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씨가 살아온 나날과 인생철학이 담긴 책이다. 받자마자

책을 펼쳤고 앉은 채로 다 읽어버렸다. 그만큼 깊은 흡입력이 있었다.

이 책이 진솔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서 강수진 씨는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도란도란 털어놓는다. 마치 카페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빠르게 무언가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오기를 가지고 상황을

극복하려 노력하였다. 그녀의 열정과 패기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

그녀가 불꺼진 빈 교실에서 달빛을 받으며 발레 연습을 했다는 부분에서는

옛 선비들이 달빛에 따라 방향을 바꿔가며 글을 읽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 인생의 몇몇 행운들은 발레학교 선생님을 만난것,  그녀의 소울메이트인

툰치를 만난것 등이 있는데 이는 모두 그녀가 피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성공은 그것을

쫓을 여유도 없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녀는 지금과 같은 성공을

꿈꾼 적이 하루도 없다. 내일을 기다리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하루하루,

오늘을, 지금 이순간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읽는 내내 나 자신에

대한 많은 죄책감과 회의를 느꼈다. 이게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only one이라 불리는 사람의 노력인 것이다. 정말 지금처럼

살면 죽도밥도 안될 것이란 것을 절실히 느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어졌다. 다만 비문이 군데군데 눈에 띄는 것은 아쉬웠다.

편집부 측에서 좀 더 성심성의껏 준비했으면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내일을기다리지않는다

이 책은 스탠포드 대학 슬라브어문학 조교수인 나리만 스카코브가 쓴 책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주사상과 작품세계, 개별 작품 해석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이 중요한 것은 그간 우리나라에서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웠던 타르코프스키의

여러 인터뷰와 공공 강연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이해의 영역에만 머물렀던 타르코프스키를 쉽고 재미있게 파악할 수 있는 책이다.

영화는 번역을 통해서 확고한 의미 변화를 가지게 된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는 이유는 그의 영화가 단순히 언어적 측면을 떠나

여러 철학적, 미학적 층위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의미를 확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여러가지 대립쌍들이 존재한다. 광기와 정상, 생과 사, 환상과 현실

등 영화 관람자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나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졸음을 참지 못할 것이다. 할리우드식의

화려한 자극으로 범벅된 영상에 맛들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은

정신적 자극을 준다. 마음 한켠에 파고들어 잔잔하지만 거대하게 요동치는 바다 같은

작품들이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7장 [희생]의 망상이다. 몇 번을 봐도 분명하게

또렷하게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었었는데 이 책을 보고 타르코프스키가 어떤 생각으로

씬들을 넣고, 편집을 하고, 촬영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영화에서 알렉산더의 대사(맥베스의 한 구절)을 풀이한 부분이다. 무심코 본다면

철학적, 사변적으로 보일 수 있는 쓸모 없어 보이는 '한' 구절에 불과하지만 스카코브는

대사가 그 자체로 어떤 의미인지, 영화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맥베스에서 어떤

상황에서 쓰였는지 면밀히 분석하여준다. 이 책을 보고 다시 한번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감상해보라. 알레고리의 바다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고전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현실, 현재에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에 질문을 정신없이 쏟아붓는다. 이 책을 읽고 독자는 타르코프스키의 수많은

질문에 몇날며칠 골머리를 싸매야 할 것이다. 정말 좋은 책이다.

이 책을 볼까말까 망설였었다. 이유는 제목과 작가 때문이다. 작가의 이름이 낯설었고, '근본주의자'에서 이슬람의 색채가 보였기 때문이다. 종교관련 도서는 잘 안보는데 이 책도 그런 것이 아닐까 오해를 했던 것이다. 근본주의라는 말이 비이슬람교도 입장에서는 조금 꺼려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보게된 이유는 911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인칭 소설이다. 파키스탄 청년 찬게즈가 미국사회에 적응하고 다시 파키스탄으로 돌아가는 내용이다. 내용은 줄곧 마주앉아 있는 청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마치 독백과도 같이 보일 수 있는데 그동안 서구 관점의 시각에만 익숙해져있던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는 좋은 장치였다.

주인공 찬게즈는 아이비리그의 프린스턴 대학교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언더우드샘슨이라는 연봉 8만달러짜리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몇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것이다. 허구반사실반이겠지만 찬게즈를 보며 작가 하미드가 떠올랐다. 물론 회사명도 다르고 했던 일도 약간은 달랐지만 자전적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조국의 기울가는 집에서 사는 가족과는 달리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된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에서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뭔가가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성도착증 환자고, 정신질환자다. 그는 그녀를 도와주려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침잠하고 그는 버림받는다. 그리고 911테러가 발생한다. 911테러는 미국의 단일패권주의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국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찬게즈의 주위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주위 사람들이 찬게즈를 배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찬게즈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적 정체성인 파키스탄인의 피와 외적 정체성인 미국에 물든 타성이 갈등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사랑하는 에리카가 자살을 하고 찬게즈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가 대학강사가 된다. 전체적인 소설 구조나 시점, 비균형적 대화와 회상, 여자와 회사, 사회까지 알레고리가 풍부한 좋은 소설이다. 길이도 짧은 편이라 누구나 쉽게 읽어보고 많은 생각을 해볼만한 책이다.