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일본 서점 직원들이 가장 팔고 싶어한 바로 그 책,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 

 

 

누군가의 열정에는 열정으로 임할 것!

 

 

 

 

제목만 봤을 때는 사실 그다지 읽고 싶지 않았었는데 주변에서 수차례 전해 들어 일종의 피어 프레셔로 손에 쥐어 들었다. 일단 읽어 보고 중간에 재미없으면 그만 읽어야지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많은 이들에게 선택을 받고,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절감한 계기가 됐다고나 할까?

 

 

 

이 책은 간단히 말하면, 한 출판사에서 약 10년간 <대도해>라는 제목의 사전을 만들어온 편집자들의 고군분투기이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지가 비교적 상세하게 전해지는데 아마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에 열광한 이유는 한때는 큰 인기를 끌었던 전자사전조차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 시대에 여전히 종이 사전을 출간하려 애쓰는 겐부쇼보 사전편집부원들에게서 현대판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전 편찬을 업으로 삼고 오로지 <대도해>를 '구멍 나지 않은 배'로 만들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편집부원들에게 보내는 독자들의 응원이자 격려요, 그 순수한 고집에 대한 낭만적인 질투가 아닐는지?

 

 

어수룩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마음속 에너지만큼은 너무도 뜨거운 마지메는 사전을 만들면서 일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가 하면, 밉살스러운 멘트를 종종 날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는 없는 분위기메이커 니시오카는 사전이 작업되는 동안 한층 더 성숙해져간다. 실제로 주인공은 마지메이지만 마치 니시오카의 성장소설처럼 변화해가는 그의 심리를 충분히 잘 그려냈기 때문일까, 일본의 인기배우 오다기리 죠가 왜 니시오카 역을 맡았는지 이해가 된다. 마지메를 만나기 전까지 니시오카 역시 사전 편찬이 제 일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마지메를 알면서부터, 그가 온몸으로 내뿜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니시오카는 마음이 무겁고 또 불편해진다. 마지메가 자신보다 어휘력이 풍부하고 그에 따라 표현력까지 한층 더 좋아서 이미 좌절을 맛봐야 했던 니시오카는 마지메의 열정 또한 자신의 그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진지하다는 걸 알고는 결국 자신이 마지메를 절대로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새삼 씁쓸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그토록 일을 즐길 줄 아는 마지메가 또 부럽기도 했을 것이다.  

 

 

아라키는 말했다. 사전은 팀워크의 결정체라고. 그런데 사실 책이라면 어떤 책이든 모두 팀워크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출판은 어떤 업종보다도 조직 내 팀워크가 중요하다. 서로서로 끌어주는 구조가 되어야만 애초 의도한 대로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기획자와 편집자(더러는 이 둘을 겸한다), 그리고 디자이너와 마케팅 및 영업자, 각자가 정해진 기한 내에 자신이 맡은 임무를 완수해야만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 조직 내 구성원 중 누구 하나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 하지 않거나 해내지 못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설령, 그 구성원 중 누구 하나의 실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더라도 구성원 간의 조화가 없이는 그 역시 제 몫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고, 따라서 결과적으로 그들의 책은 좋은 책이 될 수 없다. 니시오카는 사전이 만들어지던 그 긴 시간 동안 이같은 소중한 깨달음을 얻고 '누군가의 열정에는 열정으로 응할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러자 '과연 나는 누군가의 열정에 열정으로 응해왔던가? 또 나의 열정에 누군가는 열정으로 응해왔던가? 나의 열정이 그들의 열정보다 더 가볍지는 않았던가? 설령 그들의 열정이 나의 그것보다 더 작다고 해서 서운해하지는 않았던가? 누군가 일에 지쳐 기분이 나아지길 바랄 때, 나 또한 니시오카처럼 동료나 부하를 위로하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가?' 등등 과거의 수많은 사건과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기분이 묘해졌다.

