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블랙 먼데이, 주가가 폭락했다. ‘미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한순간 22.61%나 사라져버렸는데도,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 1987년의 주식시장 폭락은 결국 컴퓨터가 사람들을 완전히 대체하도록 만드는 변화의 시초가 되었다. … 전문가들조차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언제, 왜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당연히 일반 투자자들로서는 알아야 할 최소한의 정보조차도 얻기 힘들다. 이 책은 (주식시장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시도이다.(10~12)’

기존의 주식 거래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통신의 발달과 이윤추구 목적이 결합되면서 초단타매매가 성행하게 되었다. 이들은 기존의 주식 시장 체계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뉴욕 시 상원의원 찰스 슈머는 … 증권거래소의 행위를 비난했다. “증권거래소들은 거래 정보가 트레이더들에게 공개되기 전에 약삭빠른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먼저 그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거래소는 매매주분 정보가 공개되기 전 몇 분의 1초 동안 그 정보를 ‘순간적으로 노출해주는’flash 대가로 수수료를 챙겼습니다.” 그때가 바로 브래드가 ‘플래시 주문’flash orders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은 때였다.(67)’

학교의 수강신청이나 공연 예매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본능적으로 최고의 컴퓨터와 인터넷이 설치된 곳에서 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자는 주식 시장 역시 똑같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과 시장,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기는 이윤이다. 플래시보이스들이 집중하는 것은 100만 분의 1초다. 육상선수도 이보다는 덜할 것이다. 이들이 이런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작은 시간에 집중하는가? 절대적으로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로난은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얼마나 많은 수익을 올리는지 몰랐지만,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지는 추정할 수 있었다.(91)’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에게는 변동성이 매우 중요한 이유가 된다. 속도에서 앞선 트레이더들이 먼저 보고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가격은 바로 변동성에서 생기기 때문이다.(134)’ 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시키고 돈을 쓸어 모았지만 무조건적으로 이들을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프리카 초원에 있는 하이에나나 독수리들이 나쁜 놈들이야? 아프리카 초원에 동물들의 시체가 즐비하다고 쳐요. 그래서요? 그건 하이에나나 독수리의 잘못이 아니라고요. 그냥 거기에 멋잇감이 있었을 뿐이에요.(216)’ 저자는 명확한 가치판단을 보류한 채 독자들에게 말한다. ‘진실을 알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알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353)’ 현대 주식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무조건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으면 절대 주식할 생각은 못할 것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우리의 선택지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늘어났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로 하여금 수많은 ‘개인’ 혹은 ‘각자’가 되도록 강요한다. 반면 전세계에 밀어닥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공고히 결탁해 사람들을 한 가지 가치체계로 환원해 줄세우고 있다. 실용성이 있느냐 없느냐, 돈이 되느냐 마느냐가 유일한 가치판단 기준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고민해본다는 것은 여유를 넘어 사치로 인식된다. 이 안에서 우리는 갈등할 수밖에 없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뭘 원하는가? 이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하지도 못하고 우리는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간다. 우리는 결정장애자가 될 수밖에 없다.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은, 결정을 포기한 자들은, 올바르게 보이는 결정을 일부러 피하는 자들은 ‘잉여’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을 수밖에 없다. 사실 기성세대들은 결정장애세대, 젊은이들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곤 한다. 우리에겐 수많은, 그래서 ‘쉬워 보이는’ 기회들이 도처에 산재해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는 재앙이다. 약간의 지성만 있다면, 겉치레에 조금이라도 신경 쓰고자 한다면 모두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 대부분은 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다. 그리고 현실은, 배부른 돼지가 되기도 쉽지 않다. 자유민주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거대한 자유와 직면해 있다. 그 자유는 단단히 마음먹고 준비한 이들이 아니면 견뎌낼 수 없을 만큼 잔혹하다.(그런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천재적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먼 훗날 우리 삶을 되돌아보며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지 못했다. 갈림길에서 잘못된 길을 택한 것이다. 그냥 직진하는 편이 더 좋았을 뻔했다”라고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다.(268)’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후회 없는 삶이란 없다. 그리고 인생은 한 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후회와 걱정, 선택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으며 고통 받기보다는, 일단 저지르고 인생을 있는 그대로 부딪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피로사회’ 이후 만족스러운 몇 안 되는 사회평론서다.

사랑에 대한 노통브의 깊은 고민, 통찰이 담긴 작품이다. 굳이 사사건건 사족을 달아 설명하고 싶지 않다. 작품 자체로 읽고 생각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줄거리만 소개하고 바로 발췌로 넘어간다. 돈 엘레미리오는 매우 호화스러운 방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다. 그 광고를 보고 사튀르닌이 찾아왔고, 그녀는 세상에 없는 것 같은 사치를 누린다. 하지만 그 집에는 어떤 소문이 있었다. 그 집에 세 들었던 여덟 명의 여자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주인 돈 엘레미리오는 한 가지 조건을 말한다. ‘암실’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노통브-‘한 번 사치를 맛본 그녀는 이내 더는 그 침대 없이 지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36)’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에 그녀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38)’

 

돈 엘레미리오-‘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이라는 느낌이 들었소.(40)’

 

사튀르닌-‘도대체 무슨 변태 놀이를 하시는 거예요? 당신은 방이 필요한 여자들을 집에 들이고, 유혹하고, 잘못을 저지르게 부추기고, 그리고 처벌해요.(47)’

