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서부터 어머니에 이르는 열 개의 다른 주제로 동양미술과 서양미술이 만난다. 한 사람이 주제에 꼭 들어맞는 동양화로 이야기를 풀어내면 다른 한 사람이 그 주제와 어울리는 서양화로 이야기에 답하는 식인데, 그림 속에 녹아든 우리네 인생을 고찰해 볼 계기와, 동서양의 문화에 존재하는 차이를 파악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잊은 줄만 알았었는데 알고 보니 잊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마주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책에 나오는 10가지 주제어(그리움, 유혹, 성공과 좌절, 내가 누구인가, 나이, 행복, 일탈, 취미와 취향, 노는 남자와 여자, 어머니, 엄마)부터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림에 대한 식견이 일반인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내가 그림을 보는 이유는 그림에 대한 평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도 아니다. 책 제목이기도 했던 것처럼, 그림이 나만의 언어로 내게 말을 걸어오는 그런 순간을 마주하고자 그림을 찾는다. 소설가 김훈이 서문에 '화폭 안과 밖에서 이야기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고 한 것처럼, 그림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그 시작과 끝은 알 수 없어도, 최소한 저 먼 옛날의 기억을 되살리고 내면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니 말이다 .

 

이주은의 서문에 이 책이 추구하는 바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 책은 미술에 대한 정통한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책이 아니라서 '이 그림은 몇 년도에 어떤 기법의 영향을 받아 그려진 것이다'와 같은 돌아서면 금세 잊어버릴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한 번 본 그림에 대한 여운이 입가에 계속 맴도는 맛의 여운처럼 계속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함이다.  

 

 

프롤로그에서 소개하는 그림은 앤드루 와이어스의『결혼』이다. 어느 날 아침 이웃집에 들렀던 그는 그 집 노부부가 창백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림 속 노부부는 살아있다고 하기에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핏기가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죽어있다고 할 정도로 비극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저자, 이주은은 삶과 그림으로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이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자신은 '삶인가 싶은데 죽음 같기도 하고, 이것인가 했는데 저것을 말하기도 하는 그림에 눈길이 머문다'고 말한다. 정말 영리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철저한 계산 하에 쓰인 것도 같다. 죽은 듯 살아있는(혹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죽어버린) 노부부의 모습에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해진다. 

 

기획 및 구성도 좋고 무엇보다 제목도 참 잘 지었다. '다, 그림이다'라는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그 '다'라는 글자

앞에 놓일 수 있는 수많은 단어들을 떠올려본다. 그래, 이 모든 게 다 그림 덕분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은 어찌 됐든

동서양의 미술에 대한 책이니만큼 그 컨셉에 맞게 내지를 꾸밀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점으로 디자인이 책의 컨셉이나 그것에서 오는 장점을 더 부각시키지는 못한 것으로 보여 아쉽다. 그래도 평소 다른 단행본에서 보지 못했던 그림들을 여럿 보아, 개인적으로는 이래저래 만족이 컸던 책이다. 

 

조반니 볼디니,『기타 연주자』, 1872년

기업을 성장시키고, 더 나아가 성공적인 기업으로 키워내기 위한 기업 종사자들의 노력이 홈런이 되어 그라운드를 뒤흔드는 순간, 그 기업은 마침내 성장과 성공의 발판 위에 우뚝 선 것이리라. 그런데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쉬운가? 실력이 다소 처지는 선수들도 그렇겠지만, 출중한 선수라고 해서 매 경기 홈런을 친다면 왜 사람들이 그 뻔한 경기에 열광하겠는가? 그럼 홈런이 터지지 않아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차선책은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 기업의 성장을 홈런에 빗대며, 홈런이 어렵다면 안타라도 계속 쳐 보자고 독려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홈런을 칠 기회가 올 테니까. 설령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괜찮다. 요기 베라의 말처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까(It ain't over till it's over) 말이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책에는 마케팅과 합당한 예산, 혁신과 내실성장 등 10가지 구체적 방안이 소개되어 있는데 역시 가장 눈여겨보게 되는 부분은 리더십이다. 책에도 인용되어 있지만, 피터 드러커의 말대로 경영의 근본적 과제는 사람들에게 공통의 목표와 가치, 조직구조, 계속적인 교육 기회와 발전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집단의 이름으로 성과를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다. 개개인이 하나의 집단으로 성과를 이루어 내기 위해 가장 큰 책임과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은 단연 리더이다. 경기가 침체되고 기업이 하강국면에 빠지면, 흔히들 비용부터 줄이려고 애쓴다. 더러는 중요한 회의 시간의 대부분을 비용절감과 재고축소와 같은 비용축소에 할애하는 답답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리더가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것은 변화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업스트림 마케팅)하고 하강국면에서 탈피시켜줄 수 있는 유망한 신제품을 개발해내는 일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리더는 비용축소에 온 신경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성장에 전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리더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성장이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사실에 대해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다. 이는 고객의 니즈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모으고, 걸러지지 않은 정보들을 모든 부서들과 공유하는 것을 포함한다. (p. 93)'