 

 

 

아무런 기대 없이 펼쳐 든 책이었는데 이 더운 여름날 소중한 감정과 기억을 되살리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어제 오랜만에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한 신성우에게 사회자 유희열이 물었다. 이 무대에 다시 서기까지 왜 그리 긴 시간이 필요했느냐고. 신성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고 했는데,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수가 되고자 열망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노라 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이요, 누군가가 살면서 꼭 한 번 이루어 보고자 하는 '그것'이 자신에게는 그저 오랫동안 반복해 온 직업이자 일상이 되면서 지치고 무뎌져 있었는데 새삼 그 어린 친구들의 열망과 열정에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의 가슴을 예전 그때처럼 다시 뛰게 한 건 아마도 마지메로 인해 한층 성숙해진 니시오카가 맛보았을 그때 그 감정과 흡사할 것 같다. 

 

 

 
 

 

 

최규석 리얼 궁상만화 _ <습지 생태보고서>

반지하 단칸방에 서식하는 비루한 청춘들의 웃기고 눈물 나는 생태 보고서

 

등장인물 소개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다음으로 읽은 최규석의 두 번째의 작품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에 ‘어~’ 소리를 나오게 하는 컷과 대사가 한둘이 아니다. ‘반지하 단칸방에 서식하는 비루한 청춘들의 웃기고 눈물 나는 생태보고서’라는 부제가 달린 자전적 성격이 강한 이 만화는 초판이 2005년에 발매됐으니, 이제는 꽤 오래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 비친 씁쓸한 현실은 나아진 것이 없고, 비루한 청춘의 몸부림 역시 여전하다. 그동안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는데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질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책이랄까? 빈부격차는 줄어들 새 없이 계속 커져만 가는가 하면, 장학금 수령 여부에 따라 다음 학기 휴학 여부가 결정되고, 가진 게 없다 보니 싱그러운 청춘이라면 응당 누려야 마땅한 연애는 사치이자 당장 '생존에 위협을 가할 정도의 소비'를 조장하는 자책감과 죄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는 말이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서도 눈에 띄지만, 작가 최규석의 상상력은 기발하고 유머 감각은 기가 막히다. 만화 연구가 김낙호의 작품해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4페이지로 이뤄진 각 짤막한 생활 에피소드에서 비루한 현실과 유머 감각을 연결시키는 코드는 다채롭다. 주인공들의 별 볼 일 없는 상상력 속에서 이뤄지는 물건 의인화 개그가 있다.' 나는 그의 물건 의인화 개그에 빠져 버리고 말았고, 더불어 나의 한없이 미천한 상상력을 부끄러이 여기고,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한 나의 눈치 없음에 절망했다. 특히나 여느 반전 영화 못지 않게 충격적이었던 '프롤로그 1. 비애'와 '현정씨,' 그리고 '친구의 조건'등이 그러하다.

 

그런가 하면, 네 명의 비루한 청춘들과 함께 이 작품을 빛내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바로 녹용이다. 그의 활약은 가히 눈이 부실 정도다. 가난과 억척스럽게 싸우며 살아가는 주인공들과 대조적으로 녹용이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뿔과 피까지도 팔아먹는가 하면, 끊임없이 노골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고, 가진 자를 따르고 없는 자를 무시하는 세속화된 캐릭터로 각 에피소드마다 허를 찔러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개인적으로는 2010년 자음과 모음에서 출간된 이지민의 소설 <청춘 극한기>를 떠올리는 작품이었다. 어느 세대나 집단보다도 구조적으로 더 힘들기에 삶을 영위하는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그저 '살아남아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해야 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결코 적지 않은 이 땅의 젊은이들은 그들 인생의 황금기를 가난과 고난으로 맞바꾼 채 이렇게 오늘도 '서식'해 가고 있을 것이다. 사랑할 자유와 권리를 허락받지 못하고, 내일을 꿈꾸기보다 오늘의 끼니와 학비에 쩔쩔매는 이들의 흔들리는 청춘에 새겨진 그 많은 상흔을 보듬어주는 것은 과연 누구의 몫일까?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최규석)는 '일단 웃자'고 말하지만, 작품 속에 나타난 이 불우한 청춘들에 대한 불편함, 그리고 미안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암세포도 젊은 암세포가 더 활기차듯, 아픔도 젊은 아픔이 더 센 거라고요. 앞으로 아플 날이 더 창창하니까요."라고 <청춘극한기>의 택선을 위로하듯, 욕설과 함께 단칸방에서 빗물을 퍼올리던 청춘들에도 위로를 전하는 밤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저자인 최규석의 페르소나인 '최군'은

실제로 저자와 많이 흡사해보이는데,

그래도 이 장면에는 정말 "푸후후후! 느끼해요. 그냥 웃지 마요!"가 딱이다 ㅎㅎ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알 수는 없었지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곁에 있어주던 

초능력 내 친구 둘리.

