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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 워크(Random Walk)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창시절부터 남들과 똑같은 획일화된 삶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쳐온(?!) 
김.태.훈.에 관한 책으로 팝 칼럼니스트이면서도 영화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책에 대한 욕심을 축으로 하여 미디어를 종횡 무진하는 김태훈, 
그의 인생에 대한 자잘한 기억과 바램의 꿰 맞춤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기억의 단편 하나 하나가 영화와 영화인, 음악과 음악인, 
책과 작가와 닿아있음은 물론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김태훈의 모습은 
즐겨 듣는 라디오의 고정게스트일 뿐이었다.
젊어서 음반사에서 일했던 팝 칼럼니스트의 모습이 전부였던 셈이다.

바꿔 말하면, 영화잡지에 실린 그의 글을 읽어본 적도 없고, 
그가 들려주는 연애 상담을 읽어본 적도 없고, 
텔레비전에 출연한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단 말이다. 
그냥 단순히 라디오를 들으면서 '재미있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던 그가
실제로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길래 그 궁금증에 책을 펼쳤다.

무비위크 편집장의 추천사에 따르면 그는 '제법 놀 줄 아는 날라리'이고 
이 책은 그 날라리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다. 
또, 배철수 아저씨의 말을 빌자면, 
"내(배철수)가 아는 사람 중 쓸데없는 걸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친구 중 하나'로 
실제로 그의 글을 읽고 있자니 음악, 영화, 연애, 그리고 책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그의 관심사가 아닌 것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브래드 피트의 몸매에 열광하며 식스팩을 기르기 위해 운동하고 
등산과 스쿠버다이빙을 취미로 하는 남자. 
아니, 이쯤하면 무슨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닐까?

사실 음악과 영화, 그리고 책까지는 서로 맞닿은 부분이 있으니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만,  미안하지만... 연애 카운슬러라는 말에는 
왠지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본인 말대로 마흔이 넘은 독신남이 누구의 연애사를 상담해준다는 말인가? 
결혼을 안 했다고 연애 상담하지 말라는 법은 없고, 또 못할 것도 없긴 하지만.

이 책은 총 4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든 이야기가 짐작대로 
영화와 음악을 배경 삼아 쓰여졌다. 또, '이 사람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에로 영화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을 시종일관 대놓고 드러내고 있어, 
지나친 솔직함에 뭐라고 딱히 반응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와 강동원 주연의 영화 <M>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가 하면
커트 코베인의 기일에는  지인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단체문자를 보내놓고 
답장 하나 받지 못해 서글퍼하는 남자. 
아, 그를 규정하는 단 하나의 형용사를 골라내기가 힘들 수밖에!

참, 김태훈의 학창 시절을 비롯해 가정사와 그가 하는 일을 들여다보면서 
그와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단 한 명의 여신'이라며 올리비아 뉴튼 존을 추앙하는 그의 모습에
나 또한 내 어린 시절을 잠식하고, 아마도 내게 있어서도 '최후로 기억될 뮤즈'로 
기억될 것이 분명한 가수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 그녀, 올리비아 뉴튼 존. 
그녀를 향한 애타는 눈빛의 어린 김태훈과 쉰 살을 훌쩍 넘긴 채 
이 땅에 내한공연 차 방문한 그녀를 차마 볼 수 없던, 
그녀를 볼 기회를 거부하고 방 책상 앞에 앉아 그 옛날 즐겨 듣던 CD를 
몇 번이나 반복해 듣고 있는 성인 김태훈의 모습이 내 눈 앞에 오버랩된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그녀의 내한공연을 직접 가서 
보기를 거부한 김태훈을 이해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으나, 
글쎄 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한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으니. 
나 또한 20년 동안 기다리지 않고 그 전에 만나보지 않았더라면
훗날 쉰 살이 훌쩍 넘은 나이로 우리나라를 방문해올지도 모를 그를 차마 보러 가지 못하고,
아니 그와 마주하는 걸 애써 거부하고 방에서 혼자 그의 cd를 꺼내 들으며 
그가 써 내려간 노랫말을 곱씹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아마, 그날 김태훈은 올리비아 뉴튼 존의 노래를 맨 정신으로 듣기 힘들었을 것 같다. 
아닌가?

김태훈. 말을 너무 재미있게 잘해서 눈이 가던 사람. 
그래, 국제도서전에서 마크 레비와의 대담을 천연덕스럽게 진행해내던 그였다. 
그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가? 
사실 마크 레비와의 대담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니, 왜?'라는 실망 섞인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날 대담 이후로 나는 주변에 온갖 그의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던 점을 인정해야겠다.

아, 그는 참으로 재미있는 사람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은 너무 큰 기대를 해서였을까... 
어디에 무언가 빠진 것만 같은 아쉬움이 약간 남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에게 쉽게 등이 돌려지지는 않는다.

 

#201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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