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가며 처음 느낀 건 오래된 이야기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가 딸에게 조언해주는 듯한 형식이지만 여자의, 아내의, 어머니로서의 삶을 조언하는 부분에서 조금 구시대적이라 느낀 것 같다. 저자는 1892년 생으로 1900년대 초반에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시대를 알고 보니 그녀의 글들이 와닿기 시작했다. 

 

 초반의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적힌 부분에 대해서는 옛날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그녀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페미니스트의 표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교수가 된 그녀는 어쩌면 동양의 지나친 남녀불평등과 당연한 듯 여겨지는 여성의 희생을 직접 피부로 느끼며 갈증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 또한 그런 삶에 이미 익숙해져있음을 글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들을 곱씹어보면 여성으로서의 자존감, 그 어떤 것보다 그게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결혼, 출산과 동시에 무너지는 자아실현의 꿈이나,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을 하다 남는 시간에 영화를 보거나 수다를 떨거나 쇼핑을 하는 등의 나태하게 풀어지는 여자의 삶에 저자는 자칫 분노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정과 남편이 다가 아닌, 집요정이 되는 게 삶의 끝이 아닌, 고등교육을 받은 자신을 더 갈고 닦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분명 그것이 사회적으로 쉽지 않고, 육아와 사회활동을 함께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여성의 오랜 직장생활이 평탄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으며, 육아와 가사일의 잣대는 여전히 여자에게 향해있어 똑같이 남녀가 사회활동을 하더라도 육아와 가사일에 대한 죄책감을 당연하다는 듯이 여자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책에서 든 대부분의 예는 중국이었으나 동양권 문화 대부분을 나타내늣 것 같았다.

 

 저자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으나, 그때의 차별과 지금의 차별이 다르지 않다는 것에 여자로서 화가 난다. 사회적인 대책은 전혀 생겨나지 않음에도 여성들은 점차 자기의 권리를 찾으려 나서고 있다. 그 힘든 과정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부디 여성들도 자신의 권리를 찾고, 결혼과 출산 후에도 자신의 능력과 지성으로 삶을 직접 만들어나가는 게 욕심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가 오길 간절히 바란다.

 

 

 

 

 

 

 

어떤 삶을 살든, 여자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

 

 

 

이 책의 부제는 프롤로그에 나와있는 첫 문장인 '내가 다시 서른 살로 돌아간다면'인 것 같다. 라디오 여성시대 작가로 22년째 활동하고 있는 30년차 방송작가의 인생이 담겨있는 책이라고 해야할까. 큰언니가 막내동생에게 말을 하듯, 엄마가 엄마가 된 딸에게 이야기하듯 책의 이야기는 편안하게 이어진다. 한편으로는 라디오 여성시대를 글로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p.48

아무것도 하지 안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p.50

좋아하는 그 일을 해야 한다고, 힘들고 어려워도 잊지도 말고 잃어버리지도 말고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나에게 그 여인은 가르쳐 주었다.

 

'나는 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해. 세상도 사랑해. 그러니까 나는 독립적인 거지, 외톨이는 아니야. 그러니까 나는 인디펜던트야.'

 

 

이 책의 저자가 돌아간다면 바로 잡고 싶은 것이 많다는 그 나이 서른, 바로 지금의 내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백퍼센트 공감하며 읽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나는 아직 미혼이고 자녀가 없고 엄마와 아내, 가정적인 여자와 독립적인 여자 그 중심을 잡으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한다해도 머지 않아 고스란히 전해져올 갖은 고민들에 대한 현실적 방안은 아니지만 심리적인 조언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미 결혼해 자녀가 있는 친구들 중 집안일, 육아, 시댁스트레스 등에 찌들어 한숨이 숨이 된 친구들이나 사촌언니들에게 이 책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녀들이 읽는다면 내가 읽은 텍스트가 왕언니의 조언이나 위로로 더 가까이 와닿았을 것이다.

 

 

p.244

어차피 살아야 하는 인생이고, 이왕 해야 하는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즐겁고 재미있게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게다가 우리 인생은 꽤 길어서 즐기지 못하면 버티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일이든 취미든 즐기고 싶다면 차범근 감독의 조언을 기억하자.

"어른 개구쟁이가 되어라!"