세월은 흐르고 흘러...

프레스기에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 둘리가 말한다, 

"사는 게 만만치가 않아요."

 

  얘들아, 더 이상 명랑 만화는 없어!

 

 

 

평생 본 만화라곤 사춘기 여학생을 열광케 할 만한 꽃미남들이 사방에서 쏟아져나온 순정만화뿐이어서 이렇게 '미화되지 않은' 너무도 사실적인 인물-외모나 성향이나-은 어떤 면에서는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다. 아, 만화란 이슬비와 푸르매처럼 꿈과 사랑을 전해주는 것만이 다가 아니구나!

 

 

얼마 전 언니가 읽고 있길래 '뭔데 그러지?'라는 생각으로 무심코 펼쳐 들긴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표지에 버젓이 '둘리'라고 쓰여 있는데, 대체 왜 얘는 또 이렇게 지독히도 안 된 얼굴을 하고 있단 말인가? 요새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터라, 둘리의 사연에 귀를 기울여 줄 여력이 없어 '이 책은 보지도 말고 읽지도 말아야지' 했는데 결국 다 읽고 말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최규석 이 분, 벌써 꽤 여러 작품을 내신 데다, <울기엔 좀 애매한> 이것 역시도 이분의 작품이었다. 어쩐지 이름이 낯이 익는다 했더니.

 

 

개인적으로는 맨 처음에 실린 '사랑은 단백질'과 '콜라맨'도 '공룡 둘리'만큼이나 기억에 남는다. 닭고기를 먹다 정체불명의 알러지에 걸려 몇 달을 고생한 경험이 있어 닭을 안 먹다 보니, 치킨집 간판-닭이 닭 다리를 들고 있다거나 하는 식의 '황당함'을 뛰어넘는 괴기함과 일종의 공포가 전해지는-을 볼 때마다 '저건 좀 너무하지 않아?'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가 하면,  닭고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어린 조카가 치킨집에서 파는 '콜팝'을 사 먹는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넌 대체 이제까지 몇 마리의 닭을 잡아먹은 거냐? 너한테 잡아먹힌 그 애들이 불쌍하다'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는데, '사랑은 단백질'을 보는 내내 어린 조카에게 괜한 심술을 부리던 내 얼굴과 뾰로통한 조카의 얼굴, 그리고 치킨은 맥주와 먹어야 제맛이라며 순식간에 해치우는 친구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가 하면, '콜라맨'은 해피엔딩이 작위적인 느낌을 살짝 얹어주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뭐랄까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현실에서 버젓이 존재하고, 더러는 아주 잘 살아가기까지하는' 결코 비현실적이지만은 않은 '동욱'과도 같은 존재를 다시 한 번 일깨우며, 비루하고도 비참한 현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해냈다. 동욱과 같은 이들의 존재가 꿈인 듯 꿈이 아닌 것처럼, 그들과 한데 섞여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도 얼핏 달달해보이지만 그 본연의 씁쓸함으로 우리는 그토록 힘겨워 할 수밖에 없다.  

 

 

진짜 둘리 아빠, 만화가 김수정 선생님은 (이 작품) 다음에 누군가 둘리를 그리겠다고 한다면 단호히 거절할 것이라고 추천사에 밝히셨다. 최규석의 "공룡 둘리"는 단 한 번의 예외라며. 국민 만화가이자 둘리 아빠인 김수정 선생님의 숨을 턱 막히게 하고, 현기증이 나게 한 문제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과연, 어릴 적 둘리를 보고 자란 세대라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노동자가 된 둘리와, 몸을 파는 또치, 생체실험의 피해자가 된 도우너, 그리고 범죄자가 된 희동이를 견뎌낼 수만 있다면. 그러니까, 둘리가 더 이상 명랑만화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용기가 그대에게도 있다면 말이다. 

 

 

 

뽀로로도 한 20년쯤 지나면 우리 앞에 어떤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시 서게 될지, 누가 알겠나?  

  

 

 

 

 

 

- 공룡 둘리

 

 

 

  

 
- 사랑은 단백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