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너무 친한 친구들>, <바람을 뿌리는 자>와 마찬가지로 이름도 헷갈릴 정도로 많은 등장인물을 등장시키고 그들 각자에게 저마다의 알리바이를 부여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점이 이 시리즈의 특징이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개인은 물론이고 가정과 사회로까지 문제가 확대되면서 스펙트럼이 넓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핵심은 물론 인간의 본성이다.

 

부족한 것 하나 없던 인기 절정의 '대쪽 부장검사'가 갑작스레 자살했다. 곧이어 미모의 젊은 여성 또한 사망 사건의 피해자가 된다. 이 두 사건에 어떠한 연관이 있을 거라 의심하던 피아와 보덴슈타인 콤비는 용의자를 조사과정에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 이번 작품에서는 희생자이자 주인공인 이자벨을 내세워 내면의 미가 수반되지 않은 외적인 미의 의미와, 그 경우 절반에 해당하는 아름다움의 가치, 그리고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어지럽히고 또 파괴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 속에는 직업이나 어떠한 사회적 기준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평등하다. 모두가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으며, 불안전하며 또한 불완전하다. 그곳 사람들은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자신의 쾌락, 안위 또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을 해치는 것, 설령 그것이 살인일 지라도 서슴지 않는다. 외적으로 아름답다고 해서 그것이 내적인 아름다움마저 보장하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오직 눈에 좋은 것, 화려한 것만을 추구하며 더러는 그 부질없는 것에 목숨을 내걸기도 한다. 여인의 아름다움은 한 마리 나비와 같아 바라보는 이에게 탄성을 자아내고 손을 뻗어 그것을 붙잡아 두고 싶게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아름다움이 독이 되어 향기롭던 나비가 이내 독을 품은 독사(*실제 국내 번역판 표지를 보면 독사라기보다는 전갈에 가깝긴 하다만)로 둔갑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깜빡하기 때문에 비극은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못 생겨서 얼굴이 무기인 그녀'가 사랑을 잃은 줄로만 알고, 추운 겨울 어느날 이곳을 떠나 새롭게 둥지를 틀었던 독일에 '오직 예쁘기만 한' 그녀 이자벨 또한 살고 있다는 점이다. 못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남들로부터 멸시받고, 사회 구조적으로도 피해받아온 그녀는 마침내 독일에서 강인해질 수 있었는데, 같은 공간에서 미모의 독일 여성 이자벨은 자신이 가진 유일한 미덕을 악의 실현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전혀 다른 소설이지만, 두 작품 모두 여인의 아름다움이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소설이 저 어느 길목에선가 서로를 말없이 응시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전혀 다른 장르에, 다른 메세지를 전달하는 책인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생각이 왜 그리 간절했을까...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어느 탐식자貪識者의 인문학 수다

 

 

 

 

과학적 사실과 현실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을 관련시킨 책이다. 다소 시니컬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가 엄청 쏠쏠하다. 출판사에서는 저자, 빈스 에버르트를 '과학 개그맨'이라 부르고 있는데, '과학 개그맨'이라니? 과학과 개그가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놀랍게도 저자는 그것이 가능함을 입증해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 빈스 에버르트에 대해 받은 전체적인 인상은 세상 만사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근거가 없다거나 맹목적이고 불필요한 모든 것들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그것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투덜이 과학자'같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죄다 '이유 있는 투덜거림'이니 어찌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어투를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좋아하기 때문에 읽는 내내 더 즐거웠다.

  

독일에는 카바레티스트라는 직업이 있나 보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극장이나 각종 공연장, 텔레비전에 등장해 정치나 세태에 관한 뼈 있는 농담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재담가'쯤 된단다. 실제로 저자는 2007년 10월부터 <사유는 쓸모 있다>라는 제목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콘서트를 열기도 했단다. 그 공연이 큰 성공을 이뤄 이렇게 책으로도 나온 거란다. 그렇듯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잘 골라낸 데다 이를 일반 대중들이 큰 어려움 없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흥미롭고도 유머러스 하게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로또에서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14배나 낮다. 그런데 한 해만 해도 수십 명씩 로또 당첨자가 나오는데, 왜 벼락 맞아 죽는 사람은 거의 없냐고 질문을 던진다. 또, 피임약을 먹는 여성 10만 명이 임신 테스트를 했을 때 20명이 임신 진단을 받지만 그 중 10명만이 실제로 임신을 한다며 99.9퍼센트 정확하다는 테스트가 50:50의 결과를 가져온다며 의문을 제기하는 식이다. 이렇듯 다양한 예를 통해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그릇되게 해석한 확률과 통계를 경계하라는 것과 사유를 '아웃소싱'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식의 한계를 배우고, 과학의 의미를 배우라는 말이다. 회의를 갖고 비판적 질문을 던지고, 권위자를 맹신하지 말라고.

