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 대해서는 편견이 있었다. 
시대 착오적이다, 너무 오래된 얘기다. 혹시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가까이 하지 않았다.

최근 유시민 선생의 "청춘의 독서"에 죄와 벌에 관한 내용을 보았다.
여러 작가들이 쓴 "글쓰기의 최소원칙(경희대학교 출판국)"에서 고전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란 표현을 보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고전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발자취를 보니, 군에서 읽었던 "레 미제라블", "로미오와 줄리엣"이 내 삶의 큰 줄기를 바꿔 놓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도 장발장과 같은 삶, 로미오와 같은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군 제대 후 재수를 하여 지금의 내가 된 것이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고전의 세례를 경험한 것이었다.

부끄럽게도 이 책은 초등학생을 위한 세계 명작이란 수식어가 붙어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결코 평이하지 않았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암울한 러시아 모습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우리 러시아 사람들은 괴로움은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나라에서 주는 괴로움은 모두 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차르의 압제에 눌려 신음하는 러시아 사람들..

그들에게 하루하루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으리라.
그래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쏘냐의 발에 입맞추며 얘기한다.
"나는 당신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고통 앞에 머리를 숙인 겁니다."
"당신이 죄인인 까닭은 쓸데없는 일을 위해 자신을 죽이고 팔았기 때문이오. 이런 짓(자신의 몸을 팔아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해도 남을 돕거나 구할 수 없어요. 어떻게 이런 치욕스런 일을 하면서 동시에 성스러운 감정을 지닐 수 있습니까? 차라리 이런 삶을 끝내 버리는 게 현명한 일 아닐까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차르로 대표되는 러시아 지배층에 대한 불만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과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개 보수적이고 복종적인 생활을 해 나갑니다. 그러나 뛰어난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현재의 질서를 파괴합니다. 즉, 자신의 사상을 위해서 기꺼이 피를 흘리지요.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을 범죄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을 범죄자로 여기고 처단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이 오면 자신들을 죽인 사람들의 동상을 세우고 절을 하며 그들이 외쳤던 사상을 새로운 질서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은 오늘의 지배자요, 뛰어난 사람은 미래의 지배자인 것입니다."

이 부분은 유시민 선생께서 강력한 비판을 선보였다. 
세상은 소수의 뛰어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진다고..(우리의 역사도 이 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런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기에, 전당포 노인을 "이"로 표현하고 그를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착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데 쓸모도 없는 인간이 돈을 움켜쥐고 있다니! 그런 인간은 죽여 버리고 돈을 모두 빼앗아서 착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해. 그것이 인류를 위한 일이야!"

그래서 자수를 하는 이유도 자신의 죄를 인정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무능과 비열함을 참을 수 없어서, 동시에 자수를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전당포 노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어울리지 않는 소심함이다. 
살인을 계획한 사람이 밀린 방세를 두려워 하다니..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내용을 통해 정상적인 세상이었다면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을 말하려 한 것은 아닐까?

책을 읽는 도중에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책에서 나오는 사람 중 "정상적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차르로 대표되는 러사아의 암울한 시대 상황이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몰아 넣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삶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감옥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삶과 소냐의 삶을 통해 무엇이 옳은지를 느끼게 된다.  다른 죄수들 앞에서 하느님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지만, 모두들 그를 무신론자라 욕했지만, 죄수를 위해 편지를 써주고, 일하는 소냐에게는 거친 죄수들도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성경을 꺼냈고, 지금껏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책을 읽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한 인간이 서서히 바뀌어 가는 이야기, 차차 새로운 인간으로 변해 가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책을 읽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들어 심호흡을 위해 쉬면서 읽어야 했다. 
인물의 특징은 답답함을 넘어 곤혹스러웠고, 어쩌면 제정 러시아의 시대상을 반영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역사에 대한 통찰이 부족해 이정도 수준밖에는 알지 못하겠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진리인것 같다.

2009년 3월에 계획한 1년 100권 독서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는 시점(12월 31일)에 마지막으로 집어든 책이 "생산적 책 읽기 50"이었다.
"50"이라는 숫자는 1년에 50권의 책이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바탕이 된 것 같다.

기존에도 책을 읽으면서 좀더 효율적인 독서법이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았고, 책 읽기에 관한 책도 3권 정도를 읽었다.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책읽는 것이 좋아 꾸준히 책을 읽고 있는데, 뭔가 막히는 것이 있는 것 같아, 책 읽는 법에 관한 책을 읽다니..

여느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저자의 인생관 혹은 살아온 이야기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어쩌면 이 한권의 책을 통해 독서법을 마스터 하기를 기대한 것은 몰염치가 아닐까? 
하지만 저자의 독서 경력을 통해 먼저 시행착오를 겪은 바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이렇게 하면 좀 더 좋았을 텐데 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중요한 내용은 외워라", 
"책 읽는 목적을 분명히 하라", 
"세상에 대한 애정이 담긴 책을 선택하라",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읽어라", 
"금방 답이 나오지 않아도 실망하지 마라",
"언젠가는 알아들을 날이 올 거야",
"두껍고 어려운 책이라고 포기하지 마라",
"남의 생각을 뜯어고치려고 하지 마라", 
"저자의 입장에서 읽어보라", 
"창조성을 끌어내라"

-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조급하지 마라는 것 같다. 
- 빨리 읽으려 애쓰지 마라. 차근차근 천천히 읽어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지겨움이 사라진다.
- 깊이 감동해야 오래 기억한다. 
- 진정한 희망이란 바로 나를 신뢰하는 것이다. 행운은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을 따른다.
- 책은 좋은 변화의 길로 이끌어주기도 하지만, 독선과 아집으로 독불장군을 만들기도 한다. 좋은 책은 올바른 변화의 길을 안내한다. 
-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면 자신을 과장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스스로의 부족함에서 오는 치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 스스로 배울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배려해야 한다. 
- 열심히 살기도 좋지만,  의미 있게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은 필수다. 열심히 사는 것도 의미 있게 사는 것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절박해지고 절실해진다. 책을 통해서 더욱더 겸손해질수 밖에 없다. 
- 책임감을 가지고 권력을 사용하는 사람만이 두려움 없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책임감을 갖춘 사람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 
- 행동과 실천의 계기를 제공하는 자극, 이런 자극을 시간이라는 터널을 통해 꾸준히 행동으로 이끌어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결국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여유 있는 자세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소중하고 가슴에 남는 내용들이다. 아직은 책 읽기를 통해 사람과 소통하는 법, 세상과 나와의 관계를 배우는 과정이라 이런 내용들이 나의 삶에서 이정표와 나침반의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라 믿는다.

"당신은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깊은 곳의 본성을 울리는 메아리가 되어 나의 삶을 한번 더 되돌아 보게 만든다.

ps. 부작용도 있는 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북카트에 책을 마구마구 담았고, 20여권에 가까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아직은 책 선택의 내공이 약해, 나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의 추천을 통해 책 구입하는 습관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