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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건 음악이건 책이건 상을 받은 작품이라면 어려움 없이 큰 감동을 얻는 경우가 드물다.
이 작품으로 데뷔해 2010년 퓰리처 상을 거머쥔 폴 하딩 역시도 수려하지만 결코 녹록하지 않은
문장들로 독자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이야기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시계 수리공,
조지 크로스비의 최후의 8일 간의 기억을 쫓는다. 그 축에는 주인공 조지와 그의 아버지 하워드, 그리고

하워드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할아버지인 새뮤엘이 있다. 이 작품이 유난히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폴 하딩이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기법을 사용한 데다 작품 곳곳에

수사적 장치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먼저, 3대의 직업부터 보면, 조지는 시계 수리공이고, 하워드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땜장이(팅커tinker)고, 새뮤엘은 목사다.

우리는 이 책으로 죽음을 코 앞에 둔 한 노인의 생의 마지막 8일 간의 여행길에 동행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 또 기억되는 것들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애정이 온 몸을

휘감고, 이미 오래 전 이별한, 그때 그 시절을 공유했던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쳐 오른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얼굴이 있고, 버거웠던 순간들에 대한 기억도 이상하리만치 뚜렷하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불확실성은 아름다운 것이며 더 큰 확실성의 일부라는

것을 기뻐하란다. ’모든 것은 파괴되기 위해 만들어져. 어떤 것이 경이롭다면 그것이 아직 파괴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운 거야. 아니야. 그는 생각했다. 어떤 것이 경이롭다면, 애초에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운 거야. 이 만들어지고 부서지는 엄청난 변화를 넘어 계속

유지되는 것은 무엇일까? (p. 147)’

조지는 평생을 시계추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원하던 대로 시간이라는 그 유한한 대상(시간)을

거스르던(되돌리던) 인물이다. 그러나 병에 걸려 망가진 태엽이 풀리고 , 납추가 돌이킬 수 없이

아래로 내려오는 지금, 조지는 시간과 생의 유한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시계는 생의 유한함을

의미하고, 폴 하딩의 서정적인 문체는 독자를 삶과 죽음의 뚜렷한 듯 하면서도 모호한 그 경계 너머로

데려다 준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 하워드는 땜장이다. 땜장이 tinker란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면서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또는 이런저런 물건을 파는 사람을 뜻한다. 하워드는 간질을 앓았는데,

어느 날은 발작 중에 아들 조지의 손을 물어 뜯어 큰 상처를 남겼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내의 화장대

위에 놓인 정신병원 브로셔를 발견하고 집을 나간다. 즉, 본업 자체가 땜장이였던 하워드는 간질로

인해서도 평생을 이곳 저곳을 떠도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하워드가 평생토록 한 땜질이

우리가 평생토록 살아가면서 하는 일련의 그 모든 행위와 무엇이 다를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가 애초에 계획했거나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은 모든 것들을 바로 잡으려는 일련의 그 모든

땜질 말이다. 우리의 하루하루,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완성된 우리의 삶이란 저마다의 크고 작은

땜질로 점철된 것과 다를 바 없는지 모른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억할까? 죽음이 코 앞에 닥치면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던데 조지 크로스비도 마찬가지다. ’조지 크로스비는 죽으면서 많은 것을

기억했지만, 그 순서는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p.22)’ 우리는 시종일관 무작위적으로 기억나는

조지의 과거의 삶의 단면들을 만나게 되는데,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 조지가 가장 애틋하게

기억하는 대상은 단연 아버지와 할아버지다. 비록 간질에 걸려 내 손을 물어뜯은 아버지이고,

그로 인해 그에게서 도망가려 애를 쓰기도 했지만 말이다. 조지는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며

자신을 기억할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삶의 기억들, 그 편린들을 하나씩 녹음 테이프에 담지만,

녹음을 마친 후 들어본 테이프에 담긴 것은 말을 더듬는 노인의 소리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대목이 많지만, 이 녹음 테이프가 나온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빛과 희망의 세계의 상실’을 확인한 조지는 소리 내 울고 만다. 내가 조지였다고 해도 테이프

속에서 들려오는 그 불완전한 발음과 쓰러져가는 늙은이의 목소리에 눈물이 솟구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 속으로 테이프를 던져버린 조지가 맛봤을 상심이, 아픔이,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이 마치

내 것처럼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조지의 말대로 삶이라는 것, 즉 우리의 일생은 타일 조각 하나하나가 모인 거대한 타일 덩어리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한 번에 한곳에서만 움직여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이 사이가 비어 있어 언제든 움직일 수 있고, 또 그 움직임은 멈추지도 않는다. 아쉬운 점은 평생토록

그 타일 조각의 틈을 메우려 애를 쓰지만 마지막 조각이 들어맞는 그 순간 정작 본인은 완성작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평생 그 빈 공간을 메워왔지만 나 자신이 아니라 뒤에 남겨진 자들을 위해

완성된 타일 덩어리를 보지 못한 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역시도 조지의 말이 맞다. ’나의

타일들은 대체로 함께 뭉쳐 있지만, 또 다른 전체 속을 움직여 다니며 무한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기억과 섞일 거야. 따라서 나는 다른 사람의 틀 속을 둥둥 떠돌아다니는 다른 모든 유리질 사각형들과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린 한 무리의 인상들로 남겠지.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의

나머지 시간을 위해 남겨둔 공간이 있을 테니까. (p. 81)

이 작품은 참 감각적이다. 단어들이 훌륭한 재단사를 만난 덕에 저마다 두 겹 세 겹의 비단 옷을

입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탓에, 처음엔 그 비단결에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그 다음엔 그 속에

숨겨져 잘 보이지도 않는 실루엣을 찾아내느라고 바쁘다. 어려운 작품이지만 폴 하딩이 곳곳에

숨겨놓은 수사적 장치로 인해 작품은 더없이 아름답고,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처럼 시각적인 효과도 크다. 게다가 귓가에는 ’땅, 땅, 띵, 띵, 띵, 땅따당따당’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이 작품은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총동원해서 읽게 되는 그런 책이다. 물론 몇 번 더
읽어봐야 좀 더 제대로 이 작품을 감상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 너는 어디로 사라졌느냐?

저 반짝거리는 것들 수백만 개 가운데 너는 어디에 속해 있느냐?

네가 고되게 일하고 물건을 팔러 다니고 땅에 쓰러져

잡초 속에서 몸부림치는 곳이 도대체 어디냐? (p. 92)

우리가 이 세상에서 편치 않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 세상이지만 여기에는 갈등이 가득하고, 따라서 우리가 우리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갈등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조차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안 그런가? (p.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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