 

종교에 대한 부분도 물론 있다. 실제로 저자는 호텔에 투숙할 때마다 방에 비치된 성경책에 "종교는 다양한 축일을 가진 죄책감이다"라고 낙서를 남긴다고 한다. 다른 많은 자연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종교관은 신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우주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혹은 원자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기 때문이며, 과학이란 학문이 바로 '기적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연을 설명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란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 회의주의자보다 행복할지 모른다는 사실도 술 취한 사람이 취하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사실만큼이나 신의 존재 증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p. 144)

 

시종일관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지만, 과학자로서 스스로가 갖는 자부심과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이것이 책 전체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스스로가 말하듯 그는 '이유 있는 과학의 광팬'이다. 오늘날 자연과학자들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영화나 문학에서 그릇된 이미지로 그려진 데다, 우리의 삶이 보다 더 안락해지고 편안해지게 만든 것이 바로 과학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핵 위협, 환경오염의 책임이 진보와 기술에 떠넘겨지고, 심지어 일반적인 비인간화의 책임도 떠넘겨진다. 중력 법칙을 발견했다는 이유만으로 뉴턴을 비행기 추락의 원인으로 비난하는 짝이다.  지금 과학은 과거 수십 년간 질적으로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전쟁에는 지고 만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유전자변형 옥수수 밭을 망가뜨리는 환경운동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파킨슨병 특효약을 만들기 위해 동물 실험을 하는 신약 개발 연구자들은 경멸 당한다. (p. 93)

 

 

 

인문학 혹은 과학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벗겨주는 책이다. 중간중간 삽입된 삽화마저도 재미있고 그가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쉽게 접하는 것들이라 일단 부담감이 크게 줄어든 탓에, 나의 몫이라 함은 그저 그의 화려한 글솜씨에 그냥 넋 나간 채로 앉아 있는 것 뿐이다. 하물며 챕터가 끝나는 곳에 미리 준비해 둔 문제마저도 기발하고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가 쓴 다른 책도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그가 소설가였다면, 참 재미있는 소설 책 한 권 나왔겠다 싶다.

 

   
  

식사와 미술의 밀접한 관계는 서양의 미술과 문화를 고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컨셉과 구성이 독특한 <고흐의 다락방>을 읽을 때 새삼 느꼈지만, 예술 특히나 미술과 관련된 서적 중에는 구성이 흥미로운 책이 참 많다. <고흐의 다락방>은 미술사학자와 요리 역사학자가 반 고흐의 생애를 재구성한 책이다. 화가의 생애를 요리역사학자의 시각으로 풀어내다니 정말 의외가 아닌가? 마찬가지로 이 책도 주제 자체가 흥미로워서 읽게 됐다. 박우찬의 <사과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해주겠다>에서 서양미술에서 사과가 갖는 의미에 대해 알게 됐는데, 이 책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미술 작품 속에 그려진 음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표지에서 알 수 있듯이, 식사하는 장면은 물론이고 음식 자체가 그림에서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새로운 각도에서 재해석해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한 가지 또 흥미로운 점은 '자칭 B급 식도락가'라 말하는 저자 자체이다. 그는 먹는 것에 대한 열정이 차고 넘치는 가운데,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두 분야, 미술과 음식을 융합해 이처럼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두 분야를 접목했다 하니 이 작업을 하는 동안 그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예를 들어,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나 유다와 같이 인물 위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식탁 위에 어떠한 음식들이 올려져 있는지를 먼저 살핀다. 그리고서 그 그림이 단순히 그리스도의 생애나 수난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성사의 기원'을 묘사한 작품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사과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음식을 그림에 표현하는 데에도 동양과 서양 사이에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기독교에서 음식을 성찬이라는 의례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의 미술 작품 속에 유난히 음식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도 그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비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음식에 그와 같이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음식을 주제로 한 그림이 비교적 덜 한 것이다.

 

미술도 음식도, 죽음이라는 것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그 불가사의한 힘을 뿜어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두 분야에 대해 자신있는 목소리로 신나게 이야기하다 보니 약간 옆길로 샌 듯한 느낌이 든다. 기독교 문화권의 서양미술에서 음식 또는 식사의 가치와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단순히 서양미술에서 나타난 음식의 의미를 찾는데 멈추지 않고, 맨 마지막 챕터에서는 죽음으로까지 연결시킨다. 눈으로 음식을 보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이 일련의 행위가 관능과 연결되는 것도 맞고, 먹는 행위가 없으면 죽음과 맞닿은 것도 맞으니 저자가 죽음으로까지 스펙트럼을 넓힌 것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전개가 어딘가 어색하다. 음식과 서양미술의 관계에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가령, 미술사에서 종교적 의미의 '식사'를 벗어나 그저 순수하게 '먹는 행위' 그 자체를 그려낸 최초의 그림이라는 안니발레 카라치의 <콩을 먹는 남자>를 소개하는 것처럼 그냥 '순수한 정보'를 전달하고, 그림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 본다.

 

 

 안니발레 카라치, <콩을 먹는 남자>  

 

서양 미술에서는 있었을 법한 모습을 재현하는 것보다 형상에 상징이나 우의를 부여하여 종교적, 교훈적 메시지를 드러내는 것이 많다. 서양 미술의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종종 간과되곤 하지만 형상과 표현에 담긴 의미를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p. 27)    

 

식사야말로 의사소통의 최대 수단이고 종교와 예술과 관련된 문화였다. 사람과 사람, 사회와 개인, 문명과 자연, 신과 인간, 죄와 구원, 삶과 죽음, 이 모두를 결합시키는 행위가 식사였다. 한편 진정한 예술은 단순히 감각의 즐거움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증표이며 종교와도 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식사와 미술, 그리고 종교는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p.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