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기업협회 BSR(Business for Social Responsibility)의 대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 아론 크래머(Aron Cramer)와 세계 경제와 정치를 분석하는 한 리서치의 대표이사이자 CNN 뉴스프로그램의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자카리 카라벨(Zachary Karabell)이 공동으로 집필한 책이다.

 

이 두 사람은 ’2020년 세계를 선도할 10대 기업’을 발표했는데, 그 리스트에는 월마트, 구글, 듀퐁과 같은 유명 대기업에서부터 중국과 스페인, 그리고 브라질의 마케팅 회사 등이 포함됐다. 그럼 이들 회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지속가능한 탁월성(서스테이너블 엑설런스: Sustainable Excellence)다. 이들 기업은 투자자, 고객, 종업원 모두에게 가치를 선사하는 기업으로 커뮤니티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천연자원을 현명하게 이용하며, 투명한 운영과 기업 내외부적으로 폭넓은 협력(파트너쉽)을 바탕으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나간다.

 

지속가능성 트렌드와 전반적인 세계적 트렌드가 서로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지속가능성에 집중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변화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고, 미래의 시장 기회를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된다. (pp. 62~63) 

’복원력’이 최근 몇 년간 경영계에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기업이 몰락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해 트렌드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과 그것을 예측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략 컨설턴트 게리 하멜Gary Hamel의 말대로 "복원력은 과거를 지키는 게 아니라 미래를 지키는 문제와 관련"돼 있는 것이니 말이다. 오일쇼크 사태를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사전에 대비했던 셸은 2050년도를 예상하는 2가지 에너지 시나리오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하면, 저개발국가 어린이들의 노동착취로 전 세계로부터 뭇매를 맞던 나이키는 컨시더드 제품을 출시하면서 어느새 지속가능한 기업의 대표주자로 탈바꿈했다. 뿐만 아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 역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리더로 2015년까지 모든 커피를 지속가능한 생산업체들로부터 공급받고, 모든 컵을 재사(활)용할 것이며, 회사의 종업원들이 커뮤니티 봉사 활동에 참가할 것을 약속했다. 또, 건물을 시원하게 만드는 기기를 팔기보다는 시원한 건물을 짓고 싶다는 연 매출 5억 달러에 달하는 브로드 에어 컨디셔닝의 창립자이자 CEO인 장 유예는 제품보다 고객의 욕구를 우선 생각하는 CEO다. 그의 회사는 기존 제품을 변형하고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신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수익을 내고, 혁신적이고, 경제적 원칙을 따르고, 성공적인 지속가능 전략을 가져야 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탁월성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인데 앞서 언급한 회사들 모두가 바로 이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기업들에게 지속가능한 탁월성을 필요하게 만든 건 첫째, 세계 경제를 뒤흔들어 놓은 금융위기, 둘째, 이머징 세계의 부상, 셋째, 경제성장과 천연자원 소비 사이에 시급한 탈동조화가 서로 맞물린 세계에서 흑자를 내야 한다는 단순한 필요성 때문이다.  (P. 51)

 

올 여름 지긋지긋할 정도로 내리고 있는 이 비는 기후변화의 시작이자 결과이고, 자원고갈에 대한 염려와 불안 역시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오늘날처럼 변화의 양은 많고, 폭은 넓으며, 깊이는 깊은 때에는 제 자리, 제 위치를 보전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일정 수준의 자금력을 확보하고 있고, ’무리로부터 앞서나갈 줄 아는’ 훌륭한 CEO와 시나리오 플래닝에 능한 인재(팀)들이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찾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가졌다면 제 아무리 시대의 흐름이 숨가쁘고, 경쟁업체들이 하나 둘 쓰러져 가는 상황이라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책에 언급된 수많은 회사들 중에서 우리의 기업들은 어떤 사례로 남을까? 모두들 ’녹색’과 ’친환경’을 외쳐대지만 그저 멋내기용 장신구처럼 ’생색내기용’ 혹은 ’겉치레용’은 아니었는지? 우리 기업들의 수준은 애석하게도 아직 마케팅과 PR전략에 머무르는 것에 불과해 보인다. 나이키가 전 세계 의류 노동자 노조와 긴밀히 협조하는 것, 또 세계 최대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NGO와 제휴를 맺으려 노력하는 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우리도 정부와 기업이 정보와 전문지식에 대해 독점력을 행사하던 이른바 20세기의 ’대형 기업, 대형 언론의 시대’를 거쳐, 기업과 정부와 시민사회가 각각의 장점을 결합해 생활수준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천연자원을 보존하는 강력한 경제를 만드는 시대로 이동해 가는 과도기에 있는 걸까?