 

사튀르닌-‘당신에겐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음산한 구석이 있어요.(57)’

 

사튀르닌-‘호기심이 일긴 했지. 하지만 그거 떨쳐 내는 것 정도는 나한테 쉬운 일이야. 틀림없이 감시 카메라가 여럿 설치되어 있을 거야. 난 그 불행한 여자들처럼 되고 싶지 않아.(67)’

 

노통브-‘코린은 사튀르닌 역시 돌아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의식을 치르는 것 같은 절차, 사튀르닌에게서 들어 본 적이 없는 당돌한 어조, 장소의 호화로움, 사튀르닌을 자신의 성궤 속 성상처럼 쳐다보는 남자, 모든 것이 코린을 아연실색케 했고, 겁에 질리게 했다.(72)’

 

돈 엘레미리오-‘사랑은 믿음의 문제요. 믿음은 위험의 문제이고. 난 그 위험을 제거할 순 없었소. 주님께서도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하셨소. 그분께선 위험을 제거하지 않을 정도로 피조물을 사랑하셨소.(79)’

 

돈 엘레미리오-‘좋소. 내가 당신 말대로 했다고, 열쇠로 문을 잠갔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래도 그들은 집 안을 샅샅이 뒤져, 끝내는 열쇠를 찾아냈을 거요.(82)’

 

돈 엘레미리오는 어마어마한 부자에 귀족이면서,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딱히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굉장히 매혹적이면서도, 낯설고 정체 모를 일면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여자 입장에서 본 남자와의 연애라고도 볼 수 있다. 누군가의 매력적인 모습에 혹하면서도 그의 숨겨진, 혹은 소문이나 과거에 께름칙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노통브, 사튀르닌-‘사튀르닌은 쾌락에 집중했다. … 그녀는 자신이 놀라운 행복감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고 느꼈다. 「당신은 부자에다 파리 한복판에 궁궐 같은 저택을 갖고 있어요. 요리도 잘하고, 요정처럼 바느질도 잘해요. 당신은 이상적인 남자일 거예요, 그 악덕만 아니라면…….」(91)’

 

돈 엘레미리오-‘각 여자에게는 그에 맞는 특별한 옷을 지어 줘야 하오. 그러려면 극도의 관심이 필요하지.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바라보아야만 하오. 무엇보다 자신의 취향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오.(92)’

 

돈 엘레미리오-‘혼자 사는 남자에겐 그런 게(암실) 필요치 않으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삶을 나누려 할 때, 그럴 때 필요가 생겨나지. 당신,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 것 같은데, 그럼 사랑의 동거를 해본 적도 없겠군. …원룸에서는 위기의 위협이 너무 강력해서 커플이 처음부터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할 것 같은데……. 그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요. … 사람들은 흔히 사랑을 융합적인 거라고 믿지만, 같은 지붕 아래 살게 되면 훨씬 덜 융합적인 것으로 변하고 말지.(101~102)’

 

노통브-‘사튀르닌은 자신이 사랑하게 된 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남자, 자기 예술에 심취한 남자, 엉뚱하기 짝이 없는 남자일지는 몰라도 살인자는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러자 안도감을 넘어 알 수 없는 기쁨이 그녀를 가득 채웠다.(111)’

 

돈 엘레미리오-‘난 그 사랑들이 날 무사한 상태로 남겨 놓지 않은 것을 기뻐하고 있소. 난 그 후유증을 소중히 여기오. 그것들은 내가 또다시 사랑하는 걸 막지 않을 뿐 아니라, 당신에 대한 내 사랑에 자양을 공급하오.(120)’

 

돈 엘레미리오-‘난 당신을 위해, 당신 치마에 쓸 안감을 위해 87번째 노란색을 발명해 냈소. … 그건 하나의 기적이오.(123)’

 

돈 엘레미리오-‘난 그곳(암실)에 사진을 전시하오. … 난 평생 단 여덟 장의 사진만 찍은 게 자랑스럽소. … 진정한 사랑의 증거는 이미지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완벽한 단 하나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있소.(128~129)’

 

돈 엘레미리오-‘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언제나 고귀한 일이오. … 우린 악도 사랑할 수 있소. 그게 다요. …게다가 날 악이라고 단정하는 건 과장된 거요.(143)’

 

돈 엘레미리오-‘사랑하는 사람의 비밀을 범해도 되는 거요? 설사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그렇지! 비밀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 아니오? … 난 단지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사내에 지나지 않았지.(146-147)’

 

돈 엘레미리오-‘난 은신처를 찾아야 했소. … 난 … 그곳에 틀어박혔소. … 난 곧 그 방을 나만의 것으로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소.(153)’

 

돈 엘레미리오-‘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면, 우리 안에 있는 절대 군주도 포기하지 않는 법이라오.(155)’

 

사튀르닌-‘사랑의 황홀경은 우리가 좋아하는 색깔을 앞에 두고 느끼는 것과 흡사해요. … 당신의 경우, 아홉 명의 여자를 사랑하는 건 완벽하게 논리적이에요.(168~170)’

 

돈 엘레미리오-‘난 미치광이가 아니라, 절대에 사로잡힌, 사랑하는 여자와 자신 사이의 정확한 경계가 무엇인가 하는 끔찍한 질문에 아홉 번이나 직면한 남자요.(172)’

 

노통브-그 에스파냐 남자는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포착해 냈다.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 연약한 것과 단단한 것.(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