 

p.247

우리는 저마다 '나'라는 작품을 만들어 가는 조각가다. 그리고 '나'라는 작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격렬하고 뜨거운 위기가 지나간 뒤에야 진정한 나만의 색이 나타날 테니, 지금은 견디는 시간이며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나'의 원재료인 돌덩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뚫어지게 살펴볼 시간이기도 하다. 죽기 전까지는 '나'라는 작품이 어떻게 완성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매일매일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조금 전 티비에서 아이 셋의 엄마가 울먹이며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며 자신의 꿈이나 목표는 없이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아무도 그 이야기에 반대되는 이야기나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글썽이는 눈물에 끄덕이는 모션만 취했다. 나는 그녀와 나이는 별로 차이나지 않지만, 이제 더는 부모가 먼저 되었다고 어른이 먼저 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여자라고 해서 어머니라고 해서 인생을 그리지 못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제발 더는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가두고 내려앉히며 남편과 자녀들에게 자신의 희생을 먹고 자라는 사람들인  것처럼 무게를 떠넘기지 말고 함께 머리와 힘을 맞대고 스스로의 인생도 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의 글귀처럼 나 자신이 어떻게 완성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 끝을 너무 쉽게 단정짓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분명 자녀에게도 여자로서의 삶이나 자신으로 살아온 삶의 스토리가 있는 어머니가 더 멋있고 존경스러울 것이다.

 

 

p. 302

미국의 심리학자 벌허스 스키너는 "노년은 낯선 타국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 그곳에 가기 전에 준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여행이 더욱 즐거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p. 303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에 열심히 빠져 살아왔다. 그러므로 언제든 다시 빠질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철없는 어린아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다시 어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지고 있던 동심이 열심히 사는 동안 잠시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버리지만, 어느 순간 그 동심을 다시 꺼내 시동을 걸어야 삶의 행복에도 불이 들어오는 것이다. 엄마와 아내로 살면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평생 고민하고 힘들게 살아야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속에 동심을 유지했으면 한다. 어린아이처럼 무언가에 호기심을 갖고, 늘 작은 것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배운다면 분명 그 순간순간이 쌓여 노년이 되어 돌아보았을 때 스스로에게 가득찬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들려주었을 때의 기쁨을 상상해보았으면 좋겠다.

 

 

여자로서의 보편적인 삶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나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많지만, 지레 겁먹고 벽을 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이 책의 이야기들을 마리 라디오 사연처럼 읽으며 조금은 마음 편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은 이런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되어 '여자'로서의 독립적이고 이상적인 삶이 더는 욕심이나 상상만으로 남지 않고 당연한 인간의 삶으로 여겨지기를 바래본다.

 

 

 

 

 

 

 

 

 

 

 

"나는 죽었다는 말이 겁나지 않아요. 어차피 모두 죽는 거잖아요.

죽음은 별거 아니에요. 슬프긴 하지만 대단한 건 아니에요."

 

 4살 아이가 했다는 말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할 말이다. 슬프긴 하지만 대단한 건 아니라는 말.

늦은 새벽 불편한 슬픔에 뒤척이며 이 책을 보다가 이 문장에서 저 어린아이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아직 아기인 4살. 이제 막 함께 놀기 시작한 2살 동생의 퇴행성 희귀유전병을 어린 가스파르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낫지 못하고 점점 더 온 몸의 기능을 잃어가는 동생을 죽을 때까지 옆에서 보았을 여린 네 살의 마음이 책 속에는 다소 무심한 듯 적혀있었지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게 와닿았다. 평생 잊지 못할 그 기억을 이 어린 아이가 혹여 스스로의 탓이라 여기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하듯 읽어야 했다. 

 

 2살짜리 어린 딸의 예고된 죽음까지 정신 없이 달려야 하는 지옥 같은 생활 속에, 또 같은 병의 셋째 딸까지 태어난 그 부모의 세상은 절반도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 지옥 같은 생활의 연속이지만 절대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지옥. 조금만 더 이어졌으면 하는 지옥이라니. 그 속에서 상처 받지도 무너지지도 않고 그 또래 아이처럼 자라주었으면 하는 4살 첫째까지. 도미노 같은 하루하루를 위태롭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나가는 저 다섯 명의 가족은 슬프다는 생각보다 멋지다는 생각이 더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행복.

 

 기능을 하나 하나 잃어가다 결국 보지도 듣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지만 웃음과 사랑만은 잃지 않는 아이 타이스. 아픈 동생 때문에 어린 나이에 보살핌보다 보살펴주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해서 버겁고 힘들었지만 동생의 마지막을 지키고 싶어 했던 가스파르. 힘든 상황에도 절대 서로를 탓하거나 괴롭히며 무너지지 않았던 엄마 아빠, 묵묵히 도와주며 힘을 주었던 그들의 수많은 가족과 친구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것 같은 병원의 제도들과 의료진, 간병인들.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떠난 어린 타이스는 절대 불행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엄마의 바람처럼 분명 아기의 짧은 삶에 사랑만은 충만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고찰

 

4살 아이의 놀라운 말처럼 나 역시 죽음은 무섭거나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나 자신의 죽음에 한한 생각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이런 이성적인 생각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약 예고된 죽음을 맞는다면 내 주위 사람들은 아주 잠깐만 슬퍼하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이별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죽음은 어쩌면 또 다른 자유의 시작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