 

엊그제 경제 5단체장과의 만남에서 홍준표 대표가 말한 것처럼 우리처럼 특히나 대기업 위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그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데 이날 회동이 별 소득 없이 끝났다고 관련 기사들은 하나같이 전한다. 물론 특별한 약속이라거나 어떤 특정한 액션을 기대하기는 무리겠지만 지금처럼 사회 안팎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시기에는 누군가 혹은 어떤 기업이 먼저 앞으로 튀어나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광고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고 그 가치를 실행해서 보여주는 것, 지금 우리에겐 바로 그것, 그런 사람, 그런 조직이 필요할 텐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역시나 더욱 관심을 쓰게 만드는 건 바로 중국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지속가능성에 있어 중국은 광범위한 세계적 트렌드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자 트렌드 결정자(P. 129)’라고. 결과적으로 중국에서 지속가능성의 전개 방법과 이유를 관찰하면 전 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탁월성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중국 국내 혁신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속가능성’. 독창적이면서도 친환경적인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여러 중국 민간 기업들에 대한 세계적 주목현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서스테이너블엑설런스, 지속가능성

대가의 손끝에서 나와서일까 쉽지 않은 주제인데도 신기하리만큼 술술 읽힌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빨리 읽히고, 주제 역시도 이미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적 있는 친숙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적잖이 낯설게 느껴진다. 낯익은 듯 하다가도 어느새 한없이 낯설게 느껴지고, 낯설다가도 어느 순간 익숙하게 다가오는 그런 기묘한 느낌의 소설이다.

 

어느 토요일 자명종 소리에 잠에서 깬 주인공 K는 아내와 딸을 비롯해 익숙했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전혀 낯설게 다가오면서 이질감을 넘어서는 공포감에 맞닥뜨리게 된다. ’자명종은 낯이 익지만 어제까지의 자명종이 아니다. 아내 역시 낯이 익지만 어제까지의 아내가 아니다. 딸아이도 낯이 익지만 어제까지의 딸아이가 아니다. 강아지도 낯이 익지만 어제까지의 강아지가 아니다. 스킨도, 휴대폰도 어디론가 발이 달린 것처럼 제 스스로 사라져버렸다. 이 돌연변이의 기이한 현상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기인된 것일까. (pp. 54~55)’

 

익숙한 것들로부터 거리감이 느껴지면서 그것들이 그저 어렵고, 부담스럽고, 불쾌한데다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때가 있다. 겉모습은 예전과 다를 바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딘가 달라진 게 분명하다고 느끼게 되는 그런 순간 말이다. 어느 날 문득 주인공 K는 익숙한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어그러진 일상에서 혼란을 느끼다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데, 사건의 발단이 된 휴대전화 분실사고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정체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는 것이 흥미롭다. 어느덧 필수품이 된지 오래인 휴대전화의 가장 근본적인 기능은 나와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일상이 낯설게 다가온 어느 날 타인과의 연결 고리가 분실됐고, 그것을 다시 찾는 과정에서 그 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잊고 살아온 내 자신을 되찾게 된다? 그런데 오랫동안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았던 것처럼 계속 그렇게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게 나은 건지, 아니면 그것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적어도 삶의 주체인 나만큼은 그 존재를 알고 살아가는 게 더 나은 건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할 때, 나라면 과연 어느 쪽을 택하게 될 지 글쎄 쉽게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다. 그 과정은 분명 K가 그랬던 것처럼 아프고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에.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에 ’우리는 책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책이 우리를 보는 건지도 몰라.’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말이 떠올랐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빨리 읽히는 문장들 덕에 "읽기"행위에 할애된 시간이 현저히 줄어드는 만큼, 적어도 그 이상의 시간을 곱씹게 되는 그런 책이다. 익숙한 일상의 모든 것들을 압축해낸 문장과 무심히 뽑아낸 단어 하나 하나에는 수사적 장치가 덧씌워져 낯섦과 익숙함이라는 둘 사이의 간극에 빠지고 만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도 그렇고, 읽고 나서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이 맴돌지만 이내 같은 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 나 역시도 뫼비우스의 띠를 부지런히 기어오르는 개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뭔가 떠오르는 것 같다가도 이내 같은 자리를 맴돌고 마는 그런 답답함을 떨쳐 버리기 어려운 상태에서 결국 <POWER OFF>가 되고 만다.

 

 

나는 뫼비우스의 띠를 기어가는 개미다. 내가 가는 이 현상의 띠는 안과 밖이 없고, 시작과 끝도 없다. 두 개의 직사각형으로 보이는 띠는 실제로는 180도 뒤틀린 띠의 연결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K에게 있어서 이 모순된 가상현실의 이중성은 누군가에 의해서 180도로 뒤틀린 왜곡된 현상일 뿐인 것이다. (P. 292)’

 

 

 

 

"나는 모든 유혹을 멀리하려 했네. 꿈과 그리움, 그리고 외로움만이 나의 벗.

