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종교를 만들고, 신화와 설화를 만들고, 과학을 만들고, 현대 미술을 만들었다!

 

프리즘에 빛이 닿아 무지개가 고개를 든다. 박우찬 저자가 사과 한 알로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바로 그렇다. 한 입 베어 문 사과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과즙처럼 그가 사과로 그려낸 무지갯빛 이야기들이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자극시키는 지적 만찬을 베푼다.

 

<고흐와 돈 그리고 비지니스>, <미술 과학을 탐하다>, <미술 시간에 영어 공부하기>에 이은 저자와의 4번째 만남이라 당연히 호감과 기대가 큰 편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제목이 제목이고 컨셉이 컨셉인만큼 여간해서는 풀어내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기대를 훨씬 웃돈다. 

 

 

 

19세기 후반, 후기 인상파의 대가 폴 세잔(Paul Cezanne)은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해주겠다!(With an apple I will astonish Paris.)"고 선언했다. 세잔은 사과로 새로운 방식의 조형실험을 했는데 그 실험은 피카소와 몬드리안 등을 위시한 20세기 미술가들에 의해 입체파, 절대주의, 신조형주의, 미래주의, 추상미술 등 다양하게발전됐다. 본래 이 책이 작품 속에 보여지는 사과로 작품을 이해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기에, 세잔의 그 말을 패러디해서 제목을 만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사과처럼 작고 사소한 물건 하나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 그것을 따라 생각과 지식을 확장해나가는 묘미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얼마나 많은 위대한 것들이 깃들어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고 말하는데, 이는 임형남, 노은주 부부가 공동작업한 <이야기로 집을 짓다>에 나오는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 주변, 일상의 곳곳에 웅덩이처럼 고여 있다가, 발길에 채고, 발목을 적시고, 마음을 두드린다.'던 대목과도 맥락이 닿는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윌리엄 더건 교수도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이 갑자기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립될 때 직관력과 상상력의 놀라운 힘이 발휘된다'고 말한 바 있다. 단순히 관찰의 축적이 곧 통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질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가져다 자신의 지식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한낱 사과 한 알에도 오랜 역사와 문화가 숨어 있다. 유독 서양미술에서 사과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가 그들이 특별히 사과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사과가 유난히 예뻐서도 물론 아니다. 사과가 그저 다른 과일과 비교할 때, 비교적 누구나 손쉽게 먹을 수 있다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과일이라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경험하고 향유하는 대상이 되고, 그리하여 그속에 그들만의 역사와 문화, 즉 그들 고유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있게 된다는 말이다. 저자는 서양과 비교하면 우리는 사과에 대해 풍부한 역사와 문화가 없어 아쉽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사과 같은 역할을 하던 그 무언가가 존재했다는 말이 아닐까?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던 에덴동산의 사과부터 시작해 '유혹하는 사과, 탐욕의 황금사과, 원죄의 사과, 바니타스, 디저트로서의 사과, 리얼한 사과, 유동하는 사과, 구조적인 사과, 상징적인 사과, 초현실의 사과, 벌레 먹은 사과'에 이르기까지 총 11개 챕터로 구성된다. 당연히 사과가 그려진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화가의 생애와 더불어 정리한 미술사는 덤이요, 그들이 살다간 시대와 사회적 배경까지 콤보 세트로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방대한 인문학적 사유는 마치 보자기처럼 작품 한 편 한 편을 곱게 감싸 안는다. 물론 컨셉은 신선하고 그 컨셉을 구체화하는 과정도 노련하다. 개인적으로는 한 가지 주제를 두고 서로 다른 화가들이 어떻게 다르게 표현해내는지를 한 눈에 비교해 보는 재미가 컸고, 풀샷과 클로즈업샷의 배치는 독자들을 위한 고마운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역량을 발전시키고 자기관리를 북돋아 줄 100가지 방안(여기서는 즉시 (실생활에)적용 가능한 위대한 아이디어라고 표현하고 있다)'을 9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놓은 책이다. <John Adair's 100 Greatest Ideas for Personal Success>라는 원제처럼 개인의 성공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고,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라는 등 개인적인 측면에서 노력할 방안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개인의 성공이라는 것이 그가 속한 집단이나 조직, 즉 사회라는 범주 안에서만 완전해지고 또 완성될 수 있기에 내용의 절반 이상은 조직 내에서 개인이 노력해야 할 몫에 대해 할애되고 있다.

