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브릭스를 중심으로 거대 신흥국 열풍이 불면서 경제성장의 황금기가 열렸다. 그 정점에 달했던 2007년에는 세계 183개 국가 중에서 단 3개국을 제외한 180개국의 경제가 성장했고, 그중 114개국이 5%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 급성장하는 경제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조차 감소하던 이른바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의 시기였는데 1990년대 초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인력과 자본, 재화가 유입된 덕분이고, 무엇보다도 전 세계적인 유동성 팽창으로 말미암은 결과였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하고 2008년이 되면서 이들 신흥국의 무역수지도 급감하고 있다. 경제 중력의 기본 법칙에 따라 거대 신흥국들의 경제가 다시 기존 수준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돌파해 다가오는 2020년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국가는 어디일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데,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이제까지 브릭스에 대한 예측과 극명한 대비'가 흥미로움을 더한다.

 

모건 스탠리에서 신흥시장 부문 총괄사장인 저자 루치르 샤르마는 250억 달러의 신흥시장 자산을 운용한단다. 현장 전략과 계획 수립차 한 달에 일주일 이상 신흥국을 방문한다는 그는 해당 국가의 암시장에서부터 최상위 부유층과 정치권의 동향까지 분석한다고 하는데 이 책은 15년간의 그러한 경험과 연구의 결과물이다. 유명 경제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작성한다는 그는 전문가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가장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과연 그 말처럼 책에 대한 국내외 평을 봐도 모두들 경제서답지 않게 쉽게 잘 풀어냈다는 칭찬 일색이다.

 

이 책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온 신흥강국 브릭스(BRICs)를 국가별로 들여다보며 그들이 왜 이 총체적 난국을 타개해 나갈 수 없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저자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집대성된 이 책의 장점은 브릭스 각국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가장 최근의 소식을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입장에서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너무 낙관적으로만 봐 왔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가 전달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것들과도 많이 달랐다. 게다가 이 책을 더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글로벌 위기를 당당히 이겨내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나라, 그의 표현대로 '브레이크아웃 네이션(Breakout Nation)'이라고 점쳐지는 국가 중에 우리나라가 속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브릭스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과는 확연히 다르게 지나치리만치 긍정적이다. 세계 경제를 올림픽으로 치자면,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기꺼이 주겠노라고 말할 정도이니.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에 대한 칭찬이나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은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운 부분이고, '이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갖춘 나라에서 서비스 부문과 내수시장이 그처럼 장기적인 정체를 겪는 것' 역시 그의 말마따나 쉽게 간과할 수 없다.

 

이미 세뇌당한 것인지 그가 지적한 브릭스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진 잠재적 가능성에 대해서는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중국이 아무리 급부상해오고 있다고 할지라도 아직은 미국 경제 규모의 30%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미국 국민도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져만 가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우리는 중국의 부상도 물론이지만, 미국의 원기회복도 두렵긴 마찬가지다. 소프트산업과 문화산업처럼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인한 부의 창출과 축적은 부러울 따름이고, 급하락 중이라는 원자재 가격은 미국에도 호재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시대의 브레이크아웃 네이션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라고 충고하지만, 노를 젓는 것도 젓는 건데,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방해가 되는 건 비단 바람의 유무만이 아니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 간격과 주기도 신경써야하고, 바람이 아닌 다른 요인들에 대한 대처까지 생각해내야 하는 우리는 진정 '브레이크아웃'하기 위해 아직 해야 할 숙제가 많다.

 

아무쪼록 그동안 브릭스만 강조해오던 차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책이다. 마찬가지로 평소 멀게만 느껴지고 국내 언론에서도 잘 다루어지지 않던 나이지리아, 폴란드, 체코, 인도네시아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가 말한 대로 우리에게 조만간 핑크빛 미래가 펼쳐질지 지켜보자. 2020년이라고 하지만, 사실 얼마 남지도 않았다!

 

 