오, 저주! 소유로 인해 불행하리니. 실재하는 모든 것이 나의 꿈을 짓밟는구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로 우리에게도 이제 제법 친숙해진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이다.

『백설공주-』와 마찬가지로 감성적인 피아와 직관적인 보덴슈타인 두 형사가 사건을 풀어나가는데,

두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여러 면에서 비슷하게 느껴져서인지 전체적인 느낌이 둘이 많이 흡사하다.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6월의 어느 날, 동물원에서 고등학교 교사이자 도로확장을 반대하고 동물보호를 외치던 환경운동가 파울리의 시체가 발견된다. 자, 범인은 누구일까? 도로 확장을 추진하던 보크컨설트? 혹은 그들과 함께 일해온 정부 기관이나 시의원? 그가 1점 차이로 졸업 시험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미국 대학 입학이 좌절된 학생? 사망추정 시간에 그의 집 앞에서 목격된 의문의 여고생? 동물학대로 공격받던 동물원장? 오래 전부터 앙숙으로 지내온 가구점 사장? 재산분쟁을 하던 전 부인? 아니면 베일에 싸여 어딘가 찜찜한 미남 청년, 루카스? 

 

이 작품도 그렇고 『백설공주-』도 그렇고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끔찍한 살인사건의 발생에서부터 해결에 이르는 전 과정에 인간의 그릇된 욕망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비극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큰 무리 없이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모두가 하나되어 자국 팀을 응원하던 그 흥분과 열정이 채 식기도 전에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살인사건 발생 그 자체보다 더 가공할만한 것은 마을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용의자가 된다는 점이다. 원한을 품은 상대의 계획적 살인도 아니고, 사이코패스의 충동적 살인도 아니고, 피해자와 직간접적으로 얽힌 모든 이들이 용의자가 된다니 이 얼마나 황당하고 또 끔찍한 일인가?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에서부터 (전)부인은 물론 동물원장에서 시의원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모두들 충분한 살해동기를 갖고 있다. 그들 모두 경찰의 추궁 앞에서 저마다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죽인 ’잠재적 범인’으로 의심 받는 이 상황 자체가 아닐까?

 

루카스와 피아가 쾨니히슈타인 성에서 락 콘서트를 보며 나누던 대화에 헤르만 헤세의 시의 한 구절이 인용되는데, 그 시에는 소유와 집착이라는 이름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결국 그 덫에 걸려버리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마음 깊이 기다렸던 입맞춤도, 오랫동안 뜨겁게 갈구했던 밤도 내 것이 되었네.

그러나 이미 떨어진 꽃잎일 뿐.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원하며 기다려온 일도 정작 현실이 되고 나면 싫증 내고 또 실망하면서 그보다 더 많은 것 혹은 그와 전혀 다른 것을 원하고 바라고 또 손 안에 넣기 위해 노력하는 게 어디 루카스뿐이며 타우누스 마을 사람들뿐일까? 그 모든 헛된 노력의 대가로 결국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주고 공허함만 한 가득 얻게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모든 유혹을 멀리하려 한다. 물질적 소유는 행복을 주지 못한다"며 애써 헤세의 말을 인용하던 루카스가 어느새 피아와 성벽을 따라 걸어 내려오는 길에 날름 말을 바꿔 "전 많이 바라고 많이 얻고 싶어요."라 말하던 모습이 어째 낯설지 않다. 어쩌면 나, 그리고 나와 "너무 친한 친구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는지...

 

한 가지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자 용의자 중 하나인 남자주인공, 루카스 말이다,『백설공주-』에서 토비아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에서도 루카스는 "엄청난" 꽃미남이고, 머리가 좋고, 집안도 좋고, 당연히 인기도 많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에는 원래 이렇게 토비아스와 루카스 같은 엄.친.아.들이 매번 등장하는 건지 새삼 궁금해진다.

 

 

 

원서 표지: 이번 살인사건의 배경이 된 성(의 문)을 나타낸 표지나 살인사건에 쓰인 밧줄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표지나 둘다 음침하고 무서운 건 마찬가지다. 인간의 뒤틀린 욕망을 표현한 것으로는 아무래도 밧줄이 가장 와닿지만 너무 드러내놓고 있어 좀 부담되는 표지이긴 하다. 국내 표지는 뒷면에 살짝 보이는 손이 인상적이다.    

 

 

 

 

 

 

 

너무친한친구들, 넬레노이하우스, 이투리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