 

그런데 성공으로 가는 100가지 아이디어를 알기 전에 성공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 개인적인 성공은 무엇일까? 앙드레 지드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자기만의 역할을 찾아낸 자만이 영유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부를 쌓았더라도 자신이 세상 누구보다 더 큰 열정을 갖고 탁월하게 해낼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 지속해나가지 않는다면, 그의 삶은 '행복한 삶'도 아니고, 또한 '성공적인 삶'으로도 규정될 수 없을 것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성공은 목표나 결과가 아니고, 그저 성공으로 가는 모험 또는 여정 그 자체가 아닐까? '성공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Success is a process, not an event)'라는 말이 '성공이란 본디 수줍음이 많으니 너무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멀리 달아나버릴 것'이라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말과도 어울려 보인다. 보편적 의미로 성공이란 무엇이며, 자신이 머릿속에 그리는 성공은 과연 어떠한 모습인지 비교해보면서 읽으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서문에서 저자는 "무엇에든 귀 기울이되 누군가를 맹종하지는 말라."는 중국 속담을 인용하고 있다. 성공을 염원하는 당신에게 모든 게 달려 있으니, 이 책을 잘 활용하고 격려와 영감을 얻으라고도 덧붙인다. 저자 본인이 리더십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야기가 그쪽에 좀 더 치우쳐져 있기도 하나(실질적으로 챕터 2, 6, 7, 8은 모두 개인의 측면보다는 리더십과 조직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의 당부대로 모든 건 독자에게 달려 있지 않겠나.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 주변, 일상의 곳곳에 웅덩이처럼 고여 있다가,

발길에 채고, 발목을 적시고, 마음을 두드린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에는 앞마당이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목련 나무를 참 못마땅하게 여겼다. 바닥에 닿아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는 잎의 신세가 애처로웠던 건지, 아니면 마당을 더럽히는 존재가 되어버린 잎의 기능 상실에 불쾌감을 가졌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때 내가 그 나무를 미워했다는 사실이다. 나무의 소중함은 안중에도 없었고, 나무가 본연의 이야기를 갖고 있을 거라고는 짐작조차 못했으며, 그 나무를 마당에 세워둔 우리 집에도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시간이 흐르면 미워하는 대상마저도 추억으로 미화돼, 까닭 모를 그리움을 한가득 싣고 내게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내내, 끝끝내 내 기억의 끈을 놓지 않던 그 목련 나무에 대해 식구들끼리 대화를 나누기까지!

 

이 책은 세계일보에 연재되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란 제목의 칼럼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부부 건축가는 이야기 밑천을 구하기 위해 곳곳을 누비고 다녔는데, 발을 디딘 곳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우리네 말로 또 그림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며 건축도 그렇게 시작했다고 전하고 있다.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 이 책은 각각의 챕터에 하나의 키워드를 설정해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건축과 이야기 모두 '짓다(build)'의 대상이 된다는 점과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과연 인문학과의 조합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동했다. 결정적으로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계기는 명품과 모바일, 집단지능, 그리고 환타지와 같은 건축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키워드를 선정한 것을 알고 난 후였는데, 이야기의 조합이란 마치 씨실과 날실을 엮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풍부하기까지하다. 참고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님의 말을 빌자면, "이 책은 건축을 이야기로 푼 책이고, 동시에 이야기로 세우는 건축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건축을 인문학적 주제로 녹여냈는데, 생각에 매임이 없고, 그 생각을 풀어내는 문장에 눌린 데가 없다." 건축과 인문학의 만남, 게다가 잊고 있던 예전의 어느 한순간 또는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이 한 권의 책은 마치 여러 권의 책을 읽은 듯한 복잡미묘한 감정을 안긴다.

 

삽화와 사진은 또 어떤가? 그것들은 내게 어서 필운동 오 대감 댁이며, 김수근의 공간 사옥이며, 논산 윤증 고택이며, 황룡 사지와 송시열의 남간정사를 넘어 오스트리아의 쿤스트하우스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폴링 워터에 이르기까지 한 번 와 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재촉한다.

 

 

"오래된 집은 오래된 집대로, 새로 만들어진 집은 새로운 집대로 각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부부의 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의 건축물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을 갖고 있을 텐데, 언제 귀 기울일 여유를 가졌던가?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주우러 열심히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처럼 '건축물이고 길바닥이고 질펀하게 널려 있는' 이야기를 하나 둘 주워담으러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