넘침. 좋은 친구.

 

 

에스프레솔로지스트 제인이 처음 이어준 커플의 커피 취향이다. 사실 커피 애호가로서 인정할 수 없지만(?) 제인은 이렇게 기록된 노트의 기록을 바탕으로 오십 쌍 이상의 커플을 이어준다. 손님들의 나이도 연령도 직업도 성적 취향도 가지 각색이다. 읽으면서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걸 하면 재미있겠다 싶었지만 내가 사는 도시는 수도권에 비해 아직도 많이 보수적이어서 대대적인 에스프로솔로지스트 이벤트를 한다고 해도 100%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서울 대학가 어딘가에서 이런 이벤트를 한다면 재미있게 성사되지 않을까? 문득 상상을 해보니 TV프로그램 '짝'이 생각난다.. 이건 아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