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에 빠진 아이>는 동화지만, 아이 손에 가기 전에 엄마인 내 손에 먼저 머물렀다. 제목과 표지에서 암시하는 심상치 않은 메시지가 간만에 아이 책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구멍에 빠진 아이>는 구멍에 빠진 아이의 이야기다. 11살짜리 아들에게 이 책을 건네기 전에 나는 아이가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지 조금은 걱정이 되었었다. 철학적인 의미를 다분히 품고 있는 책의 내용을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아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기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생각이 유연하고, 그래서 다소 엉뚱하고 사차원적인 설정조차 흥미진진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날은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그날은 11시 30분을 넘기지 않고 반드시 잠을 자게 했던 수면습관이 예외적으로 적용된 날이었다. 처음, 이 책을 손에 쥔 아이는 먼저 표지부터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리곤 아이가 집중해서 책을 읽을 때면 본능처럼 찾아드는 자기방 구석자리의 의자 위에 올라가 앉았다. 이후 1시간정도는 정말로 집이 고요했다. 평소 만화책 외에는 잘 집중하지 않으려 하는 아이인데, '저렇게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책을 읽고 난 후는 이미 12시가 넘은 '많이 늦은' 시각이었지만, 이 책에 대해서만은 잠깐이라도 독후 토론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베개를 들고 아이 침대로 파고든 나는 아이와 함께 구멍에 빠진 아이에 대해 이야기 했다. 먼저 아이에게 느낌을 물었다. 아이는 한참을 갸웃거리기만 하더니 '엄마, 나도 길을 가다가 구멍에 빠지는 일이 생길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너뿐만 아니라 누구나 주인공처럼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조금씩 눈을 꿈벅거리던 아이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구멍에 빠졌을 때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못빠져나온대요..'

아이가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헤아렸는지는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다음날 숙제였던 독서록 쓰기에 아이는 <구멍에 빠진 아이>를 썼고, 거기에 이 책을 통해 성장한 생각의 크기를 가감없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고, 부족함이 없이 살고 있어 오히려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여러모로 생각이 부족한 아이가 되지 않을까 싶었던 우려는 이 책을 통해 어느정도 접어졌다. 말하자면 이 책은 아이의 생각을 자라게 한 동시에 아이에 대한 믿음을 키워준 고마운 계기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