 

개인적으로 이 책의 장점은 기업이나 조직이 성장과 번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쉽게 범할 수 있는 우를 짚어준다는 점을 꼽는다.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 브랜드를 구축하고 판촉이나 광고, 고객관리와 같은 다운스트림 마케팅(downstream marketing)에 더 크게 치중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고객의 니즈를 찾아내고 또 창조하고, 이윤을 창출함과 동시에 고객들의 니즈에 타 경쟁사보다 더 크게 만족시킬 수 있는 업스트림 마케팅(upstream marketing)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 예다. 당장의 가시적 성과를 기대해 근시안적인 처방에 집중하는 이들이라면 책에 실린 GE나 콜게이트, 톰슨 로이터의 예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책을 덮으려는 찰나, '만일 당신이 성장하는 기업에 속해 있지 않다면, 당신은 극단적으로 제한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문구가 보인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좀 더 수월히 찾을 수 있도록 저자는 친절히도 18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고교 동창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카터는 그 18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던 중, 결국 자신이 속한 퍼니처 글로브가 퇴락하는 기업이라는 사실에 맞닥뜨린다. 그가 내린 결론은 바로 이윤이 나는 성장을 위해 리더를 포함, 고위 간부들만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Profitable Growth is Everyone's Business)이기도 하다. 성장 기업의 필요충분조건은 열 가지가 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근본은 기업, 그리고 조직 내에서 과연 누가 노력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성장하는 조직과 기업의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며, 그들 모두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분주하게 조직을 꾸려나가는 훌륭한 리더가 있지 않겠는가.

 

 

"나는 비단 그의 천재성뿐만 아니라 바위를 뚫는 빗물과도 같은 인내력마저 훔치고 싶어졌다."

 

 

 

'소'하면 떠오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이중섭에 대한 잘 나가는 젊은 화가의 헌사와도 같은 이 책은 어린 시절 자신을 매료시킨 그림과 그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한 동경을 바탕으로 화가와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사실 이중섭에 대해서 특별히 남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저자인 몽우(夢友) 조셉 킴에 대해서도 잘 몰랐는데, 신진화가와 기성화가의 놀라운 앙상블을 보는 재미가 예상보다 훨씬 쏠쏠했다. 생각해 보면, 화가의 작품을 가장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화가 본인을 제외하면 그 화가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람의 눈과 입, 그리고 손끝에서 나오질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그 이름이 알려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특별히 잘 알려진 일화 한 점 꼽기 어려운 이 훌륭한 이야깃거리를 딱 들어맞는 예쁘고 좋은 그릇에 먹음직스럽게 담아냈다. 또 작가일 뿐 아니라 화가이기도 한 자신의 장점을 살려 존경해마지 않는 이중섭의 화풍을 쏙 빼닮은 그림들을 직접 그려 그의 작품들과 함께 소개하고 있으니 정말이지 완벽한 헌정이 아닐 수 없다.

 

크게 3부분으로 나뉜 이 책은 제일 먼저 이중섭이 몽우 자신에게 끼친 영향, 그와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인간 이중섭에 대해 깊숙이 파헤친다. 그리고 3부에서는 문인적 감성을 지녔던 화가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끝을 맺는다. 이중섭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갖는 우리 사회에서 갖는 무게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국내에 이중섭에 관한 도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이제 한 권 읽은 것이지만 감히 이 책은 '각별한' 의도에서 만들어진 '특별한' 의미의 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 그를 다루고 있는 다른 책들을 읽어보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당시 많은 화가가 서구 미술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기에 급급하던 시절에도 조선과 고구려를 비롯해 우리 민족과 조상의 흔적을 되찾으려 애를 썼던 그의 그림에는 고미술에 대한 지식과 민족에 대한 깊은 애정이 들어있다. 저자는 말한다. '이렇듯 화가의 그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가 그려낸 완성된 그림만을 보아서는 안 되고, 그가 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화풍의 진행 과정 속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p. 48)'고. 예술가들 사이에서 용과 봉황이 가장 인상적인 상상의 동물임에도 이중섭, 그의 그림 속에는 왜 용이나 봉황 대신에 소와 닭이 그리도 많은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