인터넷과 케이블 TV, 그리고 파일공유가 일상이 되면서 내가 어릴 적에 방영하던 <맥가이버>나 <E.R.>처럼 특정 작품이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아예 '미국 드라마' 자체가 하나의 인기 브랜드가 되며 그 인기가 소수 마니아층을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아예 미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가 거의 실시간으로 국내에서도 방영되거나 서비스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많은 드라마를 직접 볼 시간은 없고, 그 드라마들을 분석해놓은 책을 구하던 차에 읽게 됐는데 TV 드라마에 관한 책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정보와 지식을 뽐낸다. 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들이라면 평소 관심 있게 보던 드라마에 대해 풍부한 배경지식을 얻게 될 기회를 얻는 셈이고, 나처럼 직접 드라마를 챙겨 보지는 않더라도 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게 목적이라고 하면 알기 쉽고 부담 없게 요약해둔 자료집이라고 할 만큼 유용한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어릴 적에 본 <베벌리힐스의 아이들>에서부터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섹스 앤 더 시티>를 넘어 최근에 방영되기 시작한 드라마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미국의 정치, 사회, 인종과 민족, 가정, 범죄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데, 그 콘텐츠의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 모두 참 방대하다. 책에도 나오지만, TV 드라마는 이야기가 벌어지고 있는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거나 변형시키거나 둘 중 하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를 반영하고 있는가 아니면 왜곡시키는가 하는 팩트(fact)에 대한 접근이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고, 배경이나 소품에도 특별한 뜻이 숨어있을 수 있다. 그래서 TV 드라마는 쉽고 대중적인 것 같으면서도 적잖게 난해한 장르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첫 번째 챕터로 만든 '대중문화 인용'이 이 책의 의도와 컨셉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오피스>의 대사를 인용하며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성난 황소>에서 차용해 온 것이라고 상세히 설명을 덧붙이는데, 그의 말처럼 이렇게 드라마 자막이나 출판물에서 오역 논란이 끊임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의 말처럼 '출판이나 방송의 역사가 길고 그 시장 규모가 큰 미국에서는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매체 속에서 이전 대중문화에 대한 인용과 재인용이 빈번(p. 19)' 하나, 해당 문화권에 대한 풍부한 배경지식을 갖춘 국내 전문가들의 수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언어와 문화라는 불가분의 관계를 무시하고 암기과목의 하나로 전락시켜버린 사회적 현실에서 기인한 문제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미국에 대한 여러 잡다한 상식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SNL(Saturday Night Live)>을 비롯해 미국 프로그램의 컨셉을 차용해온 국내 사례와 비교해보고 그 장단점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한류라고 하면서도 정작 우리만의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려는 노력보다는 해외의 그것들을 그대로 모방하는 데서 맛보게 될 실망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아무쪼록 표지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지만, 분명 여러 면에서 유용한 책이다. 책 속에 마련한 표도 그렇고 분명 이래저래 독자를 많이 배려한 책이다.

 

 

 

"건축은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예술이다.

사람은 모두 건축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존 러스킨

 

지금의 '욘사마'가 있게 한 화제의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준상이, 배용준은 건축가였다. 배용준을 좋아해서 나 또한 일본 아줌마들만큼이나 가슴 졸이며 보았었는데 감히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건축이란 이 지구 상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것을 허락받은 몇 안 되는 선택받은 대상이고, 게다가 책이나 영화에서 건축을 업으로 일삼는 사람은 왜 그리도 하나같이 멋있게만 보이는 건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얀 종이 위에 무심히 그려넣은 평면도가 어느 순간 유형의 입체적인 것으로 눈앞에 "짜잔~"하고 펼쳐지는 과정과 결과가 기가 막히도록 신기하게만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이 책은 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건축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자리마다 빈칸으로 만들어 그 자리에 들어갈 단어를 채워 넣어보라고 하면, 건축 말고 다른 단어를 먼저 떠올릴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이 건축과 얼마나 다른지를 따지지 말고 읽다 보면 분명 어느 부분에선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대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 또한 건축에 대해 무지한 데다 환상과 동경이 한데 뒤섞인 탓인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 - 가령, 세상의 모든 건물 중에서 건축가가 짓는 건물이 겨우 5%뿐이라는 현실이나 미국에 세워진 건물 대부분이 관련 학위나 자격증이 없는 이들이 짓는다는 것과 같은 - 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정가가 다소 높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건축물들만큼은 컬러 사진으로 삽입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점이다. 흑백으로 그 진가를 알아보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데다 일일이 검색해서 봐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그러고 보니 이 책이야말로 멀티 e북의 형식으로 나오면 좋겠다마는). 

 

이 책은 크게 3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 터(The Place), 건물(The Ground Floor), 그리고 도시(The Upper Levels)로 건축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친구, 동료, 그리고 독자들과 주고받은 편지 형식으로 쓰여 있다. 자칫 16명이라는 그 수적 다양함이 장점이 아니라 단점으로 올 수도 있었을 텐데, 한 마디로 표현하면 '내 집에 들어와 가방을 풀자마자 시원한 바닥에 철퍼덕 드러누운 것처럼' 편하기 짝이 없고 그 흐름도 매끄럽다. '주옥같은 문장'이 가득하다고 말하자니 좀 촌스럽게도 들리고 과장스럽게도 들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새겨듣게 되는 부분이 참 많았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역사상 가장 발달된 문명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눈앞에서 지어지고 있는 건물들 대부분은 과거보다 더 아름답다거나 더 탁월하지는 않다. 과거 로마제국이나 그리스, 또는 이집트에 아직 남아있는 건축물들을 떠올려봐도 바로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장소와 기술, 게다가 재력까지 모두 갖췄음에도 거리와 건물이 아름답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아름다움이 그 고유의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이기 때문이란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기능과 편의에 더 집중하다 보니, 그 본질을 잊은 채 달려오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건, 최근 몇 년 전부터 "인간 중심"을 외쳐대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간다는 점이다. 본질을 회복시키고 가치를 되찾다 보면, 우리 시대에서도 후세들에게 남겨줄 만한 건축물들이 왜 없을까?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나는 아름다운 건축에 열광하지만 직접 디자인하는 데는 관심이 부족한 "의욕적인 건축 애호가"로 남아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